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별이 되다(친할머니)

춤추는 별이 되다

by 진정성의 숲


아빠가 사라지고 난 후 할머니도 포장마차를 그만두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할머니와 아빠는 달랐지만 닮았다. 한곳에 오래 있는 게 불편해 보였다. 우리를 보면 살갑게 대해 주셨던 외할머니와 다르게 할머니는 왠지 무뚝뚝했다. 엄마 말로는 예전에 할머니가 서울에서 장사를 오래 했다고 했다. 무슨 장사였는지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포장마차를 익숙하게 했던 걸로 보면 아마 비슷한 거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항상 외로워 보였다.


내가 여섯 살 때쯤인가 나와 은수만 서울 할아버지 집에 맡겨진 적이 있었다.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고가도로가 보이는 큰 길로 조금 들어가면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벽을 지나 번쩍이는 나무 대문이 보였는데 그 집이 바로 서울 할아버지 집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엄마도 아빠도 없이 은수와 둘이 반 년이 넘게 있었다. 그 집에는 할머니보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 보이는 서울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엄마인 호랑이 할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고모와 삼촌이 함께 살았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할머니가 외로워 보이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서울 할아버지는 대머리였는데 매일 정장에 모자를 쓰고 일을 보러 나갔다. 서울 할머니는 무당이었다. 서울 집에 들어서서 왼쪽으로는 법당이 있었고 안쪽으로는 큰 거실과 안방 또 오른쪽으로 방 세 개가 연결되어 있었다. 나와 은성이는 오른쪽 방 중에 호랑이 할머니와 같은 방을 써야 했다. 호랑이 할머니는 나와 은성이가 붙여준 별명이었다. 호랑이 할머니는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패어 있었고 흰색 모시로 된 한복을 입고 항상 인상을 쓰고 있었다. 은수와 나는 그런 호랑이 할머니가 너무 무서웠다. 집에는 까만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는데 늘 호랑이 할머니는 그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앉아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보이면 누구든 욕을 하기 시작했다. 가끔은 하늘에 대고 소리를 치기고 했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최대한 나와 은수는 아침에 일어나면 밖으로 나왔고 호랑이 할머니가 방에서 나오면 방으로 들어갔다. 고모는 우리를 이뻐했지만 삼촌은 집에서 잘 볼 수가 없었다. 서울 할머니는 늘 삼촌 걱정을 했다.


그리고 이 집으로 오면서 엄마가 꼭 하지 말라고 한 말이 있었는데 그건 할머니 얘기였다.


"엄마! 서울 할아버지랑 할머니랑은 왜 같이 안 살아?"

"엄마! 무당 할머니랑 우리 할머니랑 누가 진짜 할머니야?"


언젠가 엄마랑 잠시 서울 할아버지 집에 갔다 올 일이 있었는데 그날 궁금해서 물었던 내게 엄마는 이렇게 얘기했다.


"은성아. 진짜 할머니 가짜 할머니가 어디 있어. 다 같은 할머니야."


이제 나도 안다. 서울 할아버지 집에는 우리 할머니가 갈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호랑이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 사람 중에 욕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 바로 할머니다. 호랑이 할머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할머니는 나쁜 년이야! 아주! 내 아들 홀려낸 아주 나쁜 년!"


이게 무슨 소리인지 그때는 잘 몰랐지만 이제 조금은 알 거 같았다. 하지만 모른 척해야 한다. 어른들은 내가 모른 척하면 정말 모르는 줄 안다. 어른들은 속이는 건 이제 너무 쉽다. 국민학교 3학년 정도 되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슬플 때도 있지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도 많다.


그렇게 우리는 반년 넘게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까지 떨어져 있었다. 집이 너무 좋았고 매일 법당에 올려지는 떡갈비와 생선을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지만 매일 밤 자기 전에 은수를 꼭 껴안고 속으로 기도했다.


내일은 꼭 엄마가 우리를 데리러 와 달라고.


그렇게 반년 만에 다시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를 만나는 날 너무 행복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우리는 셋이었다가 넷이었다가 다시 다섯이 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제 아빠와 할머니가 다시 우리 곁을 떠나서 우리는 다시 셋이 되었다.


그렇게 아빠와 할머니는 달랐지만 많이 닮아 있었다.


-진정성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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