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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와 찰리 Nov 25. 2019

수영복을 입어도 되는 몸

21세기의 소녀들은 터미네이터를 보며 꿈을 꾸길

글 | 찰리


얼마 전,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수장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다시 제작에 참여한 시퀄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가 개봉했다. 영화는 미래에서 온 근육질의 강화 인간 그레이스가, 미래의 혁명가가 될 라틴계 소녀 다니를 돌아온 히어로 사라 코너와 함께 지켜내는 과정을 담았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멋진 캐릭터들 덕분에 <터미네이터>에 푹 빠져 이것저것 검색하던 중 한 트위터리안이 제기한 의문을 보았다. 극 중 그레이스 역을 맡은 맥켄지 데이비스의 포스터 사진의 팔뚝이 가늘게 보정되었다는 것.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누가, 왜 팔을 보정했을까.

같은 사진을 활용한 두 가지 버전의 포스터. 맥켄지 데이비스의 오른쪽 안쪽 팔뚝이 조금 다르다. | 네이버영화, IMDb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거 아닌데요


문득 최근에 읽었던 책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거 아닌데요'가 생각났다. 신한슬 기자의 에세이로, 작가는 본인의 운동 경험과 통계자료를 통해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의 폭력적인 시선을 이야기한다. 


털 한올까지 대상화되는 여성의 몸에 대한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부터도 마르지 못해서, 얼굴이 조막만 하지 않아서, 늘씬한 다리를 갖지 못해서 항상 고민해왔다. 


십 대의 나는 외모 콤플렉스가 심한 내성적인 관종이었다. 주목받고는 싶은데 자존감이 낮았다. 특히 체육시간은 별로 즐겁지 않았다. 달리기는 뛰는 대로 몸이 흔들리고, 피구는 공을 맞아야 끝나고, 발야구는 정확하게 조준해서 공을 차야한다. '우습게 공을 맞으면 어쩌지' '헛발질을 하면 되게 못나 보이겠지' '땀냄새가 나면 어쩌지' 등, 예뻐 보이지 않을까 봐 신경이 쓰였다. 


이런 고민은 여고를 다니면서 조금씩 사라졌다. 야간 자율학습까지 학교에 붙어있다 보니 친구들과 별 걸 다 하면서, 별 꼴을 다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가수들의 춤을 따라 추거나, 말뚝박기, 물싸움, 배드민턴, 술래잡기를 하면서 과격하게 놀고, 학교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는 기이한(?) 행동도 스스럼없이 했다.


체육시간에는 야구, 농구, 축구를 생활체육화한 티볼, 넷볼, 풋살 등 다양한 종목을 배웠다. 늘 피구, 발야구, 줄넘기만 하다가 새로운 종목을 배우는 건 즐거웠다. 친구들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장을 누비며 경기하고, 서로 3반의 메시, 5반의 박지성이라 부르며 낄낄거렸던 기억이 난다. 무아지경의 신체 활동을 통해, 나는 체육에 나름 관심과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타고난 통뼈에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승부욕, 지치지 않는 체력이 어디 갔겠는가. 


남녀공학을 다니던 때보다 여고시절은 확실히 '예뻐 보여야 한다'라는 강박이 덜했다. 외모 콤플렉스가 아예 없어졌거나, 외모지상주의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선택에 있어 '예쁘다'가 기준이 되지는 않았다.


세상에 같은 몸은 없다

대학교 3학년쯤 수영장에 처음 등록하던 날이 기억난다. ‘수영복을 입을 수 있는 몸을 만들어 놓고(살을 빼고)’ 등록해야겠다는 생각에 미루고 미루다 이러다간 못 배우겠다 싶어 겨우 등록했다. 등록하고도 수영장에 가기까지 꽤나 망설였다. 유치원 시절 이후 입어본 적 없는 원피스 삼각 수영복을 오랜만에 다시 입은 모습은 군살이 울퉁불퉁했고, 원래 목욕탕도 거의 가지 않는데 남들과 다 같이 씻어야 하는 것도 너무 싫었다. 남들이 내 몸을 보고 평가를 내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막상 강습을 가보니 참 쓸데없는 고민을 했구나 싶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내게 관심이 없고, 세상엔 참 다양한 몸이 있다. 우리는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수영을 하는데 필요한 몸도 따로 없다. 빠르고 정확한 자세로 헤엄치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된다. 느리고 어설픈 자세로도 충분히 각자의 속력으로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을 배울 수 있다. (선생님 말씀을 듣지 말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수영 강습은 의도치 않게 외모 콤플렉스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남들이 내 몸을 평가하기도 하지만, 나 또한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몸을 정해두고 남들을 바라보지는 않았는지 반성도 됐다. 고작 45분 강습받고 시뻘게진 얼굴로 비틀거리며 샤워장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이 썩 나쁘지 않더라.


외모 콤플렉스는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 있다. 없어졌거니 해도, 불쑥 튀어나와 열등감을 갖게 한다. 그럴 때 난 내 몸으로 이룬 소소한 성취를 떠올린다.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처음 골을 넣었을 때, 수영장에서 접영을 처음 배우던 날, 혼자서 한라산 백록담에 도착한 순간.

2018년 여름, 한라산 등반 후 직접 찍은 백록담 필름 사진, 한 달 간 따릉이 이용 내역.

요즘은 자전거 타기에 푹 빠졌다. 단언컨대 서울시 최고의 복지 따릉이를 알게 된 후 주 3회 이상은 따릉이를 타려 한다. 서울대병원 건강 칼럼에 따르면, 복부비만에는 걷기, 수중운동, 자전거 타기, 계단 오르기 등의 유산소 운동을 주 3회 30분 이상 꾸준히 해야 한다고.* 도심 한복판을 질주하는 기분이, 적당한 허벅지의 통증이 나쁘지 않다. 날이 너무 빠르게 추워져서 고민이긴 하지만.


*서울대학교 병원 건강칼럼 '복부 비만에 좋은 운동 방법을 추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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