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어 간다는 것

by Aarushi

입는 옷이 대부분 자라인데, 여의도 IFC몰이 생겼을 때부터 쇼핑을 그곳에서 했다. 집에서도 가까웠고 편해서였다. 자라 매장도 꼭 여의도IFC몰로 가는데 익숙해서겠다. 여의도 IFC몰을 편해하는 이유는, 자주 가서기도 하고 그곳에서의 추억도 있어서다. 처음 IFC몰이 생겼을 때, 같은 지점에서 일했던 수진언니는 퇴근 후 IFC몰에서 아주 자주 저녁을 사줬다. 혼자사는 내게 언니는, "초아야, 오늘 IFC가서 저녁 먹고 가자. 언니가 저녁 사줄게." 언니는 꼭 밥값을 계산했고 그러면 나는 꼭 커피를 샀다. 여의도역 하면 추억이 많은 것이, 치킨집이며 회식하던 장소며 별의별 소소하고 사소한 추억들이 서려있다. 그래서 여의도역 하면, 광화문역 하면 아직도 절로 미소짓게 되는 것이 있다.


당시 32이었던 언니는 아이 둘의 엄마였는데, 이모님이 8시에 퇴근이라 5시 반에서 6시 사이 퇴근하면 아주 자주 나와 저녁을 함께 먹고 들어가곤 했다. 지금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는데, 내가 늘, "언니는 천사야."라고 말할만큼 예쁘고 마음 따뜻한 언니이자 내 사수였다. 신입행원이던 내게 어쩜 그리도 친절하고 따뜻했는지 존중해줬는지... 여전히 그 시절을 추억하면 참 고마운 마음에 뭉클할만큼 내게 참 고마운 언니다.


지난 번 광화문에서 주말에 만나 맛있는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오랜만에 수다를 하는데, 그 시절의 내가, 그 시절의 언니를 소환해 울고 웃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나이들어가는 것인지, 어느 장소에만 가면 그 시절의 내가 오버랩되면서 그 시절의 좋은 기억들만 편집돼 날 미소짓게 한다. 그 기운으로, 그 기분으로, 그 따뜻함으로, 그 사랑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문득 여의도 IFC몰을 떠올리다 이렇게 물흐르듯 그 시절 추억이 떠오르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얼마전 IFC몰 자라매장에 들렀다. 아빠가 여름에 입으실만한 편하면서도 힙한 반팔 티셔츠 하나를 사드리고 싶어서였다. 순전히 내 취향의 것으로 골라봤는데, 평소 네이비 옷을 자주 입으시는데, 이번엔 워싱돼 옅은 레드 계열 컬러에 소재는 좋은 그리고 가운데는 옅게 말이 프린트 된 반팔 티셔츠를 골랐다. 사이즈도 딱 하나 남아있었다.


그렇게 사서 돌아오는 길에 룰루랄라.나는 신이나했다.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사는 일, 받고 좋아하실 아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은 것이다. 늘 그렇듯 내가 아닌, 남을 위한 일이라면, 남을 위해 마음 쓰는 일은, 베푸는 일은 이토록 날 행복하게 한다.


어제 아빠댁에 갔다. 쨔잔.하고선 아빠에게 티셔츠를 보여드렸더니 좋아하셨다. 아빠가 마음에 들어하시니 좋았다. 아빠는, 소재도 그렇고 집에서 편하게 잠옷으로 입으면 좋겠다하시는데 아무렴 어떤가. 아빠가 마음에 들어하셨으면 되었고 집안에서 휘뚜루 마뚜루 편하게 잘 입으시면 되는 것이다. 토요일 오후 아빠와 드라이브도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메뉴는 뼈해장국. 내가 고른 것인데 아빠와 나는 뼈해장국을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그러곤 동네를 잠깐 걸었다. 나는 아빠 손을 꼭 잡았는데, "아빠, 건강만 하세요^^ 사랑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아빠는 무슨 얘기 끝에, "아빠가 80세까지 산다해도 실은 십 몇 년 밖에 안남았어." 이 말에 이젠 수긍하게 되는, 받아들이게 되는, 죽음을 명징하게 알아차리게 되는 나이가 됐다. 내가 나이들어간다는 건, 실은 내가 사랑하는 내 부모님도 그마만큼 나이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빠 말처럼,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이지 내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정말이지 지금부터라도 내 부모님에게 정말이지 잘해야지. 친절해야지. 사랑해야지.하는 생각을 한다.


토요일 오후 아빠와의 데이트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어떤 것일지 무엇일지 느끼게 하기 충분한 것이었다. 어릴적부터도 연년생 언니는 애교도 많고 쫑알쫑알 예쁜짓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나는 어릴적부터 야물게 물어보고 야물게 답하는 그러면서도 할말 다하는^^ 꼭 애어른같았다고 말하는 아빠말에 나와 아빠는 깔깔 소리내 웃었다. 정말이지 그랬을 거 같아서다.


아빠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차속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많은 생각이라기보다 한가지로 귀결되는 의식의 흐름이었는데, "아빠 엄마에게 정말 잘하자. 친절하자. 사랑하자. 부모님이 날 얼마나 정성스레 귀하게 키우셨을까? 이 세상에 날 진심으로,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내 부모님뿐이다. 부모 자식 간, 옳고 그름은 하나 소용없는 것이다. 그저 묻고 따지지 말고 서로 사랑하자. 사랑한다.는 말, 넘쳐 흐르면 흐를수록 좋다. 정말이지 진짜 사랑하자. 엄마, 아빠 감사합니다. 정말 사랑해요." 계속에서 내 안에서 솟아나는 말들이었다.


나의 늙어감보다, 나의 주름보다 부모님의 늙어감이, 쇠약해짐이, 부모님의 주름이 더욱 신경쓰이고 가슴아프고 안타깝고 슬퍼지는 나이가 됐다. 서른 아홉. 마흔 언저리의 나이란 이런 것일까. 나는 철들어가고 있는 걸까.


철들어 간다는 건, 내게 부모님의 사랑을,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바라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끼고 그 마음을 깊이 알아가게 되는 일 같다. 그 깊은 깨달음으로 부모님을 더욱 사랑하고 부모님에게 더욱 친절하고 존중하고 따뜻하게 대하고 바라보는 일. 철들어간다는 건 사람다워지는 일인 것이다.


사람다움. 사람답다.는 건, 내겐 따뜻함과 다정함, 사랑, 감사, 수용, 존중, 친절과 동의어다. 수시로 생각하는 건, "우리 정말 서로 사랑하기로 해요. 우린 결국 죽어가고 있어요. 그러니 우리 모두 묻고 따지지 말고 서로 사랑하고 친절하기로 해요. 실은 그게 다에요."


"초아, 철들어가고 있니?"

부모님 생각하면 부쩍 아련해지고 애틋해지고 잔잔한 미어짐도 있고 감사함, 죄송함도 있고 아쉬움도 있고 후회도 있고 반성도 있고, 갖은 회한이 드는 걸 보니, 눈물이 나는 걸 보니, 철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철들어간다는 건 결심이다.

"내 부모님을 사랑하고 이 세상 사람들 모두를 진짜 사랑하자."

나의 결심은 이토록 결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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