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실은 별 거 없다, 없었다

by Aarushi

어제 오랜만에 광화문에 들렀다. 이십대 시절, 서른 초까지만 하더라도 매일 출근하고 매일같이 드나들던 곳이었는데, 늘 그렇듯 광화문역 사방, 그 군데는 내게 활력을 불어넣는다. 주말에도 나는 이른 아침 시청역에서 내려 정동길 한바퀴를 돌기도, 광화문역까지 걸어가 교보를 들리곤 스타벅스나 포비에 앉아 잦은 상념에 젖곤 했다. 비가 온 뒤라 그런지 흐린 듯하면서도 분명 쾌청한 날씨였다.


광화문의 기운이란, 분명 다르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광화문역만 가면 이토록 활력이 생기니, 에너지가 솟으니말이다. 나이들어가면서 더욱이 내 기운과 맞는 곳을 찾게 된다. 편안하니 절로 그런 곳을 찾는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 아웃하고선 이른 아침 광화문 역 근처를 걸었다. 그러다 교보에 들러 책도 검색하고, 둘러보고 그렇게 아주 잠깐 새 머물다 지하철을 탔다.


신분당선을 타야 하는데, 가는 내내 내 눈은 글썽글썽 어느 순간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물 방울이 몽글몽글한 것이 느껴질 만큼 그렇게 나는 홀로 울다가 감정이 복받쳤다가 다시 진정하고 평화로워졌다가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도 느낀 것이, 이토록 슬펐다가 그 슬픔을 눈물로 삼켜내고 나면 이토록 평온해지는 것이란... 그렇게 할아버지를 생각하다, 사랑을 생각하다, 지난 나를 용서하다, 정말 좋은, 친절하고 따뜻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역에 내리자 작은 엄마가 마중 나오셨다. 작은 엄마와 할머니가 함께 나오셨을까?했는데 차에 후딱 타고보니 작은 엄마 차에 할머니, 그리고 손주 며느리가 날 반겼다. 할아버지 병문안을 가기 전 나를 픽업해서 온 가족이 점심을 먹으러 가는 거였다.


할머니는 늘 그러시듯, "아이고 내 새끼... 왔는가." 차에서 내려 지팡이를 짚으시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걸었다. 할아버지 면회 시간이 지금은 저녁 밖에 되지 않아 점심을 먹은 뒤 작은 집으로 왔다. 할머니는 다시금 쉬시고 오랜만에 작은 엄마와 티타임을 하러 밖으러 나왔다. 도란도란 대학시절엔 참 작은 엄마를 잘 따라다니고 이렇게 아주 자주 커피를 마시곤 했다. 작은 엄마만 보면 눈물을 글썽이는 눈물꼭지샘이 있는데 여느 날처럼 창밖 풍경을 벗삼아 작은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할아버지는 지금 어떤 상태신지 얘기하다, 지난 우리들의 추억에 잠겼다가, 삶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인생 실은 정말 별 거 없어. 자식이 자기 삶을 잘 사는 것만으로도 효도야. 그거면 되는 거야..." 작은 엄마의 말씀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엄마~ 저는 왜 이렇게 철이 없었을까요?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는 것이 많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되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두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작은 집에 돌아오니 할머니는 깨서 쉬고 계셨고 할아버지 뵈러 갈 준비를 하곤 출발했다. 내동 화창했다 할아버지를 뵈러 나가려니 비가 쏟아졌다. 병원으로 가는 내내 그칠 줄 몰랐다. 몰라보게 훅훅 야위어가는 할아버지를 뵈러 가는 일이란, 내겐 슬픔이다. 자꾸 울지말라고 하신다. 할아버지를 뵈러 가기 전에도, 작은 아빠, 작은 엄마는, "초아도 이제 그만 울어. 할아버지 뵈면 활짝 웃어드려.", 할아버지를 뵈니 할아버지도 꼭 붙잡은 내 손을 움직이시며 "이제 울지마. 그만 울어. 잘 살면 된다."하신다.


그래도 눈물이 절로 나는 걸 어떡하는가. 마스크 위 내 두 눈은 이미 눈물 범벅에 잔잔히 흐르는 눈물방울이 마스크 안 내 얼굴을 쓸고 갔다. 할아버지랑 사진도 찍고 병실을 나올 때까지 할아버지의 얼굴, 눈에서 나는 눈을 떼지 않았다. 꼭 잡은 두 손. 실은 스러져가고 계심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오랫동안 붙잡고 싶었고 그 온기를 잊고 싶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꼭 안고선, 할아버지 뺨에 기대, "할아버지 사랑해요!"하니, 할아버지도 "나도 사랑한다."하신다. 실은 정말이지 그게 다구나. 결국 사랑.이구나. 사랑.이었구나.를 알게 된다.


병원을 나오니 빗방울은 여전히 거셌다. 역까지 데려다 주시는데, 역 근방이 이미 차들로 정신이 없었다. 중간에 내려 서둘러 인사하고 도보로 발을 내딛는 순간, 작은아빠차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조수석에 앉은 작은엄마가 창문을 내리시곤 손을 흔드셨다. "비맞으니까 얼른 들어가."라는 작은엄마 작은아빠의 모습에, 나는 손하트를 힘주어 보내드렸다. 할머니는 뒷좌석에서, 작은엄마가 내 손하트를 보시곤 작은엄마도 힘껏 손하트를 내게 보이셨다.


이제서야 철들어 가는건가. 아니, 실은 철들려면 아직 멀었지만 요즘 정말이지 앞으로 정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따뜻하고 친절하고 사랑을 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삶에 대하여, 인생에 대하여, 죽음에 대하여, 가족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색된다.


오늘 아침, 눈 떠보니 7시가 넘었다. 최근 들어 가장 잘 잤다. 어제 늦은밤, 쥐도 새도 모르게 골아 떨어졌다는 는게 맞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이토록 개운할 수가, 몸이 깃털처럼 가벼울 수가 없었다. 정신이 이토록 맑고 깨끗할 수가 없었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선 집 앞 스타벅스에 왔다. 선물받은 쿠폰으로 여름용 빨대가 있는 텀블러를 사자.싶었는데 노트북도 챙겨 나왔다.


그렇게 주문하고 창밖을 보고 앉아 있는데, 전화가 온다. 할아버지(빨강하트)다. 전화를 받자마자 어제 집에 잘 도착했냐고 물으신다. 이 아침 손녀가 잘 도착했을까.싶어 전화한 할아버지에 내 마음은 이미 따뜻한 온기와 사랑으로 가득했다.


인생, 실은 참 별 거 없다, 별거 없었구나.절실히 느낀다. 그리 심각할 것도 그리 대단할 것도 그래서 더욱 귀한 삶이란 것도.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살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할아버지 할머니께ㅡ 내 부모에게ㅡ 가족에게 "나 자신이 자기 삶을 잘 살아나가는 거, 착실하게 살아나가는 거, 행복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거구나... 거였구나..." 나는 그렇게 마흔이 다 되어서야 아주 조금 정말이지 아주 조금 철들어간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나도 사랑한다."

통화 끝 할아버지와의 대화 속, 결국 사랑이다.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 태어난 이유...


사랑을 알기 위해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서?

진짜 사랑, 순수한 사랑을 경험하라고가 아닐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음을 녹여버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