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별이 되다(1)
눈앞으로 이글이글 운동장 모래 바닥이 흔들린다. 운동장에 중간쯤 왔는데 벌써 등이 다 젖어서 찝찝했다. 엄마가 사준 파란색 태권 브이 책가방이 내 등에 찰싹 붙었다. 오늘을 위해 엄마가 사준 몇 안 되는 나의 '새것'이 땀으로 젖는 게 싫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엄마가 며칠 전에 여기는 정말 더운 곳이라고 말했다.
"은성아. 여기는 전에 살던 곳보다 해님이 가까워서 휠씬 덥 데~!"
"더운 거 싫은데, 근데 왜 더운 데로 왔어?"
"음, 잠깐만 있다가 더 좋은 데로 갈 거야"
아침에 엄마가 데려다주면서 해준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런지 하늘 위로 보이는 태양이 전에 살던 곳보다 열 배는 더 커 보였다. 교문이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오늘 아침 난 이 학교로 전학을 왔다. 아침에는 엄마의 손을 잡고 들어왔던 교문을 혼자 지나가려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종례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나왔더니 운동장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오늘 아침 엄마는 반짝이는 구두도 신고 입술도 빨갛게 해서 너무 예뻐 보였다. 맨날 엄마가 화장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사 오고 나서 보름쯤 됐는데 엄마가 왠지 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아침에 엄마가 학교 끝나면 바로 집으로 오라고 말했다.
교문에 다다랐을 때쯤 애들이 나오기 시작했는지 등 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최대한 그 소리와 멀어지려고 빨리 걸었다. 모든 게 낯설었다. 여기는 선생님도 애들도 말투가 이상했다. 사투리는 처음 들었으니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말은 그들과 나를 분리시키는 벽과 같았다.
커다란 교문을 나오자마자 문방구 옆에 팥빙수 가게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가계 앞에 섰다.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와 엄마가 팥빙수를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파란색 얼음 기계 중간은 얼음을 고정하는 부분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자전거 바퀴 같은 부분을 돌리게 되어 있었다. 오른손으로 힘껏 돌리면 고정된 얼음이 돌아가면서 갈려 아래 그릇으로 떨어졌다. 얼음이 갈리며 하얀 가루처럼 그릇에 쌓이는 게 신기했다. 겨울 눈 산이 그릇에 담겼다. 그다음 팥과 하얀 연유가 뿌려지고 그 위로 미숫가루와 설탕이 입혀진 정사각형 오색 젤리가 올려졌다.
등에는 땀이 흘렀고
입으로는 침이 흘렀다.
주머니 속에 오십 원짜리 동전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전학 첫날이라고 준 비상금이다.
'그래. 지금이 비상이지.'
"아줌마, 팥빙수 하나 주세요."
먹고 싶은 마음만큼 큰 소리로 말했다. 아줌마가 날 보면서 씩 하고 웃었다. 기분이 살짝 나빴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뽀글뽀글한 머리를 한 아줌마는 앞서 기다리던 아이 엄마한테 팥빙수 하나를 건네고 바로 내 얼음을 갈면서 말했다.
"너 여기 사람 아니구나?"
"네? 어떻게 알았어요?"
"너 말하는 거 들으니 모르고 싶어도 알겠는걸? 하하하
그럼 여기 인심으로 이번만 좀 더 많이 줄게!"
좀 전까지만 해도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던 학교 애들과는 전혀 다른 대우였다. 운이 좋은 날이다. 잠시 후 내 팥빙수가 완성됐다. 넘칠 듯한 팥빙수 그릇을 두 손으로 곱게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걷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가야 한다. 지금 당장 먹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가끔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의리 없이 은수를 빼고 혼자 먹을 수는 없었다. 엄마는 지금까지 형제는 뭐든 나눠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끔 욕심이 나서 혼자 먹는 날에는 어김없이 엄마한테 손바닥을 맞았다. 언제부턴가 매는 우리의 형제애를 더 크게 만들었다.
'아. 왜 이렇게 먼 거야...'
빨리 걷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다 엎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깐. 마음이 자꾸 조급해졌다. 팥빙수 그릇 위로 쌓인 눈 산이 조금씩 낮아지기 시작했다. 집에는 다섯 살 은수가 혼자 있다. 밖에서 잠긴 문안으로 말이다.
엄마가 학교가 끝나면 최대한 빨리 와서 은수랑 놀아주라고 했다. 이사 오기 전까지는 그렇게 귀찮았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은수가 생각났다. 집에 오는 길은 갈 때보다 멀게 느껴졌다. 점점 낮아지는 팥빙수 눈 산을 보며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참았다.
어느 순간 집에 도착했고,
은수가 있는 방문을 열쇠로 열었다.
"내 팥빙수..."
그릇 안에 눈 산은 이미 거무튀튀한 바다가 되어 버렸다. 바다 위에는 팥 알갱이가 두세 개 떠 있었다. 내 눈에도 바다가 가득차 출렁였지만 절대 밖으로 떨어뜨리지 않았다. 떨어뜨리는 순간 이 방 전체가 바다가 된다는 걸 알았으니깐. 난 형아니깐.
"형아, 그게 뭐야?"
해맑은 얼굴로 코를 닦으며 나를 쳐다보는 은수와 국물이 된 팥빙수를 정확하게 반반씩 사이좋게 나눠 마셨다.
-진정성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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