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이른 아침, 소파에 기대앉아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고 있던 찰나, 일으켜진 한 생각, 한 문장이었다. 커피 한 잔을 내린 뒤 그렇게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십여분 앉아 있었다. 마음이 복잡할수록 힘겨울수록 불안할수록 두려움이 밀려올수록 도저히 무엇을 선택해야 될지 모르겠을 때. 그럴 때일수록 내 안에 질문해야 한다. 내 안에 머물러야 한다. 내면에 나의 이 두발바닥을 닿게 해야 한다. 가장 강력한 질문과 답은 실은 내 안에 있다. 이렇게 십수년이 지나서야, 마흔이 다 되어서야 알게 되는 것이었을까?
절로 일어나는 무작위한 생각들 속에 수시로 좋았던 기억들, 추억들이 불쑥 떠오른다. 지난 겨울 제주에서 엄마와 보냈던 시간 그리고 제주 올레길 7코스 초입에 있는 바다... 내가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한데, 한 겨울 저녁 6-7시 사이쯤 가면 짙은 어둠 속 빛을 만나게 된다. 저 멀리 보이는 등대의 불빛, 금방이라도 날 삼킬것 만 같은 어두컴컴한 하늘, 바다의 아우성, 파도 소리, 바람.... 그 모든 것이 내게 말하고 있었다. 꼭 인간의 언어만이 언어일까? 말일까? 자연은 말이 없지만 실은 그 침묵과 고요가 날 일으킨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 이 바다를 찾으면, 그곳에서 이십여분, 삼십여분 눈을 감고 떴다가를 반복하며 온전히 날 그곳에 맡긴다. 내 앞에 펼쳐진 사방의 모든 것들이 내게 친구가 되어주고, 스승이 되어준다.
경이로운 대자연 앞에, 생의 의지, 생의 고삐를 더욱 다지게 되는 마법, awe의 경험과 황홀경의 마법이다. 그런 기억들이 절로 소환되고 나는 다시금 좋았던 그 기억들을 안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자신의 삶을 기꺼이 수용하는 일인 것 같다. 어떤 힘겨움도 어려움과 고난도, 역경도, 슬픔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 살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그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 기대하지 않는 마음을 장착하는 것이 사는데 전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이다. 부모에게도 가족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기대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 집착을 버리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 만의 생의 고난을 안고 살아간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며, 우리 모두는 그 삶의 무게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마흔이 넘고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다 보면, 알게 되는 것들... 그 역경 속에 성장을 하고 지혜와 앎이 밀푀유처럼 켭켭이 쌓여 끝내 자기 자신을 껴안고 사랑하게 되는 것들...
지금의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속에서 우당탕탕 휘몰아치는 어떤 폭풍우를 만나도 이젠 나의 이야기를, 나의 마음을 그 누구에게도 내비치지 않는다. 그럴 것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있다. 결국은 그것이 무엇일지라도 나 자신이 알 수 있는 것, 나 자신이 헤쳐나갈 수 있는 것, 그렇게 그 침묵 속에서 나의 성장이 피어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어서다. 그렇게 그 역경과 아픔과 슬픔을 묵묵히 감내하고 나면 더 큰 지혜와 앎이라는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내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할 때, 이런 방식으로 알아차리곤 한다. "내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 더욱 단단해지고 있구나..." 새삼 나 자신에게 응원과 격려를 한다.
인생이 언제 내 마음대로 된 적이 있던가? 삶은 늘 그렇듯 절로 펼쳐지는 것. 이랬으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괜찮다.는 마음이 있고 이렇게 된다해도 저렇게 된다해도 나는 괜찮아.라는 마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을,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스스로 감내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 근력이면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