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별이 되다(최루탄)

춤추는 별이 되다

by 진정성의 숲


"으...케엑! 케엑! 케엑!..."


손으로 최대한 코와 입을 막았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눈에서는 눈물이 났고 콧물이 자꾸 흘렀다. 집이 가까워지면 질수록 보이지 않는 가스가 내 모든 구멍으로 침투했다. 아빠와 할머니가 떠나고 엄마는 독쟁이 시장에서 장사를 그만두었고 우리는 또다시 이사를 했다. 그렇게 이사 온 집은 전보다 좋았다. 2층으로 된 주택으로 집주인을 포함해서 세 집 정도가 살았는데 햇빛이 잘 들어왔다. 마당도 좀 넓어서 은수랑 여름에는 아래위층을 오가며 신나게 물총 싸움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이곳이 마냥 좋지만은 않은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집과 불과 5분도 안되는 곳에 대학교가 있었는데 시도 때도 없이 학교에서 눈물과 콧물이 나는 연기들이 밀려 나왔다. 엄마한테 '데모'라는 말을 처음 들은 건 그때였다. 전보다 좋은 집으로 이사 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이유였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사실 이곳은 대학생들에게 하숙이나 자취를 하는 집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내 또래 아이가 있는 집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와 은수는 집에서 둘이 놀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새로운 직장을 구했다. 어느 날 엄마가 백과사전을 낑낑대며 가져왔다. 우리는 호기심이 생겨 책을 펼쳐 보려고 했지만 엄마는 절대로 펼쳐보면 안 된다고 했다. 한번은 은수가 몰래 하나를 빼와서 보다가 살짝 구김이 생겼는데 엄마가 알고는 은수를 엄청 혼냈다.


엄마가 가져온 백과사전은 우리를 위한 게 아니라 팔기 위한 샘플이었다는 것을 얼마 후에 알게 되었다. 그다음부터는 은수와 나는 책에 손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가 일이 익숙해진 시점에는 실제 우리를 위한 책들을 정말 많이 가져다주었다. 동화책부터 백과사전까지 종류도 다양했지만 난 인체의 신비라는 책을 가장 좋아했다. 나중에는 책이 너덜너덜 해져서 걸레처럼 될 때까지 반복해서 읽었다. 하지만 이렇게 읽은 책은 몇 권 되지 않았고 나중에는 은수와 나에게는 책이 장난감 블록이었다. 책을 세워 집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방바닥에 길을 만들어 놀기도 했다.


엄마는 영업왕이었다.


독쟁이 시장에서도 처음에는 낯설어 했지만 나중에는 나와 은수의 춤이 없어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불러들였다. 그리고 엄마는 한번 말이 트인 사람한테는 물건을 살 때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보통 사람들이 그 말에 질리거나 홀려서 사게 했다. 엄마는 아빠와 결혼하고 많이 변했다고 한다. 처녀 때는 어디 나가서 한마디도 못하는 숙맥이었다고 하는데 사실 믿기 어려웠다.


엄마 일이 바빠지면서 우리는 더 오랫동안 은수와 둘이 놀아야 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좋았다. 둘이 노는 게 더 익숙했고 더 좋았다. 1학년인 은수가 먼저 학교에서 돌아오면 장롱에서 이불을 다 꺼냈다. 그러고는 내가 오기 전까지 방바닥을 다 이불로 깔고 날 기다렸다. 내가 집에 오는 순간부터 우리만의 프로레슬링을 시작됐다. 우리만의 프로레슬링이 텔레비전과 다른 건 단 하나였다. 쓰러져도 아프지 않게 집에 있는 옷이란 옷은 다 껴입었다. 그렇게 옷에 들어간 솜으로 우리는 근육맨이 되었다.


"으~~~아! 난 워리어다! 그래 덤벼봐라!"


"하하하! 웃기는군! 감히 이 헐크 호건한테 까불다니 겁도 없구나!"


빅 매치가 매일 캐릭터만 바뀌며 계속됐다.


텔레비전에서도 잘 볼 수 없었던 세기의 대결이 우리 집에서는 매일 계속됐다.

그렇게 은수와 나는 서로에게 하나밖에 없는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은수의 여덟 번째 생일에는 엄마가 준 용돈을 몇 달을 모아 은수에게 곰인형을 선물했다. 학교에서는 상남자처럼 굴었지만 난 사실 인형을 좋아했다. 은수가 더 어렸을 때는 같이 놀지도 못했기에 인형이 나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친구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은수에게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집에 오는 길에 인형가게 유리 창으로 체크 색 조끼를 입은 하얀색 곰을 보게 되었다. 은수의 친구로 딱 점 찍어 놓고 몇 달을 모아 은수에게 선물했다.


이제 내가 없을 때도 은수가 심심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최루탄 때문에 눈물과 콧물을 흘려야 했지만 우리 집은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엄마가 올 시간쯤 장롱 아래 칸은 내가 위 칸은 가벼운 은수가 들어가 숨었다. 그리고 안에서는 잘 닫히지 않았던 문을 억지로 안으로 당기며 우리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 잠시 숨죽여 있다가 엄마가 들어온 순간 장롱을 활짝 열고 워! 하며 엄마를 놀랬다. 그러고는 엄마의 반응은 상관도 하지 않고 둘이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었다. 그런 우리를 보면서 엄마도 같이 이불 위로 쓰러져 뒹굴며 웃었다.


행복했다.


엄마가 이젠 울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도 웃음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누구도 기다리지 않았다.


이렇게 평생 셋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정성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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