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물을 내 손등으로 닦을 줄 알게 되었다

by Aarushi

유난히 파리의 거리들, 카페들, 파리 곳곳이 SNS에 자주 보이는 날이 있다. 사진이나 영상을 잠깐 새 보고 있자면, 그 시절 파리가 생각나고 그 시절의 나가 아련히 오버랩된다. 어느 사진에선, 파리가 이렇게, 이토록 아름다웠나?싶을 때가 있는데, 그러곤 곧장 알아차린다. "내 마음이 그땐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던 거구나." 물론 아름답고 낭만 가득한 순간들이 더 많다. 그럼에도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그 시절에 그곳에 있었기에 낭만 가득의 순간들보다 힘겨웠던 그 마음이 더욱 짙게 다가오는 것도 있다.


종종 파리 시절 사진을 꺼내보곤 하는데, 내가 찍었나?싶을 만큼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풍경들, 거리들, 공원들, 센강 사진들이 많다. 오늘 꺼내든 사진은, Pont de Bir-Hakeim을 걷다 찍은 에펠탑 사진인데, 그때만 해도 참 젊었는데, 어린 나이였는데 나는 왜 그 당시 마치 세상 다 산사람 처럼, 마치 무언가 도무지 모르겠는, 그렇게 좌절하기를 반복했는지... 지금의 내가 그 시절 나로 돌아간다면 방황 대신 무엇이든 해 볼 용기를 낼텐데.싶으면서도 그 시절의 나.도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고 너그러이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다.


그러고보면 그래도 나름 넘어지고 무너지고 방황하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나름 씩씩하게 살아오지 않았나.하며 나 자신을 꼭 안아주곤 한다. 지난 십년이랄까. 내겐 나 자신과 마주하는 혹독한 시간이었달까. 그래서인지 나 자신과의 대화가 지금은 가장 즐겁고 가장 편안하고 일상이 되어버렸다. 고독을 알게 했고 고독으로써 외롭지 않게 했다.


Garbor Mate박사의 영상을 보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평소 Gabor Mate교수님의 책과 영상을 자주 듣는데ㅡ 유난히 이 밤 나는 감정에 관한 교수님의 강의에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갑작스레 봇물처럼 터진 눈물... 눈물이 나면 나는대로 나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았고 어느 순간 자연스레 멈춰진 눈물을 내 손등으로 닦아내고 소파에 기대 앉았다. 완전하게 고요해진, 침착해진 마음에 내가 하고 싶었던 것 글쓰기.였다. 곧장 노트북을 켜고 이렇게 글 한 편을 써내려가고 있다. 내겐 너무도 자연스런 일상이자 순간이지만 외려 마음이 고도로 침착할 때 글이 더 써지고 싶은 게 있다.


나의 20s, 30s... 생기 발랄하고 때론 화려했던 찬란했던 눈부셨던 즐거웠던 행복했던 아름다웠던 순간들도, 방황도, 우울도, 무기력감도, 그 시절 도무지 갈피를 못잡겠던 것들도 실은 모두가 청춘의 이름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거였단 걸, 좋고 나쁨도 없었던 그저 그 찰나, 순간들로 일어났다 사라졌던 것들이란 걸, 이토록 사사로운 나의 분별이었단 걸 알게 되었다. "인생 뭐 그리 심각하게 생각했을까?"싶은 아쉬움과 후회, 안타까움도 있고 지금은 갈수록 내려놓음과 집착없음. 그럴 수 있지 뭐... 내면의 고요함과 차분함, 평안에 집중하게 되었다.


나의 슬픔이랄까. 내면에 가라앉은 나의 슬픔, 상처, 번뇌, 케케묵은 생각과 감정들...은 여전히 불쑥 떠올라 날 괴롭게 하곤 한다. 지금의 나는 그런 감정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 감정을 어떻게서든 긍정적인 감정으로 바꾸려 하지 않고 그 감정들을 마치 제3자처럼 저 멀리에 서서 가만히 바라봐준다. 관찰한다. 그 관찰이 나의 슬픔을, 나의 아픔을, 나의 감정적 동요를 애쓰지 않음으로써 가라앉힌다.


Gabor Mate박사의 어느 부분이 날 이토록 슬프게 했을까? 날 알게 했을까? 날 알아차리게 했을까? 날 알아차리게 했을까? 날 번쩍이게 했을까?... 내 부모님과 나의 관계를 생각하다 오버랩된 건, 내 부모님 역시 자신의 부모님으로부터 어린 시절 받은 상처가 있겠구나. 그런 어린 아이시절의 상처, 내면 아이가 치유되지 않은 채 성장했겠고 또 그렇게 내 부모님도 한 아이의 부모가 되었겠구나...싶은 것이 내 부모의 많은 부분이 순간 온전하게 이해되고 안쓰럽고 연민하게 되었다. 내 부모님도 실은 나와 같이. 한 인간으로서 지금 껏 내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들을, 여전히 느끼고 있는 것들을 꼭 그렇게 느끼면서 힘겹게 자기 자신을 극복해오며 살아오셨겠구나.싶은 것이 이 밤 날 이토록 슬프게 했고 눈물나게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부터라도 내 부모님에게 나는 친절한 딸이, 자식이 되어야겠구나.다짐하게 되었다.


내 부모님 역시 아직 그리고 여전히 사랑받고 싶은, 때론 나약하고 취약한 소년, 소녀이구나. 치유되지 않은 내면아이를 안고 살아가고 있겠구나. 내 부모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내 부모도 나와 같구나.하는 연결감과 동질감, 연민...이 강하게 일었다.


내 두뺨에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내 손등으로 닦을 줄 알게 되었다는 건,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날 구해줄 사람은 오직 자신 뿐이란 걸, 인생이란 본래 고독한 것. 그 누구도 날 구해 줄 사람은 없다.는 걸 명징하게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이런 사유와 사색의 귀결은 결국 사랑.이다.


그러므로,

Be kind, be gentle.

사랑.이 사람을 살리고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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