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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와 찰리 Dec 03. 2019

엘사처럼 마법은 없지만

복싱을 시작하고 마주한 변화들

 | 미지

5년 전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2차로 노래방을 가면 꼭 ‘Love is an open door’를 불렀다. 다음날 아침 술에 취해 했던 부끄러운 행동들이 생각나면 렛잇꼬우~(다 잊어)를 부르며 친구들과 콩나물 국밥을 먹으러 간 기억이 있다.      아름다운(?) 추억이 서려 있는 <겨울왕국> 두 번째 이야기가 국내 개봉했다. ‘디즈니 리바이벌’의 중심에 있는 <겨울왕국>은 전 세계 12억 달러의 흥행 수익을 내며, 역대 디즈니 애니메이션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겨울왕국 1>이 엘사와 안나가 ‘백마 탄 왕자’의 도움 없이 두려움을 ‘깨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 이야기였다면 <겨울왕국 2>는 자매가 힘을 합쳐 ‘진실’을 마주하고 ‘변화’에 맞서는 이야기다. 특히 유리천장을 뚫고 나온 두 주인공이 정해진 운명을 개척하려는 행동들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겨울왕국2를 보기 위해 월차를 썼다.

영화의 타이틀 넘버 ‘In To The Unknown’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변화에 당당하게 맞서겠다는 엘사의 다짐을 보여주듯 이번 영화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변화’이다.


소중한 내 사람들을 떠날 수 없어 저 불안한 세상에 날 떠밀지 말아 줘 저 두렵고 낯선 위험한 모험들 비바람 몰아치듯 저 멀리서 날 불러 Into the unknown… …(중략)… 느낀다면 보여줘 널 아-아-아-아! 어둡고 험한 먼 길이라도 그곳에 가겠어 Into the unknown!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사람은 성장한다

영화 초반 엘사, 안나, 울라프 그리고 크리스토프는 자신들이 마주할 변화에 대해 어렴풋이 감지하고 이를 두려워한다. 변화는 강력한 마법을 가진 엘사 마저 떨게 만든다. 엘사에게 감정이입을 하다가 문득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가 생각났다. 제대로 된 운동을 배워본 적 없던 내가 난생처음 복싱장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를 말이다. 쉬지 않고 줄넘기를 넘고, 샌드백을 치고, 복싱 스텝을 익히는 사람들. 링 위에서 미트를 치거나 운동기구에 걸터앉아 손에 밴드를 감는 사람들까지… 입구에 멍하니 서서 몇 분 동안 복싱장 사람들을 구경했다.

피 땀 눈물이 담겨 있는 복싱 밴드.(글러브는 복싱장에 두고 왔다. 조만간 찾으러 갈 예정)

그곳에서 어색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그리고 이 어색함은 꽤 오래 지속됐다. 특히 거울에 비친 나와 마주하며 운동하는 것은 정말 최악이었다. 수험생활을 하며 찐 살들이 줄넘기를 넘을 때마다 출렁이는 걸 볼 때면 당장이라도 복싱장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급격히 찐 살들로 인해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유독 하체에 살집이 있었던 나는 여름에도 꼭 긴 바지 체육복을 입었고, 겨울에는 담요로 다리를 가리고 다녔다. 거울은 될 수 있으면 보지 않았다. 둔해진 내 모습이 거울에 비칠 때면 부정하거나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복싱장 한 벽면은 모두 거울로 된 구조였다. 빼도 박도 못하고 운동하는 내 모습을 마주해야 했다. 한동안 거울 대신 땅을 보고 줄넘기를 하고 스텝을 밟았다. 운동을 며칠 하다 보니 동작에 자신감이 붙었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때 알았다. 땅 보고 운동하는 사람은 그 복싱장에서 나 혼자였다. 복싱장에는 나보다 살집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운동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나처럼 내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운동하는 내 몸을 똑바로 마주했다. 땀에 젖은 티셔츠를 입고 숨을 가쁘게 쉬는 모습이 나름 멋있어 보였다. 엘사가 당당하게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고(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변화에 맞선 것처럼, 나는 복싱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내 안에 변화에 맞설 수 있었다. 이를테면 스스로 규정해 놓은 ‘아름다운 몸’과 ‘그렇지 않은 몸’에 대한 생각을 깬 것이다. 또한 복싱은 학창 시절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박힌 몇 가지 생각들을 변화시켰다. 땀을 흘리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전까지만 해도 땀을 줄줄 흘리는 내가 부끄러웠다), 운동이 꼭 다이어트를 위한 수단은 아니라는 것(운동은 살을 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여자 운동과 남자 운동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운동 종목에 대한 여자와 남자의 경계를 허물 수 있었다).


지금도 물론 새로운 경험과 다가올 변화에 맞서는 건 두렵다. 하지만 맞서고 나면 별 것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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