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생각보다 관대하다

흐름 속에 머무르기

by 빛영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하는 손길은 있다. 그리고 스스로 흐름 속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지금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낙담할 필요가 없다. 삶은 관대하다. 그러니 기꺼이 경험을 즐기며 인연이 닿는 상황에 빠져들자. 구원의 손길(바라는 바를 이루게 해 줄 희망)이 다가오고 있으니. 미래가 캄캄해 보일수록 자신을 믿자. 삶을 믿어 보자. 어차피 하루하루를 맞이하게 된다. 기왕이면 든든하고 밝게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 주어진 삶에 대한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존중이 아닐까. 내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주차를 해놓고 운전석에 앉아 시간을 보낼 때의 일이다. 정면의 왕복 4차선 도로 반대편에서 인부가 바퀴 하나 달린 콘크리트 리어카를 끌고 가는 것이 보인다(건너편엔 아파트 공사 현장이 있다). 인부는 리어카를 끌고 얼마 안 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더니 안에 담긴 포대자루를 도로에 떨어뜨린다. 바닥에 떨어진 무거운 자루를 수레에 실으려고 몇 번이고 들어보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다. 혼자서는 힘들어 보인다. '둘이서 하면 실을 수 있을 텐데. 가서 도와드리고 싶다'라는 마음이 살짝 스쳤다. 이내 상상으로 이어졌다. 차에서 내려 100미터 되는 골목을 빠져나가는 나. 도로 중앙선을 넘어가 자루를 함께 싣는다. 그리곤 상상이 끝난 줄도 모르게 멈추었다. 온라인으로 참석 중인 세미나에 집중하느라 줌 화면을 보게 된 거다. 몇십 초 아니 몇 분이 흐른 것 같다. 고개를 다시 들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굴착기의 버킷(작업기 장치 앞부분에 있어 흙을 푸거나 돌을 부순다) 가운데 발톱에 그 포대자루가 대롱대롱 달려 막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내가 시선을 세미나 화면으로 돌렸을 때, 마침 굴착기가 그곳을 지나는 중이었나 보다. 좀 전까지 왠지 모르게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졌고 미소를 지으며 그 상황을 지켜보게 되었다.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상황은 나의 예상을 뛰어넘어서 펼쳐지는구나.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일에 혼자 전전긍긍하는 상황이라도 훨씬 수월하게 도움의 손길이 다가오게 되는구나. 정말 통쾌하게 어려움이 풀리는 순간이 나타나는구나.'


심리상담센터의 집단상담에 참여했을 때에도 사람들의 의외의 면을 보았다. 일상에서 스치는 굳은 표정의 사람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모습을 본 것이다. 그 안에서는 모두 부드러운 표정과 따뜻하고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만 존재했다. 아픈 사람을 품어주고 함께 눈물을 흘려주었다. 어떤 이는 고통을 오픈한 참여자에게 다가가 내가 당신의 아픔을 돕기 위해 이곳에 왔나 보다며 기꺼이 마음을 열어 다가가 주기도 했다. 세상에 이런 관계가 가능한지 처음 알 정도로 그 안은 안전하고 포근했다. 가장 힘든 순간 만났던 생각지도 못한 밝음이었다(당시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항상 그랬다. 고통스러워서 그 상황을 극복해 보고자 선택한 일에서 치유를 얻는 경험을 했다.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힘들지 않고 평탄하다면 오히려 그런 인연들은 나에게 다가오지 않고, '어! 내가 필요 없네.' 내가 있을 곳이 아니네 하고 그냥 지나갔을지도 모르니까. 아픔이 있기에 그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에너지들이 나에게 다가왔던 것 같다. 중요한 건 내가 그곳에 갔다는 것이다.


관심사를 가지고 활동하는 커뮤니티만 해도 그렇다. 글쓰기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때의 일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는 작가님의 편지를 매일 받으며 좋은 글을 접하게 되었다. 퀄리티 높은 글을 자주 접하면서 글을 보는 안목도 향상되는 기분이 들었다. 함께 참여하는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소통을 했다.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고 공감도 하면서 내면세계가 풍요로워지는 걸 느꼈다. 그렇게 일정 기간 동안 매일 좋은 글을 읽고 쓰면서 자기 성찰과 일상 관찰을 유지하고 있으니 성장의 흐름 속에 있게 되는 걸 스스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하며 하루를 살고 있다는 건 그 자체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의 에너지와 조화를 이루며 소통하고 있다는 뜻이다. 인부와 굴착기 기사가 함께 어려움을 해결한 것처럼.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많은 혜택을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 해결의 단서는 반드시 나타난다. 인부 역시 어딘 가에 속해(아파트 건설 현장) 활동을 했기에 혼자 해결하기 힘든 상황에서 누군가(굴착기 기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하루의 생계를 위해 그곳에 일하러 가서 그런 행운을 만났을 것이다. 허리를 굽히고 자루를 낑낑대며 실으려던 인부의 모습 대신, 굴착기와 함께 나란히 똑바로 서서 걷는 인부의 모습이 아른 거린다. 모두가 서로에 의해서 든든한 세상이 그려진다.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봉착했다고 느껴 그 상황을 너무 힘들게 받아들이지 말자. 어려운 일에 처해있더라도 너무 낙담할 필요가 없다. 우리 주변에는 함께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오늘도 그저 하루를 성실히 마주해 보자. 우리는 이미 삶과 함께 걷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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