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손녀, 가족들이 생전 할아버지께서 좋아하셨던 음식을 프린트해 넣어 둔 각기 다른 봉투에 편지를 썼다. 입관할 때 모든 가족들이 작은 꽃다발과 편지를 할아버지 관 속에 고이 넣어드렸다. 할아버지에게 남긴 나의 마지막 말은, "할아버지 사랑해요. 할아버지 사랑해요"였다. 들으셨을 거라 믿는다.
입관할 때 막내 작은 할아버지와 전주 고모할머니가 많이 흐느끼셨는데, 그럴 것이 아빠와 나이차이가 얼마 나지 않으신데다,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해 큰 형님인, 할아버지가 부모님 역할을 해오셨다. 할아버지 임종 소식을 전화로 들으셨을 때도 펑펑 우셨다고 한다. 막내 고모할머니는 우리 아빠와 동갑이다.
할아버지는 8남매의 장손이시다. 원래는 13남매셨다고 한다. 형제분들이 워낙 우애가 좋으셨고 어릴적부터도 자주 모였고 나도 그 모습을 오래 봐왔다. 내 서울 할아버지, 영등포 작은 할아버지, 장성 작은 할아버지, 거여동 작은 할아버지, 전주 고모할머니, 수원 고모할머니, 막내 작은 할아버지, 막내 고모할머니. 손자 손녀들도 많아 명절이면 우리 할아버지댁은 언제나 가족들로 붐볐다.
토요일을 마지막으로 무사히 그리고 편안하게 장례를 잘 마쳤다. 할아버지 형제간 자손들을 비롯해 모두가 다 모였다. 입관부터 장지까지. 온 식구가 함께였다. 토요일 장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바로 뒤에 앉아 계시던 작은 엄마는, "초아야, 우리 꼭 작은할아버지, 고모할머니들 모시고 여행가는 것 같다^^ 할아버지 이제 편안하실거야."
그 사이, 미국 사촌들한테도 연락이 왔다. 미국 사촌들은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 나는, "장례 잘 치렀고 할아버지 모시고 온 가족이 장지로 향하고 있다고, 가족 모두가 편안하고 평온하게 이 시간을 잘 보내고 있다고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Our one grandpa.라고. 이곳은 지금 날씨가 너무 좋아서 우리 마치 소풍가는 기분이라고. 할아버지 지금 더 좋은 곳으로, 더 편안한 곳으로, 저 너머로 넘어가고 계실 것 같다고. 마지막엔 Death is not the end, it's moving."이라고 말해주었다.
장지에 도착해 장손인 아빠는 할아버지의 유골함을, 큰손주인 사촌 동생이 할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선산에 올라가는 그 길, 그 풍경을 사진에, 그리고 영상으로 짤막하게 담았다. 꼭 그러고 싶었다. 나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그 길을 천천히 따라갔다. 올라가는 길에 수풀 들 사이, 작은 노란 나비가 나타나 할머니와 내 곁에서 마치 우리를 지켜주듯, 우리 할아버지일까?꼭 그렇게 생각하고 싶을 만큼, 유난히도 그 나비가 고맙고 예뻤다.
내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죽음이, 내겐 큰 여운을 남겼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참 많은 부분을 알게 했고 참 많은 부분을 깨닫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삶이라는 것에 대하여ㅡ 가족이란 것에 대하여ㅡ 인생이란 것에 대하여ㅡ 사랑이란 것에 대하여ㅡ 감사라는 것에 대하여ㅡ 마치 내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장례 첫날밤 새벽, 나는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한참을 바라보다 할어버지와의 추억에 잠겼다 다시금 할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을 건넸다. 어린이 초아로 돌아갔다, 대학생 초아로 돌아갔다를 반복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는데 내 양 뺨엔 따스한 눈물이 쉼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 눈물이 전혀 개의치 않을 만큼, 아주 그렇게 고요한, 평온한 순간이었다.
"할아버지, 초아 할아버지가 바라시는 것처럼 씩씩하게 살게요. 할아버지 사랑해요." 생전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한참을 있었던 그 시간이 있었어서 그 온기가 아직은 내 가슴 속에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장지에 도착해서도 그곳에 살고 계시는 친척 어른들까지 오셨고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많은 가족들 속에서 그렇게 내 할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 언제나 내 곁에 살아 숨쉬고 있을 내 할아버지, 가족이란 이런 것이었다. 모든 걸 내어줘도 아깝지 않은, 무조건 사랑하고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
할아버지를 잘 보내드리고 할머니를 모시고 다시 작은집으로 모였다. 할아버지가 생전 좋아하셨던 음식들을 장만했다. 고기를 참 좋아하셨는데, 동태전도 좋아하셨고... 동태전은 내가 하고 싶었다. 어느 날보다도 나는 정성껏 간하고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전을 부쳤다.
저녁을 다 먹고 온 가족이 거실에 둘러 앉았다. 소파엔 할머니 아빠와 작은 아빠가 앉았고 우리들은 모두 그 주위를 뱅 둘러 앉았다. 모두가 애썼다고 말해주었고 가족 회의도 하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가족이란 이런 것이구나, 가족은 사랑이구나.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호스피스 병동에 계실 땐,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흐르고 슬펐는데 막상 할아버지가 떠나시니, 정말이지 더 평안한 곳으로 가셨을 거란, 더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란, 저 너머로 가셨을 거란 생각에 외려 마음이 차분해지고 고요해지고 평안해지고 편안해졌다.
할아버지의 사랑은, 이토록 따뜻한 것이었다.
손녀가 이렇게 할아버지에게 감사해하고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걸 보면,
할아버지의 손녀에 대한 사랑은 그 이상이었다.
꼭 무엇을 해줘서가 아니었다. 정말이지 그것은 그저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나비를 보아도, 밤하늘을 바라보아도, 화창한 하늘을 바라보아도, 밤하늘의 빛나는 저 별만 바라보아도 나는 그것이 내 할아버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 아침,
나갈 채비를 하면서도,
메이크업을 하면서도,
"할아버지, 잘 넘어가고 계시죠? 이곳에서의 소풍 잘 마치셨으니 모든 것 다 내려놓고 훌훌 털어버리고 그곳에선 드시고 싶은 것도 마음껏 잡수시고 평안하게 잘 지내고 계세요~ 할아버지 사랑해요!"
마음이 많이 편안해져서인지,
오늘 아침 발걸음이 가볍다. 생의 의지가 솟아난다.
할아버지 덕분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왜 온 것일까?
무엇을 경험하기 위해 온 것일까?
그것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