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끝이 아니라 건너감이다

by Aarushi

며칠 전, 꿈을 꿨다. 병상에 계신 할아버지가 휠체어를 타고 뿌연 배경을 향해 가고 계신 뒷모습을. 나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제3자처럼 바라보고 또 그걸 알아차리고 있음을 분명 알고 있었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신지 2주가 지났지만 지난 주 뵀을 때만해도 TV리모콘을 움직여 야구도 보시고 대화도 잘 하고 왔기 때문에 다음주 올 때까지 지금처럼 평안히 잘 지내시기를 바랐던터라 며칠 전 선명한 그 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전화받기 힘들어하셔서 더욱 힘드실까 전화를 서둘러 끊었다.


그러고선 다음날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께서 갑작스레 많이 안좋아지셔서 의사가 일주일에서 이주정도로 가족들 모두 마음 준비를 하고 계시라는 연락이었다. 매일 전화드렸던 것도, 손녀의 "할아버지 사랑해요(하트)" 메시지도 보지 못하신다. 지난 주 할아버지 손 꼭 잡고 이야기하던 그날이 할아버지와 대화의 마지막이었다니.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신 뒤 어느 정도 마음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내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부재를 실감할 수 없다. 이젠 전화조차 아예 받으시지 못하고 바이탈도 급격하게 떨어져 산소호흡기를 쓰고 계신다. 대화를 할 수도, 할아버지와의 눈맞춤도 할 수 없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눈을 감고 계신다.


89세. 서울 할아버지. 대학시절 할머니 할아버지댁에서 살았기 때문에, 나는 우리 집 딸 셋, 미국 고모네 딸 넷, 작은집 아들 둘 중 할아버지와 정이 가장 많다. 글을 써내려가면서도 왜 이토록 눈물이 나는지. 눈물이 내앞을 가린다. 할아버지와의 지난 추억이 글을 쓰면서 새록새록 솟아나서기도 하고 할아버지에게 잘해드리지 못한 것 같은 죄송한 마음, 스물 철부지 어린 손녀를 따뜻하게 돌봐주셨던 할아버지에 대한 감사함이 밀려온다.


지난 번 할머니 댁에 갔을 때,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고선, "와~ 우리 할아버지 역시 진짜 잘생기셨어. 인물은 내가 우리 할머니가 아니라 우리 할아버지를 닮았네^^ 할머니와 장난도 하면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눴다. 며칠 전 내 꿈에 선명하게 나타나신 내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이제 더는 버티실 기력이 없다는 걸 아셨던 걸까. 내게 알려주시고 싶었던 걸까. 언니와 통화하다 이 이야기를 전하니, 언니도 몇 주 전 꿈을 꿨는데 한 번도 꿈에 나오신 적 없는 상할아버지가 꿈에 나오셨다고 한다. 실은 4월, 꿈 속에 흐릿하게 배경은 장례식장이라고 느꼈고 할머니가 거기에 앉아 계신 꿈을 꿨었다. 그래서 언니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고선 할아버지의 상태가 급격히 안좋아지셔 병원으로 옮기셨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엄마와 함께 임종을 지켰다. 나이 들어간다는 건, 정말이지 내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슬픔과 회환과 죄송한 마음, 감사한 마음, 무한한 사랑을 한없이 느끼고 그 슬픔을 나아감으로 극복해내는 일,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할아버지와의 이별은 내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6일 새벽같이 할아버지가 계신 수원에 가야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때 할아버지의 손을 다시 한 번 잡을 수 있기를 바라는 일이다. 어제 저녁 산소포화도가 더 낮아지셨다고 이젠 정말 가족들이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는 전화를 받고 그 자리에서 집을 나와 한 시간을 내리 걸었다. 걸어야 할 것 같았다. 걸으면서 나는 쉬지 않고 말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감사해요. 할아버지 초아가 정말정말 사랑해요. 평안한 곳으로 건너가는 거에요. 더 편안해지실 거에요. 정말 더 좋은 곳으로 가시는 거에요."


섬망 증세를 보이시고 옛날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이제 정말 건너가시겠구나. 할아버지가 이제 정말 자기 삶을, 자신의 삶을 쭉 돌아보고 계신게 아닐까. 할아버지도 내 할아버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얼마나 자기 삶의 번뇌와 때로는 고통, 불안과 두려움의 시절을 건너오셨을까? 할아버지는 지금 자신의 삶을 어떻게 회광반조하고 계실까? 할아버지에게 나는 손녀이기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깊은 연민을 느낀다.


39. 언제부터인가 나는 죽음.을 인식하며 산다. 나는 필멸자이며, 나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 나는 분명 죽는다.고 생각하면 사특한 생각도, 우울도, 불안도, 두려움도 쉬이 사라진다. 지금 여기에 머물게 하고 지금 이 순간을 살게하는 마법이다.


내게 남은 삶은 몇 해 일까? 알 수 없지만, 나는 죽어가는 과정이다. 나는 죽어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니 서로 사랑하기에도, 서로 친절하기에도, 서로 감사하기에도, 서로 존중하기에도 부족하다. 집착할 것이 없다. 본래 내 것이 아니다. 이제는 정말이지 친절하기만, 따뜻하기만, 감사하기만, 사랑하기만 하며 살고 싶다. 어느 곳을 가도, 누굴 만나도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 그것이 날 행복하게 하고 살게 한다.


6일 새벽같이 달려가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드릴 것이다. 그렇게 나는 저 너머로 건너가는 내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그 길을 평온하게 편안하게 고요하게 배웅해드릴 것이다. 차분하게 할아버지에게 드리고 싶었던 말들도 하고 할아버지 손의 온기로 내 마음을 녹여낼 것이다.


"할아버지, 끝이 아니라 건너가시는 거에요. 더 평안한 곳으로, 더 좋은 곳으로 그렇게 떠나시는 거니까 걱정마세요. 할아버지 초아가 할아버지 정말정말 사랑해요. 그리고 감사해요!"


죽음은 정말이지 끝이 아니라 건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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