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기대상(selfobject)은

내가 치유되는 곳 그리고 사람을 찾아서

by 빛영

정신분석의 자기심리학(Heinz Kohut에 의해 창시)에는 자기대상(selfobject)이란 것이 있다. 자존심을 유지하게 해주는 대상을 말한다. 아기에게는 엄마, 결혼을 한 사람에게는 배우자 또는 자녀가 이에 해당된다. 모든 인간에게는 죽는 순간까지 '자기대상'이 있다. 직장에서 일의 어느 부분에 대한 실력이 미흡해 상사에게 부정적 피드백을 받은 사람이더라도 다른 잘하는 측면이 있다. '나는 일의 이 부분은 좀 못하지만, 잘하는 분야도 있어.'라고 할 때 잘하는 분야 역시 자기대상에 해당한다.




나에겐 사람과 공부 두 부분에서 자기대상이 존재했다. 상담실 선생님이 내 자존심을 채워주었고, 좋아하는 분야의 공부를 하면서 자존감이 차올랐다. 결핍된 정서는 사람에게서, 자기에 대한 부족한 지식은 심리학 공부를 통해 얻었다.


제한된 50분~1시간의 시간 동안 상담실의 분위기는 한없이 수용적이었다. 물론, 누가 어느 곳에서 상담을 진행하느냐에 따라 이 수용적인 분위기의 차이는 있다. 상담사마다, 센터마다 분위기는 조금씩 달랐다. 나에게 온전히 치유적이었던 상담사는 직접적으로 말해서, 기가 세지 않은 사람이었다. 차분한 성향, 밝은 성향 등 그들이 내뿜은 에너지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넓게 보면 권위적인 것이 느껴지지 않고, 타인을 수용하는 것이 몸에 밴, 타고난 배려심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마음이 완전히 열렸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잘 들어주고, 어떤 감정을 표현하든 그에 딱 맞는 반응을 해주는 상담사 두 분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고 보니 두 분 모두 지역 복지관에 계신 선생님들이셨다.


내가 상담을 받았던 복지관 선생님은 모두 네 분이다. 그중 기억에 남는 두 분에게서는 슬픈 따뜻함과 부드러운 밝음이 있었다. 아마도 각각의 시기에 난 슬픔을 많이 드러내었고 그래서 당시의 선생님은 따뜻한 에너지를 많이 보내주신 것 같다. 또 다른 시기엔 설렘과 활기를 많이 드러내었고 그로 인해 선생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밝은 에너지를 보내주셨던 것 같다. 타인의 감정에 공명해 그에 필요한 반응을 나에게 보내주신 두 분이었다. 정말 힘을 많이 얻었고 불가능했던 일을 성취하기도 했다. 아픔을 그대로 드러내어 직면할 수 있었고, 탐탁지 않던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란 존재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에서 충분한 안정감을 느꼈다. 덕분에 상담실 밖에서는 할 수 없었던 말들을 상담사에게 할 용기가 났던 것 같다.




수치심은 존재에 대한 부정이다.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가치 없게 보게 만드는 자기의식적인 감정이다. 미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 용어사전에는 수치심을 '거부되고, 조롱당하고, 노출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는 고통스러운 정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수치심은 어린 시절 주양육자 또는 중요한 존재와 좋은 상호작용을 하지 못했을 때 생긴다. 결과적으로 '내가 결함이 있다'는 수치심을 갖게 된다.


자기대상을 통해 수치심을 치료가 가능하다. 경험상 심리상담사는 자기대상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비난이 가득했던 자기인식을 사랑스러움으로 바꿔줄 수 있는 존재다. 인정받고 수용받고 지지받는 분위기 속에 있다 보면 마음이 정화되고 치유가 일어난다. 좋은 치료자를 만나 나를 치유시키는 경험은 세상에서 가장 깊고 가치 있는 선물을 받는 것과도 같다.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도 안정감과 든든함을 느꼈다. 아마도 공부했던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에너지도 좋았고, 공부를 통해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져서 그런 듯하다. 자기대상은 사람도 될 수 있고 공부도 될 수 있다.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선택했고, 자기 노력이 들어갔다. 내가 내보낸 에너지를 통해 다시 내가 차오르는 충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내 안의 소리를 듣고 실행한 것들은 다시 나를 채워줬다. 힘을 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쓴 것보다 더 많은 힘을 얻었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기가 되면 결핍된 '자기대상'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된다. 융이 마흔 즈음해서 내면에 집중하는 시기를 보냈듯, 그 타이밍을 만나게 된다면 반드시 결핍을 채울 기회가 온다. 자동적인 이끌림과도 같은 인연이 맺어진다. 나와 세상의 진정한 소통이 일어나는 거다. 너무 힘들어서, 살기 위해 발견하게 되는 치유의 동아줄 같은 것이다. 나를 더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생명의 호흡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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