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별이 되다(목화 예식장)

춤추는 별이 되다

by 진정성의 숲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식당 입구를 들어가기 전부터 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테이블 하나를 타깃으로 정했다. 하얀색 천으로 전체가 덮여진 의자에 재빠르게 앉자마자 갑자기 쉰내가 확 풍겼다. 나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손 틈 사이로 냄새가 파고들어 내 코를 마비시켰다. 분명히 내 옆에 앉아 있는 어른이 풍기는 냄새였다. 얼마나 냄새가 고약한지 옆으로 얼굴을 돌릴 생각조차 못 하고 있는데 갑자기 거무튀튀하고 거친 손 하나가 내 앞을 순식간에 지나갔다. 내 앞에 있던 접시 하나를 낚아채 자기 앞으로 가져가서는 주변 사람은 의식도 하지 않을 채 게걸스럽게 닭강정을 손으로 먹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속에서 열불이 나기 시작했다. 너무 순식간이라 방어할 시간도 없이 당했다.

'내 닭강정...'

닭강정이 사라지는 순간을 멍하니 바라만 보던 나는 그가 풍기는 고약한 냄새가 어쩌면 그가 가진 최고의 무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냄새로 교란하여 상대방을 당황시키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그런 무기. 그는 목화 예식장과 가까운 인주역에서 있던 노숙자였다.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얼마 전 은수랑 인주역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인주역 출구로 나오면 바로 왼쪽으로 흡연장이 있다. 담배 냄새가 가득한 그곳에 작은 벤치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그는 그 벤치에 누워있었다. 그때 멀리서 바라본 게 다지만 그만큼 행색이 도달 아져 보여서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필 이런 데서 그와 다시 만나다니 기분이 참 묘했다.

"야. 너네들끼리 왔냐?"

순간 나는 움찔했다. 머리카락은 머리카락 덩어리라고 할 만큼 두껍게 뭉쳐 있었다. 또 옷은 여름인데도 몇 겹을 껴입어서 근육맨처럼 부풀어 있었다. 나와 내 맞은편에 앉은 은수에게 눈을 흘기며 말하는 걸 보니 분명 그는 우리를 얕잡아 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어쩌면 그냥 귀찮은 대상쯤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고개를 돌려 나를 보는 눈빛이 느껴졌지만 옆으로 보지 않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몇 초간 그가 무슨 말을 할까 긴장하고 있는데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테이블에 있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나와 은수도 가자미눈을 풀고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직관적으로 그도 알고 있었던 걸까?

우리가 자신과 같은 목적으로 여기 왔다는 것을?

이상하게 같은 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식당에 들어오는데 성공하자 긴장이 좀 풀려서인지 배가 더 고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닭강정은 사수하지 못했지만 동그랑땡, 잡채, 보쌈 등 눈앞에 놓인 진수성찬을 천천히 즐기기 시작했다. 일단 미리 세팅되어 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 데 직원이 쟁반에 국수를 가져오는 게 보였다. 아까 오면서 혁준이가 말해준 주의 사항을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목화 예식장 방문 철칙

'들어가기 전 신랑이나 신부 이름 외우기'

'절대 우리끼리는 같이 앉지 않기'

'어른이 있는 테이블에 끼어 앉기'

'더 먹고 싶다고 절대 따로 손을 들고 부르지 말기'

'음식 리필은 안됨, 더 먹고 싶으면 다른 테이블에서 몰래 가져오기'

'예식장을 완전히 나가기 전까지는 우리끼리 서로 아는 척하지 않기'

직원이 우리 테이블 모서리 쪽에 쟁반을 걸치고 국수를 하나씩 자리에 놓아주었다. 국수를 건네받으며 최대한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벌써 세 번째 이곳에 왔는데도 아직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나랑 세 살 차이 났지만 은수는 오히려 나보다 더 태연해 보였다. 내가 괜찮다고 하니깐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직원은 우리한테 먼저 국수를 주고 이제 내 옆에 노숙자 아저씨한테 그릇을 건넸다. 국수 그릇을 자기 앞쪽으로 가져다주는데도 그는 다른 음식을 먹느냐고 정신이 팔려 있었다. 직원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더니 국수 그릇을 놓고는 식당 입구 쪽으로 돌아가서는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직원에게 뭔가를 얘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이 많은 직원이 무슨 말을 하자 서빙을 했던 직원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왜 이쪽으로 걸어오는 걸까?'

뭔가를 따지러 오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지금 우리 테이블에는 노숙자 한 명과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 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어색한 광경이긴 했을 거다. 좀 빠른 걸음으로 테이블로 앞까지 도착한 직원은 노숙자 아저씨한테 물었다.

"아저씨. 누구 쪽으로 오신 거예요?"

질문의 의도는 신랑 측인지 신부 측인지를 물어보는 거였다. 노숙자 아저씨가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멀뚱멀뚱 직원을 쳐다봤다.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직원이 이내 인상이 구겨지더니 아저씨한테 뭔가를 얘기하려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신랑이요!"

노숙자 아저씨한테 쏠렸던 시선이 한순간 나에게 옮겨졌다. 예식장을 들어오기 전에 우리 동네 싸움 최고인 혁준이가 말해 준 '목화 예식장 방문 철칙'을 계속 되뇌고 있었는데 긴장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와 버린 거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지만 말은 태연하게 했다.

거짓말은 최대한 태연하게 해야 한다는 걸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몸에 배어 있었다.

솔직한 게 언제나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난 이미 알고 있었다.

한 시간 전 목화 예식장에서 30미터 떨어진 곳에서 혁준이, 나와 은호 그리고 동네 아이들 세 명이 모였다. 그 자리에서 혁준이는 예식장에 들어가서 주의할 것들과 꼭 해야 할 것들을 천천히 말해주었다. 사실 혁준이와 다른 아이들은 벌써 6개월이 넘게 목화 예식장에 왔기 때문에 여유가 있어 보였고 혁준이 얘기를 긴장하며 듣는 건 나와 은호뿐이었다. 그래도 내 친구 혁준이가 있으니 마음이 놓였다

"내 말 잘 들어~!

일단 첫 번째는 식당 들어가기 전에 예식장 쪽으로 가서 반드시 신랑 이름이나 신부 이름 중 하나는 꼭 외워!

예식장 직원이 혹시 물어보면 어물쩡거리지 말고 바로 얘기해야 돼! 그게 출입증 같은 거니깐. 그리고..."

나는 혁준이가 말한 대로 직원의 질문에 출입증을 내민 것이다. 비록 그 질문이 나에게 한 게 아니라 노숙자 아저씨한테 한 거라는 게 달랐던 것뿐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노숙자 아저씨가 쫓겨나면 한 테이블에 있었던 우리도 마찬가지가 될 게 뻔했으니깐. 내가 갑작스럽게 대답을 한 후 직원은 잠시 멈칫하더니 나를 보며 다시 물었다.

"신랑이 누군데?"

"김민철이요."

"응... 그래?"

직원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되돌아서 식당 입구 쪽으로 갔다. 사실 손님이 밀려드는 상황이어서 다른 직원이 오라는 손짓을 했고 결혼식이라는 좋은 날에 소란을 일으키는 걸 원치 않는 눈치이기도 했다. 이건 혁준이가 말해준 부분이 있기에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 우리가 식당에 들어간 순간 내쫓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신랑이나 신부 이름만 외우면 말이다. 어차피 식당은 별도로 체크하는 사람이 없으니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90%는 성공이라고 말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부모가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니 함부로 뭐라고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 대신 애들끼리 몰려서 한 테이블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되도록 어른이 있는 테이블에 끼어서 앉으라고 했다.

직원이 돌아가든 말든 노숙자 아저씨는 음식을 먹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긴박하게 직원을 돌려보냈는데 저렇게 태평하게 음식을 먹는 노숙자 아저씨가 왠지 얄미웠다. 그래도 금세 마음이 풀렸다.

우린 같은 편이었으니깐.

긴장된 시간이 지나고 여유롭게 나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 노숙자 아저씨한테 뺏긴 닭강정도 옆자리에서 살짝 가져와 먹을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먹는 닭강정은 맛은 황홀했다. 앞서 괜히 왔나 하고 후회했던 시간을 무색하게 할 만큼 맛있었다. 은수도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이제부터 통닭을 먹었다는 친구의 자랑에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 일주일에 한번은 닭강정을 먹을 수 있었으니깐.

행복했다.

6개월에 한번 먹을까 말까 한 음식들을 이렇게 공짜로 먹을 수 있다니 혁준이는 정말 천재라고 생각했다. 정확히 식당에 들어가서 30분 후에 우리는 예식장 건너편에 있는 정다운 슈퍼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모두 혁준이가 정한 규칙이다. 매주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을 수만 있다면 누구의 말도 따를 수 있었다.

"다 왔지? 무슨 일 없었고?"

그 후 2주에 한 번씩 우리는 목화예식장에 가서 음식을 먹었다. 나중에는 예식장 구조까지 익숙해져서 음료수를 들여오는 뒷문에서 사이다와 콜라를 짝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고는 집에 와서 집 냉장고를 음료수를 가득 채우고는 뿌듯해했다. 처음에는 엄마가 어디서 난 거냐고 물었지만 그냥 친구가 줬다고 얼버무렸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했다.

“엄마! 내가 음료수 채워놨으니깐 먹고 싶을 때 시원하게 먹어!”

목화예식장을 자주 다니다 보니 직원들이 우리의 얼굴을 익혔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목화예식장에 갔다. 어차피 결혼은 잔치라는 인식이 강했고 알면서도 대놓고 막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느 정도 공짜로 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암묵적으로 허용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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