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낱 꿈 그래서 이토록 눈부신

by Aarushi

지나간 나의 모든 시절이 정말이지 한낱 꿈같은 건 왜일까. 꿈이어서겠지. 일장춘몽이겠지. 지나간 나의 모든 시절을 후회한다기보다, 아쉬워한다기보다, 그리워한다기보다 정말이지 한낱 꿈같은, 직관적인 앎인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 의식이란 무엇인가? 이 현실은 무엇인가?싶은...


이토록 찰나일 수가 없다. 삶이란 본래 이런 것이란 걸 어릴적부터 알았더라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과연 내 인생은 더 나았을까? 더 만족스러웠을까? 덜 아쉽고 후회스럽고 그리울까?. 모를 일이다. 확실한 건 그러니까 인생이구나. 인생이지.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실은 나약한 존재. 완벽하지 않은 존재. 유리알 같이 취약한 존재 그렇기에 더더욱 연민하고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이다 싶은 역설. 기분 좋은 순간 중 하나인, 한여름 찬물로 샤워를 한 뒤 젖은 머리를 선풍기 바람에 쐬며 LED조명 하나만 켜둔 채, 소파에 앉아 글쓰는 일이다. 키보드로 절로 손이 간다는 게 적확한데 그럴 땐 키보드에 손을 댄 순간 어느 순간 휘리릭 이곳에 몰입하게 된다.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고 서야 정신이 차려지는 마법. 알아차리게 되는 마법이다.


그렇게 일순간 일으켜진 한 생각, "한낱 꿈같다."였다. 여기에서 시작된 나의 질문, 사유, 사색은 금요일 밤 글 한편 쓰게 한다. 한 쿠션을 몇 년째 잘 쓰고 있는데, 내 앞에 있는 쿠션 하나의 풍경도 내겐 이토록 낭만이고 다정하고 온화하다. 살아보니 살림살이도 꼭 날 닮은 것은 아닌지. 날 닮아가는 건 아닌지. 나도 그걸 닮아가는 건 아닌지. 사는데 생각보다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러니 물건을 마구 들일 일도 없게 되었다. 옷도 살림살이도 가구도 실은 한 인간이 사는데 그리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니란 걸, 그것이 중요한 건 아니란 걸 나는 그렇게 알아가게 되었다.


내겐 나의 20s, 30s 추억 가득한 광화문과 여의도역 일대를 지나는 일은 그 자체로 낭만이고 진한 그리움, 회환, 그런 것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것이 있다. 그럴 때면, 휘황찬란한 화려한 도시의 네온사인 앞에, 신호등 앞에서 "그땐 그랬지... 참 인생이란 이토록 찰나구나. 정말이지 한낱 꿈이구나..."한다. 구운몽의 일장춘몽.이 아니고 무엇인가.한다.


인생은 남과의 비교도, 경쟁도, 속도도, 그 어떤 것도 아니었음을, 그저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었단 걸 서른 후반, 마흔 가까이 되어서야 진심으로 알 것 같은 것이었다. 운전을 하다보면 금세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 있다. 나는 규정 속도로 잘 가고 있는데 뒷차가 빨리 가라고 빵빵 대다 결국 추월해 내 앞으로 휙 달린다. 그러다 다시 빨간 신호에 걸려 결국은 뒤따라오는 나와 같은 위치에 있게 된다. 그렇게 나는 그 차 뒤에 멈추어 있다보면, "서두를 게 뭐가 있을까? 서두를 것도 급할 것도 없는 것인데, 결국은 도로 내 자리에 멈춰 서는걸?" 그러다 인생과 절로 연결지어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 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실은 우리는 인생을 알고 배운다.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면서 자기 만의 통찰과 지혜를 얻게 되고 나와 빗대보기도 하고 질문하게 되고 직관적인 앎도 인다.


지금의 나는 이토록 무심할 수가 없는데, 화낼 일도 없거니와 화내서 무엇하나 하는 것이 있다. 흔들림 없다라고 할까. 스스로도 "어쩜 이토록 무심하니... 어쩜 이토록 잔잔하니..."싶은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의연함과도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집착하지 않게 된 덕분이다.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니내 행동을 설명할 것도, 잘보이려고 할 것도 없어지면서 오로지 나.로 단단하게 서게 된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잔잔한 톤으로 차분한 어조와 태도로 말하게 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리 되었다는 설명이 맞겠다. 목소리의 흔들림 없이 차분하게 침착하게 서두르지 않고 급하지 않게 그렇게 나만의 언어를 구사하게 된다. 눈빛과 함께 목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목소리를 통해 현재 나의 마음 상태,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기도 하고 사람들의 목소리에게서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종종 내 마음 상태가 어떤지 가늠할 때, 나의 목소리와 어조, 언어를 들여다본다. 그래서 진짜 강한 사람은 눈빛과 목소리가 단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있다.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란 내겐 친절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다. 의연하고 침착한 사람. 목소리가 차분한 사람. 자기 만의 언어가 있는 사람. 눈빛이 맑은 사람이다.


요즘의 나를 보면, 이토록 차분할 수 없다는 것도 실은 나의 그 무심함이 의연함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겠다. 요즘의 이 의연함에 나 스스로도 놀랄 때가 있는데, 조금만 더 일찍 이 의연함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나 자신에게 조금만 더 너그러웠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도 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눈 아래 주변에 기미가 듬성듬성 보인다. 분명 이전에는 이렇게는 없었던 것 같은데 부쩍 보이는 기미 앞에, 나이들어감 앞에 죽음.을 상기한다. 나는 나이들어가고 있구나. 익어가고 있구나. 나는 언젠가 분명 죽는다.는 사실 앞에 외려 생의 고삐를 다잡는다. 파운데이션을 바르지 않는데 대신 컨실러로 두드러지는 기미 몇 군데만 콕콕 찍어 바르곤 자연스레 놔둔다. 가리는 것보다 가리지 않고 자연스레 놔둠이 그 자연스러움이 내 성미에 맞기도 하고 우리가 진짜 신경써야 할 것은 내 안의 기미이지 않을까. 내 안의 자국이지 않을까.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어릴적부터 쌍커풀이 있는 큰 눈이라서 눈이 예쁘다, 초롱초롱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는데, 나이들어가고 있는 지금도 한가지 변하지 않은 건 외려 익어가고 있구나.싶은 것이 눈.이지 않을까.하는 안도감이 있다. 다행스러움이 있다. 립스틱은 바르지 않고 아이라인과 마스카라는 하는데, 내 눈 안의 기운과 눈빛은 여전하지 않은가, 외려 더 영글어가고 깊어가고 있구나. 확장되어 가고 있구나.하는 것이 느껴질 때면, 백옥같은 피부나 외양 이런 것들이 하나 부럽지 않다.


내 눈빛만은 초롱초롱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눈은 심상의 반영이라서 내면의 기운의 확장이다. 나이들어가도 눈과 눈빛의 맑음과 순수만은 놓치고 싶지 않은 그것이다. 내면이 관리되면 눈빛 역시 맑아질 수밖에 없다. 기운 역시 마찬가지다. 나이 들어가며 내가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은 타는 젊음이 아니라, 눈빛과 기운이란 걸, 생기란 걸 절로 알아차리게 된다.


사진 속 해맑게 웃고 있는 저 아이는 과연 지금의 자기 생을 알고 있었을까? 예견했을까? 저 아이는 누구인가?싶은, 그렇게 계속해서 이어지는 나 자신과의 대화, 물음에 일순간 몰입하게 된다. 그러다 무릎을 치며, "한낱 꿈."이런다. 내가 세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세상이 내 안에 있구나...하는 것들.


한낱 꿈.이란 걸 알면 많은 면에서 참 편해질텐데, 너그러워질텐데... 그러니 집착할 것도 얻을 것도 없다는 것. 이무소득고, 얻을 것이 없다는 걸 알면 집착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감사함이 남는다. 이무소득고하니, 사랑, 존중, 친절, 감사, 수용, 연민이 밀려오는 선물. 어쩌면 이걸 경험하기 위해, 알기 위해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가 아닐까.


한낱 꿈이라서 무한한 확장성을 가진 나 자신, 그리고 인생, 삶.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 날 의연하고 초연하고 흔들리지 않게 한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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