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자신이 없어요.. 나의 길은 없는 거 같아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우리 인생은 질문의 연속이다.
이런 말이 있다.
인생은 BCD이다.
BCD, 우리 인생은 탄생(Birth)과 죽음(Death)
그 사이에 있는 모든 순간은 선택(Choice)의 연속이라고 한다.
그렇게 사람은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불안전한 길을 불확실한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함은 평생의 동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독 불안함이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는 시기가 존재한다.
그 순간에는 평생을 함께 해온 불안함이지만... 낯설다.
그리고 곧 잡아먹힐 거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마 당신이 지금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면
당신은 그동안 참으로 용기 있고, 도전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 길에 확신이 없어서... 자신이 없어요..
불안함은 '실패'라는 그림자가 다가왔을 때 더욱 진해진다.
그 그림자는 한 번, 두 번
쌓이면 쌓일수록 우리의 마음을 더욱 흔들어 놓는다.
당신은 지금 총 몇 번의 실패를 거쳤나?
아마 실패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지금의 내가 너무 한심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겨우 이런 걸로 무너진다고?"
"내 인생은 왜 실패 밖에 없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럼 나는 이런 질문을 해보겠다.
정말 실패 밖에 없었나요?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더 하겠다.
지금의 아픔을 처음 느꼈나요?
당신이 지금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이렇게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계속 실패하는 인생을 가고 있는 것이 한심하고
겨우 이런 걸로 지쳐 쓰러지는 것이 한심하다.
그러나 당신은 계속 실패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한 번의 실패로 무너진 나약한 사람도 아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냐고 묻는다면
지금 종이에다 자신의 나이를 써보길 바란다.
당신이 몇 년 동안 이 인생을 살아왔을지 모르지만
당신은 지금 적은 숫자만큼이나 긴 시간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그 시간 동안 장애물이 과연 없었을까?
절대 그럴 수 없다.
당신의 존재 자체가
당신이 장애물을 잘 이겨낸 성공한 삶을 살아왔다는 증거이다.
장애물이 왔을 때마다
"할 수 있다! 그래! 이겨 낼 수 있지!"
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장애물을 뛰어넘고 지어 보였던 미소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데 왜 나한테만.. 이렇게 장애물이 많은 거지..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한다면 나는 솔직하게 말해주겠다.
당신이니까.
당신이니까 이런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는 것이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아마 나와 동일한 말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 과거에도 존재했던 거 같다.
이 말은 아인슈타인이 했던 말이다.
이 의미를 조금 쉽게 말하자면, 그 어떤 것도 이유가 없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겪는 일, 감정, 고통까지도 분명 이유가 있다.
물론 지금은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우리는 항상 이성보다 고통을 더 크게 느끼기 때문'이다.
아무리 괜찮아. 괜찮아. 하며 마음을 다스려도 괜찮아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당신이 예상했듯이 미래에 가면 알게 될 것이다.
'아, 이래서 나한테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리고 이미 당신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이런 이치를 알 고 있을 수 있다.
지금 겪는 고난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필수 과정이라는 것
당신이 충분히 이겨낼 수 있기 때문에 온 고난이라는 것
장애물을 만났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과거에 지었던 미소가 환호가 될 것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제 당신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힘든 길을 선택하느냐, 편한 길을 선택하느냐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C(Choice), 당신의 선택이다.
그러니 하나만 기억해라.
당신이 지금 '큰 장애물'을 만난 이유는
당신에게만 찾아온 불행도, 당신이 잘못해서도 아니다.
당신이 '큰 장애물'을 만난 이유는 당신이 큰 꿈을 가지고 큰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함을 이겨내고 싶어요. 장애물을 뛰어 넘고 싶어요.
당신의 선택이 만약 이와 같다면
당신은 불안함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당신은 언제 불안함을 느끼는가?
사람마다 불안함을 느끼는 순간은 다를 것이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미래, 결과를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불안함을 느낀다.
불확신으로 인한 불안감의 대표적인 예로는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 갑작스러운 비상사태
또는 예측할 수 없는 타인의 행동 등이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변인보다
'나로 인한 불안함'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 이유는 왜일까.
자연재해는 예측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걸까?
'재앙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정말 운이 안 좋은 사람만 겪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인 걸까?
그러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은 '나의 선택에 대한 결과'도 동일하다.
왜 우리는 수많은 불확실함 보다 유독 '내 선택에 불안감'을 느끼고 불필요한 가설까지 세워가며 불안을 증폭시키는 것일까?
그 이유는 나 스스로가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즉, 불안함의 뿌리에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은 왜 생길까?
자존감이 낮아서?
미래를 알 수 없으니까?
그동안의 경험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당신의 마음에는 낮은 자존감, 미래에 대한 불안함, 과거의 경험보다
더 큰 마음이 존재한다.
잘하고 싶다.
그래, 당신은 잘하고 싶었을 뿐이다.
당신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도 의심이 많은 사람도 아니다.
그저 잘하고 싶은 사람이다.
잘하고 싶었던 게 죄냐고 물어본다면
아니, 당신은 박수받아야 할 마땅한 사람이다.
무언가를 할 때 열심히 한다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지 기죽을 일이 아니다.
불확실한 길에서 도전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용감한 선택인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라는 말이 있는데 아마 많은 사람들이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속으로는 와닿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성공의 어머니이다.
실패를 인정하고 그 실패에 박수치며
도전한 것 자체에 의미를 둔다면
당신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장애물이 실패라는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바뀌는 것이다.
꼭 기억하면 좋겠다.
가장 큰 당신의 편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Epilogue.
당신은 그동안 수많은 장애물들을 뛰어넘으며 여기까지 왔어요.
도전하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겪었던 모든 과정의 증인이 바로 당신이에요.
과연 지금의 장애물을 넘어가지 못한다고 실패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마 더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실패의 또 다른 이름은 과정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