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런의 기쁨

by Aarushi

창밖너머 들려오는 빗소리가 이 밤 자장가가 되어준다. 고요함으로써 고요한, 고요하지 않음으로써 고요한, 처마에 야물게도 부딪히는 소리조차 부산하지 않고 그저 정겹고 다정하고 친절하기만 하다. 이 밤 나는 무엇을 잡고 싶은 걸까? 글이 쓰고 싶어졌으니 침대 위에 올라 노트북을 켠다. 늘 그렇듯 강물처럼 고요하게 글을 써내려간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은 일을 마치고 난 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침실로 들어와 LED조명 하나만 켜둔채, 선풍기를 켜고 침대 위에 기대 앉아 책을 읽거나 글쓰는 일이다. 뽀송뽀송한 양 발가락을 꼼지락꼼지락 거리며 "캬하 살 것 같다. 이게 행복 아니고 무어람. 하~ 너무 좋다. 지금 이 순간."


장마가 시작된 걸까. 빗방울이 거세다. 세기가 줄어들 기세가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오늘밤은 이렇게 거센 빗방울이 대지를 적시려나보다. LED조명이 내 방의 살림살이를 더욱 따뜻하게 비춘다. 저 멀리 책자도 보이고 퐁퐁한 바구니도 보이고... 빗소리, 나, 내 방의 모든 것들이 이토록 조화로울 수가 없다.


어릴적부터도 워낙 비를 반겼다. 지금도 여전한데, 비가 내리는 날이면 무언가 싹 씻겨 내려가는 듯한 개운함이 있고 처마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빗방울이 대지와 만났을 때 나는 그 둔탁한 소리가 실은 내게 큰 안정감을 주는 부분이 있다. 어두운 밤, 새벽녘 비오는 날은 희한하게 바로 잠들고 싶지 않은, 자연이 주는 있는 그대로의 음악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다.


비오는 밤은 늘 그렇듯 내게 내면의 밤이 되어준다. 내면으로 침잠해 고요해지는 일이 유난히도 쉬워진다. 빗소리,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있자면 나와 너의 경계. 나와 자연의 경계가 사라지는 경험이 직관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나와 자연은 하나구나. 우린 모두 연결되어 있구나..."하는 것들. 무조건적인 사랑을 내어주는 자연에 한없이 감사하고 경외감을 느낀다. 동시에 "나는 지금 살아있구나.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이 얼마나 기적인가. 행운인가. 선물인가."한다.


비오는 날 뛰는 걸 좋아한다. 비오는 날이면 퇴근 후 여의도역에서 내려 한강시민공원으로 내려가 집까지 냅다 달리곤 했다. 빠르게 달렸다가 아주 느리게 달렸다가를 반복하며 나는 그렇게해서라도 갖은 스트레스를, 내가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다시금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도 하이웨스트H라인 스커트에 블라우스 아니면 가디건을 입고 핸드백을 메고 미들힐을 신고 달렸으니, 실은 우중런하는데 내겐 그 어떤 장비도 불필요한 것이 된다. 내가 우중런을 하는 이유, 순전히 이 빗방울을 온몸으로 맞고 싶어서, 자연과 맞닿음을 통해 즉각적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서, 모든 걸 휘리릭 일순간 그 순간만큼은 날려버리고 싶어서,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달리는 그 순간만큼은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어서다.


그러니 퇴근 후 여의도역에서 한강시민공원길을 따라 집까지 미들힐을 신고 뛰는 일이란, 내겐 굉장히 재밌고 즐겁고 아무렴 상관없는, 아무렴 개의치 않는, 남의 눈일랑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 순전히 자유로운 나.가 되는 순간이다. 실은 우중런이란 내게 꽤 오래된, 나에겐 literally, 빗속을 뛰는 일이 된다.


전문적이지 않아도 되는, 내겐 그저 날 살게하는 숨쉬게 하는 즉각적인 행위 중 하나인 것이다. 달리면서 내 안의 무언가가 솟아나는 듯한 절로 벅찬 감동이 밀려와 눈물을 글썽이게 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이것이 콧물인지 눈물인지 빗방울인지 모를만큼 그렇게 빗속을 달린다. 우중런 속 내 모습이란 굉장히 흥미로우면서 퍼니하겠다 싶은게, 뛰면서 나는 정말이지 세상 행복한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는 내 얼굴을 내 눈은 볼 순 없지만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활짝 웃고 있는데다 정말이지 이렇게 뛰고 있는 내가 기특해서 귀여워서 예뻐서 사랑스러워서 꺄르륵 웃고 있음을 발견한다. 내 두 뺨에 지금 흐르는 것이 콧물인지 눈물인지 빗물인지 도무지 모르겠는 그 경계없음에 폭소하게 되는데 그것이 또 얼마나 내게 B급 감성의 즐거움을 선사하는지. 신발이며 가방이며 옷이며 온 몸이 젖은 상태가 되면 거침없게 된달까. 어차피 퇴근 길인데 집에 도착해서 씻으면 그만이지.싶고 흠뻑 젖음이 날 깨어있게 한다. "내가 요런 구석이 있어. 귀여워. 그리고 너무 웃겨...^^"이러면서 냅다 달린다. 우중런은 마치 내가 소녀로 돌아간 것 같은, 동심 가득한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을 준다. "그래, 인생 뭐 별 거 있니?"싶으면서, 어디선가 내 안의 용기가 호랑이 기운처럼 솟아나기도 한다. 그러니 빗속을 달리는, 우중런을 사랑할 수밖에.


머리카락도 흠뻑 젖어 이판사판, 흠뻑젖은 생쥐 모양새로 총체적 난국이 됨에도,

나는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내가 의도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의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밤 내리는 빗방울 소리에,

비에 흠뻑 젖은 채로 한적한 한강시민공원에서 집까지 달리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고 나면 많은 것이 걷힌다.


비를 맞으면 어떠한가.

비를 홀연하게 의연하게 맞는 일, 첨벙대는 일,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난데,

내겐 그 자체가 낭만이고 자유로움이다.


우중런, 그것은 내게 낭만 그 자체이자 내가 살아있음을 명징하게 알아차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지 간에 내가 기분좋아지면 된다. 내가 행복하면 된다. 내가 즐거우면 된다. 내가 편안하면 된다.


이 밤, 보아하니 쉽사리 잠들 것 같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이 빗소리에 흠뻑 취해도 보고

나는 그렇게 또 다시 생의 의지를 다잡은 뒤에야 잠이 들 것이다.


나의 내면의 밤은 거센 빗방울 소리와 함께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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