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을 사랑하는 이유

by Aarushi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에 대한 애정이 있다. 나 자신의 뒷모습도 그러한데, 나이들어가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뒷모습에게서 짙은 고독, 사랑, 번뇌, 상처, 아련한 것들이 보인다. 어쩌면 그 뒷모습형상이란 자기 자신만의 점철된 삶의 고뇌와 고독, 치열하게 자기 생을 살아가는 강인함의 총체가 아닐까.한다. 분위기겠고 향기겠고 그 사람만의 기운이겠다.


종종 나의 뒷모습 사진을 볼 때가 있다. 스크롤을 올리다 우연히 마주친 나의 뒷모습에서 나는 지난 날의 나.를 돌이켜보기도 하고 인생이 이토록 찰나구나.싶은 것이 깊은 상념에 잠길 때가 있다. 그 상념과 잔상이 나를자리에서 씩씩하게 일어나게 하기도 하고 직관적인 앎으로 내 안에 사랑이 가득 차올라 환희에 젖게 한다.


내가 정면사진보다 뒷모습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것은 판단 없이, 분별 없이 그저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쁨과 잘생김.도 분별아니던가. 그런 분별 없이 오롯이 기운으로만 상대를 느낄 수 있는 것, 파악할 수 있는 것. 그 기운과 자기 자신과 맞았을 때 느껴지는 동질감과 연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존중과 친절, 감사. 이런 것들이 진짜 중요한 것이 아닐까.한다.


나도 나이들어가서인지 요즘은 부쩍 내 엄마 아빠의 뒷모습에서 눈물을 훔치게 되는데, 언제 이렇게 나이드셨나.싶고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이 어쩌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깊은 회한과 반성, 죄송함, 감사함이 밀려온다. 엄마의 눈망울을 마주 바라보다 절로 글썽이게 되는 딸, 지난 번 제주에 갔을 때, 엄마와 제스코에서 장을 보곤 카페에 갔다. 드넓게 펼쳐진 흐린 날의 제주 바다가 앞에 있었다. 엄마와 이야기하다 마주친 엄마의 눈망울 속 나는 무얼 보았던가? 엄마의 눈망울 속에서 나는 내 엄마가 아닌 소녀 그 자신의 삶의 힘듦, 고통, 번뇌, 상처, 슬픔, 고독...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쏟아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손재주가 좋은 아빠는 그림도 참 잘 그리셨고 엄마와 연애시절, 초콜릿이나 껌 은박지 위에다 그림을 자주 그려 주셨다고 한다. 요즘은 부쩍 어릴 적엔 몰랐던, 느끼지 못했던 내 아빠의 가장으로서의 무게와 내 아빠가 아닌 그 자신만의 삶의 고독과 힘듦이 너무도 깊게 내 가슴에 와 닿는다. 특히나 내 엄마 아빠의 쭈글쭈글해진 손등을 보고 있자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와 그녀의 손을 말없이 꼬옥 잡아드리는 일이다. 아빠의 젊은 시절에 대해 종종 이야기해주실 때가 있는데 예전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도 지금은 온전히 알 것 같은, 아빠도, 엄마도 그 시절 소년 소녀가 얼마나 애뜻하고 안쓰럽고 그럴까.하는 마음이 든다.


지금의 나는 마흔 가까이 되도록 여지껏 나 혼자 사는 것도 때론 불안하고 두렵고 스러질 때가 많은데 힘겨울 때가 많은데 지금은 내 부모에게 진심으로 감사함과 존경함으로 눈물 짓는다. 현장에서 일하는 아빠에게 한여름 땡볕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애주가였던 아빠가 비로소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 소주 한 잔, 맥주 한 잔, 막걸리 한 잔이란,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아빠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육체적 노동의 피곤함과 노곤함을 풀어주는 것이었으리라.


정말이지 아주 조금씩 철이들어가는 것인지, 어느 날엔 엄마 아빠 생각을 하면 눈물이 주르륵 내뺨에 흐른다.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내 부모가 진정 바라는 건, 그저 자식이 자기 삶을 잘 살아나가는 것, 실패할 순 있어도 그것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것이 내 자식을 무너뜨리지는 않는 것이길 바라는 마음... 부모에게 무엇을 해주는 것이 아닌, 그저 자기 삶을 가급적 힘들지 않게 외롭지 않게 잘 보냈으면 하는 것, 그러면서도 가끔 혹은 자주 전화로 안부를 물어봐줬으면 하는 딱 그 마음.이란 걸.


엄마의 나이든 모습을 보며 나의 모습이 투영되기도 하고, 요즘의 나는 어쩜 이토록 내 엄마의 눈망울이 슬퍼보이는지. 안쓰러워보이는지. 탄탄했던 근육이 점점 줄어 부쩍 야위어 보이는 내 아빠의 어깨. 가장의 무게가 그 자신에게 얼마나 힘든 것이었을까.하는 것들.


내가 지금 나의 부모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내 삶을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 가급적 덜 흔들리며 살아갔으면 좋겠는 부모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 부모님은 지금 껏 결혼에 대해 말한 적이 없으셨는데 요즘 부쩍 딸이 곧 마흔이라 생각되니 그래도 좋은 짝을 만나 자기 가족을 꾸리며 살고 자식을 낳는 기쁨과 행복을 경험해봤으면 하는 바람을 말하신다. 언니가 큰조카를 낳을 때 새벽에 전화를 받고 엄마와 서둘러 병원에 갔는데, 그때 나는 엄마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진통으로 고통스러워 하던 힘겨워하던 언니를 보고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고 엄마의 시선은 내 딸에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나 사는게 힘들다고 내 부모의 힘듦과 아픔을 많이 놓치고 산 건 아닌지. 이제서야 나는 아쉬워하고 미안해하고 놓친 것들에 대한 회한으로 슬퍼지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은 나아감.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지금부터라도 나는 나아가야 한다. 부모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감사해하고 존경하고 존중하는 것. 내 부모에게 좋은 리스너가 되어주는 것. 안부를 묻는 일, 전화너머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 말 한마디 한마디 다정하고 따뜻하고 친절하게 하는 일.이다.


내 부모에게 친절하지 않은데, 내 부모에게 따뜻하지 않은데, 과연 누구를 사랑하고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할 수 있을까?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내 부모와 먼저해야 하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글을 쓰면서도 나이들어가서인지.라는 말이 습관적으로 나오는데, 이것 또한 내가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인데 어뜩하나.싶다. 이렇게 나이들어가서야만 알게 되는 것이었을까. 지난 나의 어리석음도 있겠고 서툼도 있겠고 결국 이렇게 꽤 오랜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는, 늦은 깨달음. 나는 늦은 깨달음.을 이토록 사랑하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지금이라도 이토록 느끼게 되는 것들이 많아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지금의 내게 모든 건 꼭 선물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른이 되어간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