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가을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느끼는 건 분명 나와 기운이 맞는 계절이 있다는 것. 기분적으로, 경험적으로 가을 초입부터 다른 어느 계절보다 생기가 돋고 무언갈 시작할 에너지, 용기가 솟는다. 계절의 순환처럼 유난히도 가을이면, 자연 그리고 질서.에 대해 새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아침 일찍이 녹차라떼 하나를 테이크아웃했다. 카페 가는 길에 내리쬐는 아침햇살, 태양이 내 왼쪽 뺨에 살포시 앉았다. "역시 아침 햇살을 맞아야해. 생명력, 삶, 인생..." 아침 산책은 늘 그렇듯 내게 생의 의지를 파릇파릇 돋게 한다.
실은 지난 주 하루 새 선택의 순간이 있었는데, 쉽게 결정내리지 못했다. 그 사이 나는 무척이나 힘들어했는데, 하나를 선택하는 게 분명 내게 좋은 기회가 될 거란 걸 알면서도 한편으론 왜 그토록 마음이 불안한지. 두려운지. 설렘보단 걱정이 되는지.나는 질문해야 했다. "네가 진짜 원하는 건 뭐야? 왜 불안한 거 같아? 왜 두려움이 밀려오는 것 같아? 그게 진짜 네가 원하는 걸까?" 밤새 결정에 대한 고민으로 끙끙 앓았던, 밤을 지샜던 나를 돌이켜보니 이건 내 것이 아니구나.를 알아차렸다. 이렇게까지 고민하고 힘들어할 일인가? 내 것이라면 이렇지 않지 않을까?... 싶었다.
결국 나는 선택하지 않았고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나니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그러면서 또 알아차렸다. "나는 무엇을 붙잡고 싶었는가? 집착이었고 욕심이 아니었는가?" 실은 내게 왠지 좋은 기회가 될 것만 같다는 것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선택하냐 선택하지 않느냐 사이에서 밤새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건 나의 욕심이었단 걸, 그 어느 것도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욕심이었단 걸, 나는 그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단 걸.
하루새 나는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의 고민은 이미 없는 것, 내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으며 다시금 편안한 마음으로, 평온한 마음으로 일상을 나고 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이토록 내려놓으면 되는 것을. 어쩌면 내게 많은 걸 알려주려고 그랬구나. 어쩜 자연은 한치의 오차가 없을까?"
불안은 삶의 일부다. 나는 불안했고 여전히 불안하다. 다만 그 불안을 이젠 내가 기꺼이 껴안을 수 있다는 것,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 불안도 평온도 실은 다 하나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불안을 사랑한다기보단 받아들임. 수용. 감사. 연민.이라는 것이 적확하다. 불안 덕분에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는 역설.도 있고 불안 덕분에 나는 성장하고 있고 불안은 내가 죽을 때까지 데리고 살아야하는 것이구나.를 알게 된다. 불안 끝엔 언제나 감사 그리고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인생은 언제나 좋은 일만 있지도 안좋은 일만 있지도 않다. 늘 그렇게 예기치 못한 우연과 필연 속에 업 앤 다운하며 살아가는 것이겠지. 그러니 그 어떤 것도 확실한 건 없으며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니 그저 내맡기며 살면 되는구나. 한 번 뿐인 삶, 끌려가는 삶을 살진 말아야겠다.는 열망이 솟는다.
일요일 아침, 성당에 다니는 수진언니가 성당 미사중이라며 서울 주보글을 내게 보내왔다. "지금 성당 미사중인데 주보에 너한테 보내주고 싶은 글이 있어서 찾아 보낸다. 좋은 하루 보내~"
서울 주보의 글 속 언니는, 내가 꼭 읽었으면 하는 부분만을 다시 캡쳐해서 보냈다.
"우리는 사랑받을 때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고, 사랑할 때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하는지 알게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게 꼭 필요한 말이었거니와 글을 읽고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잠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요즘 부쩍 상기하는 건, 외롭고 고독할 순 있지만 고립되진 말자.는 것이다. 인간에게 외로움과 고독은 숙명이다. 그러나 나를 너무 그 고독 속에 침잠하게만 두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있다.
그 어느 계절보다도 가을이면 유난히도 내가 사는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워보이는 마법, 내 안에서 솟아나는 그 무엇.이 있으니 용기내 다시금 지금 여기.에 머무는, 말랑말랑하면서도 촘촘한 친절하고 다정한 순간을 살아가야겠다. 실은 나.라고 할만한 것이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자성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는 삶이라면 무한한 가능성의 삶이겠다.
살랑이는 브리즈. 가을 특유의 솔솔 바람이 내 안에서 무언가를 일으킨 것이 분명하다.
나아가면 되는 일. "어쩜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울까. 자연이 질서고 질서가 자연이다. 즐겁게 살자!" 소파에 기댄 몸을 힘차게 일으켜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