문제 있음?

by Aarushi

나는 불안했고 여전히 불안하다. 알아차림을 알아차림하는 것이 익숙해졌고 편안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방황하고 두려움이 일고 우울해지곤 한다. 이 모든 걸 받아들인다. 내게 괴로움이 없길 바라지 않고 내가 평안하기만을 바라지 않고 늘 행운만이 가득하길 바라지 않는다. 메시지를 보내더라도 이제 더는, 행운만이 가득하길 바란다고 하지 않는다. 대신 꼭 이 말을 남긴다. 평안하길.


평온할 때, 즐거울 때, 기쁠때, 설렐때, 슬플 때, 우울할 때, 방황할 때, 불안하고 두려울 때... 늘 그렇듯 글이 쓰고 싶어진다. 글쓰고 나면 복잡했던 생각들이 정리되고 깔끔해지는 효과가 있다. 즉각적인 나와의 내면소통이 된다. 이만한 처방이 없다.


차분한 일요일 밤. LED전등 하나만 켜놓고 있는 지금, 소파에 기대어 덩그라니 앉아 글쓰고 있는,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나를 알아차린다. 명상이란 게 정말이지 다름 아니다. 알아차리는 것. 알아차림을 알아차리는 것. 앉아서도 서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말하면서도 들으면서도 걸으면서도 뛰면서도 수영하면서도 운동하면서도 글쓰면서도 경험하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는 것. 일상의 모든 것이 알아차림, 수행, 명상 그 자체가 된다. 거창할 것도 사소할 것도 아닌, 그 자체다. 글쓰고 있는 나를 알아차릴 때면, 몰입하는 나를 알아차릴 때면, 이것이 과연 나인가? 지금 글쓰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나라고 할 만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순간들이 있다.


있는 그대로 바라봄이다.

지난 십년 동안 나는 처절하게 방황했고 갈피를 잡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했고 수용하고 용서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다. 툭.내려놓으면 이토록 수월한 것을 나는 그렇게 한참을 돌고돌아, 한참을 슬픔으로 가득했을 만큼. 그렇게 내 안의, 내적 투쟁, 괴로움을 기꺼이 감내하고 감수하고 나서야 알게되는 것이었구나.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눈떠보니, 어느새 서른은 지나가고 마흔이 되었다는 사실. 이 또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수용.이란 것이 이토록 강력한 것이었다는 것도.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됐다는 것. 그 괴로움도 전적으로 나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었단 걸. 나의 두려움과 우울, 방황, 무기력감, 불안은 나의 집착에서 왔다는 걸 그렇게 지리멸렬한 시간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여전히 나를 모르고 다만, 아주 조금 이런 건가? 이런거였던건가? 싶은 것들. 내가 굳게 믿어왔던 것들이, 내가 당연다고 여겨왔던 것들이 과연 진실인가? 뿌리깊게 학습되어온 사회적 고정관념도 과연 그것이 옳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진실이라고 할 수 있는가?... 생각의 전환, 패러다임의 전환, 내면의 확장 없이는 나는 바뀌기 어렵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몸의 기능에 대해서도, 장 건강에 대해서도 내 감정은 내 몸의 어디에서 올라오는지... 나는 왜 괴로운가?싶은 것들에 대하여 관심이 있다. 그 지적 호기심이란, 평온하면서도 차분하면서도 고요하면서도 그 안에서 급진적인 생각의 전환이 일어날만큼 놀라운 것이기도 하다.


주의를 내 안으로 돌리면 돌릴수록 이타적이 되고 사랑과 친절과 수용과 용서와 감사가 솟아오른다. 지금의 나는 내 안의 두려움과 불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한다. 감정이 올라오면 올라오는대로 지금 올라오고 있구나. 그리고 그 나의 두려움이 과연 어디에서 온 건지 차분하게 마주한다. 그 마주함이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나도 마흔이니 내 부모님도 어느 새 예순 중반이 되셨다. 이따금씩 밀려오는 왠지 모를 그러나 분명 알 것 같은 그 복잡한 심경과 슬픔과 안타까움과 아쉬움, 미안함, 감사함, 무한한 사랑...의 감정들로 눈물이 뚝뚝 흐르는 날도 있다. 이런 게 인생이었구나. 인생이란 이런거였나? 우리는 죽기로 되어있다. 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이토록 소중한 시간과 순간들을 놓치고 살았을까 여전히 그러고 살아가고 있나? 정신이 번뜩이게 된다.


요즘 내 안에서 이는 소리는, "뭐 문제 있음?"이다. 정말이지 뭐 문제 있음?

가령 내가 이렇게 사는데 뭐 문제 있음?싶고 내가 이걸 선호하는데 뭐 문제 있음?싶고 내가 이렇게 살겠다는데 뭐 문제 있음?... 이런 방식으로 응수한다. 순전히 내 안의 나와 하는 얘긴데, "그래서 뭐 문제 있음?"하게 되면 내가 나 자신을 완전히 인정한다는 것에서, 내가 나 자신을 완전히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내가 나 자신의 인생을 흘러온 삶의 궤적을 온전히 인정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chill해지고 차분해지고 편안해지는 장점이 있다.


진심으로, "촤, 그래서 뭐 문제 있음? 부모님이 날 이 세상에 있게 했고 그 자체만으로 감사해야 하고 그래도 지금까지 자기 스스로 밥벌이하고 지금까지 이토록 건강하게 잘 살고 잘 지내고 있지 않니? 도대체 어떤 삶이길 바라는 거야? 도대체 이보다 더 무엇을 원하는 거니? 생각해보니 우연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도 많았어. 내 영역 밖의 것들도 있었어. 삶이 절로 펼쳐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젠 좀 알게 되지 않았니? 있음.에 감사하자. 너가 가진걸 봐. 그 기준은 너에게 있어. 네가 이렇게 사는데 뭐 문제 있니? 그러니 괜찮아!." 이렇게 말한다.


자꾸 가지려고 하니까. 원하는 것이 내게 오지 않을 때 오는 좌절감, 실망감이 두려움 불안이 아니던가. 집착하기 때문에서 생긴 것이란 걸 잘 알게 되지 않았나... 그렇게 나는 나와의 대화를 통해 그렇게 나를 안아주고 용서하고 위로하고 토닥인다.


실은 경험적으로 내가 경계하고 무섭게 생각하는 것은, 생각 그 자체가 아니다. 감정 그 자체가 아니다.

자꾸 몸이 안 움직여질 때, 천근만근 같이 몸이 돌덩어리처럼 무겁게 느껴질 때.다.

몸의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감정에 문제가 생긴다는 걸 알게 되어서다.


나의 삶은 쉽지는 않았고 여전히 쉽지 않다. 누구에게나 자기 삶의 고뇌 번뇌는 힘겹고 고통스럽고 때로는 괴로움으로 스러질테지만, 내 뉴런 시스템의 붕괴일까.싶을 만큼 회복 탄력성이 더딜때면 와르륵 몸이 무너지곤 한다. 어김없다. 동시에 무기력과 우울이 동반된다. 잘 살아내보려고 해도 몸이 말이 듣지 않아서 또 다시 무너질 때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어서야 하고 이 소중한 시간을, 순간을 이렇게 보내서는 안된다는 자각은 늘 있다.


이 밤,

나는 나에게 말한다.

"뭐 문제 있음?"

그렇게 또 다시 힘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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