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따라 듣고 싶은 노래가 있다. 즉흥적이기도 한데 차 안에서 듣는 노래와 무드와 바이브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다. 작년 겨울 그리고 올해 초 한동안 들었던 전람회의 졸업. 멜로디에 흠뻑 젖은 채 그렇게 사색하기를 반복했던 나.가 오버랩된다. 벌써 가을이구나 싶은 것이 공기와 바람 그 모든 것이 분명 여름과는 다른 것이었다. 비도 보슬보슬 내리고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면 살짝 쌀쌀한 공기가 스민다. 가을 옷과 외투도 꺼내 놓은 차제에 단출한 내 살림살이도 들여다본다.
문득 가을 냄새.라는 단어가 스쳤다. 가을이구나.싶은 것도 다 이 가을 냄새때문이겠지. 나이 들어가니 유난히도 지난 추억들과 그 계절, 그 바람의 공기, 사람, 사랑, 여러가지 것들이 더욱 짙게 스쳐 지나간다. 삶에 의미가 있나? 돌이켜보면 지리한 시간들을 지나오게 된 것도 실은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 무언가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지 않았을까? 삶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렇게 나를 다독이고 위로한다.
긴팔을 옷장에서 꺼내니, 뽀송뽀송한 겨울 니트가 들어온다. 본래 여름을 좋아했는데 어느 해부터인가 겨울이 좋아졌다. 겨울의 도톰하고 퉁퉁한 니트를 입는 것도 좋고 한겨울 집밖을 나섰을 때 얼굴 뺨에 스치는 그 차가움이 이젠 상쾌하게 느껴진 이유다. 눈만 오면 어린 아이, 그 시절의 나,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한 몫한다. 가을의 차가운 공기만이 주는 그 특유의 쌀쌀함, 쓸쓸함이 나는 좋다. 그 쓸쓸함 속에서 나를 보고 그 우수에 젖은 채 도심을 걷는 나.를 알아차리고 생의 의지를 다진다. 삶은 본래 그런 것이라고.
앞으로 내게 남은 가을은 얼마나 될까? 알 수 없지만, 지금 여기, 현재를 즐겁게 잘 살면 된다는 것만은 안다. 비 내리는 오후, 나의 사색과 사유는 일상이 돼 버렸다. 절로 그리되는 걸 어떡하나 싶고 또 그래서 참 다행이다,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내게 일어나는 아주 작고 사소한 일련의 사건에서부터 사물, 모든 걸 들여다보면 실은 사유와 사색거리들로 넘쳐난다. 나 역시 이렇게 자연스레 일으켜진 한 생각, 한 사물을 보고 이토록 할 말이 많아진다. 그 사유의 무작위함이 내 기운을 소생시킨다.
late 30's의 삶이 곧잘 파노라마처럼 펼쳐질때가 있다. 20대보다 더 쏜살같은 느낌인데, 내가 지나 온 삶의 궤적을 모두 껴안고 수용하고 나니 그 모든 시절은 참 아름다웠구나.생각하게 된다. 그 어떤 시절도 내게 아무 것도 아니었음을. 어떤 환경에서도 나는 그 자체로 빛나고 있었다는 걸.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내 안의 불안이나 두려움 혹은 어떤 선택을 앞두고 고민할 때, 내게 가장 유리하고 유용한 질문은 단 하나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 나는 죽어가는 존재다. 내가 곧 죽는다면 나는 어떤 걸 선택하겠는가?... 하는 것들... 죽음을 인식하는 삶은 외려 현재를 살게 하고 정신을 번쩍이게 한다.
한참 책에 빠져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서른 초중반이었을까. 특히나 고전을 사랑했는데 그 속에서 나는 타는 듯한 전율을 느끼기도 했고 나의 것으로 치환해보기도 했고 질문하기도 했고 사유하기도 했다. 그런 작업들과 경험들이 내 사유의 시선을 확장시킨 것이 아니었을까. 당시 책은 날 살렸다. 어느 날은 두꺼운 책 한 권을 그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읽어내려간 적도 있었다. 내 가방 속엔 늘 책이 있었다. 산책할 때 유난히 독서가 잘 되는데,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도 독서하는 동안은 전혀 들리지 않을 만큼의 몰입감이 있다.
요즘은 부쩍 눈물을 글썽이는 일이 잦다. 그 눈물과 글썽임이란 나약함이 아니다. 나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다. 길거리를 걷거나 지하철을 타거나 할 때 스치듯 마주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이 사람은, 저 사람도 각자 다 자기 생을 살아가고 있겠지. 저들도 얼마나 힘이 들까.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친절해야 해..."하는 생각들이 스친다. 나와 같은 그들의 눈망울을 보면 순간 내 안에서 솟아나는 연민과 사랑의 감정이 훅 올라오곤 한다. 그 글썽임에 또 사유하게 되고 내릴 때가 되면서 정신이 번쩍이게 되는 그런 모먼트가 있다.
나이 들어가니 이토록 사유와 사색이 농밀해질수가.할 때가 있다. 나이 들어갈수록 내가 해야할 것은 지혜와 앎, 배움이겠구나.싶고 어떤 경우에라도 나를 사랑하고 나에 대한 믿음을 놓지 말아야한다.는 것도 안다. 내면의 확장이 외연으로 확장돼 나의 외모는 더욱 깊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가을 바람에, 가을 공기에 내 사색과 사유는 더욱 고독해지고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