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문인'이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특별한 느낌

by 진정성의 숲

내 이름은 문인이다.


어릴 적부터 내 이름 얘기만 나오면 엄마는 나한테 이렇게 얘기했다.


"네 이름에 한자 人(사람 인)은 사람 이름에 쓰지 않는 한자인데 네 아빠가 잘못 올린 거야."


엄마는 잊을 만하면 人(사람 인)을 仁(어질 인)으로 바꾸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그때마다 건성으로 듣고 흘려 넘겼다.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좀 더 솔직히는 한글 이름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시간을 쓰는 게 귀찮았다. 나에게 이름은 그렇게 큰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人(사람 인)이 쓰기 쉬어서 좋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한국의 문인들이 소개될 때 살짝 민망하긴 했어도 살면서 내 이름에 의미를 둘만한 사건이나 상황들은 없었기에 그렇게 나는 그냥 文人(문인)으로 살았다.


두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회사 아침 조회 시간.

영업부서의 전통이었던 3분 스피치 시간에 앳된 얼굴을 한 신입사원이 50여 명의 선배들 앞에 서 있다.


"선배님들 따라 해 주십시오!

"나는!" (나는!) "모든 면에서!"(모든 면에서!) "날마다 더!"(날마다 더!)

"나아지고 있다!"(나아지고 있다!)


얼떨결에 회사 선배들은 구호를 따라 했지만 반응은 다양했다. 우리 회사에 물건이 들어왔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당돌하고 버릇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위계질서가 철저했던 회사 분위기와는 정반대인 신입사원이 들어온 것이다. 입사가 정확히 1년 차이 나는 후배는 나와 같은 팀에 배정받았고, 나는 조금은 독특한 후배의 바로 윗 선임이 되었다. 다소 왜소한 체격이었지만 마라톤을 즐겨할 정도로 다부졌고, 말을 할 때는 사람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평소에는 차분해 보였지만 현장 영업을 하면서는 담당자에게 무모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오랜 기간 공들였던 대형 입찰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감정이 격해져 눈물을 쏟아냈다. 이렇게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는 후배와 나는 나이가 같았다. 그리고 살고 있는 지역까지 같은 인천이라 우리는 금방 가까워졌다. 그런데 2년 후 후배는 여러 가지 이유로 회사를 퇴직했고, 우리는 선후배 사이에서 친구사이로 바뀌게 되었다.


그 후 우리는 일주일에 3번 이상은 만나며 인생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런데 가까워지면 질수록 이 친구는 나에게 이상한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너는 꿈이 뭐야?"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너희 사명과 비전은 어떤 거야?"


"뭐?"

"음......"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띵했다.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조차 힘에 겨웠다.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딸아이에 대한 생각과 매일 밀려드는 회사 일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주 5일을 피곤함에 쩔어서 살았고 주말 2일은 시체가 되었다. 고갈된 체력은 한 없이 떨어졌고 방전된 정신은 메말라 갔다. 이런 반복된 일상을 살다 보니 내가 나의 인생에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살아지는 대로 살고 있는 듯했다.


나의 생각 속에는 내가 없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받고 싶은 것보다 내가 해줘야 하는 것을 먼저 생각했고,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누군가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했다. 그런데 친구와의 만남이 잦아질수록 친구가 내게 한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소크라테스에게 질문을 받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같이 있는 사람이 끊임없이 생각할 수 있도록 질문을 쏟아내는 친구의 생각은 명확했다.


자신의 사명과 비전, 핵심가치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분명하다는 것.

그렇게 점점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할 무렵, 친구는 내가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다며 인천에 한 중국집으로 날 끌고 갔다. 누가 봐도 친구의 외모와 흡사해 보이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친구는 세 살 차이가 나는 그 동생과 대학교 때부터 알던 사이였고, 그동안 서로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대해 많은 부분을 공유한 사이였다. 놀라웠던 것은 그 동생도 자신의 삶에 대한 방향이 확고히 서 있었고 인생의 닉네임까지 있었다. 나에게 이 두 사람은 신세계 같았다. 그리고 첫 만남 이후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서로의 삶을 공유하게 되었고 우리는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와 같은 의형제가 되었다.


과거의 무용담, 시답잖은 이야기로 휘발성 강했던 술자리가 점점 미래에 대한 얘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두 사람과 술자리를 하면 꼭 다음날 하고 싶거나 해야 할 일들이 생겼다. 두 사람은 나에게 마치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데미안' 같은 존재였다. 그들을 만나면 만날 수록 나는 내 의식의 알을 깨고 다른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다른 세상에 눈을 떠갈 때쯤 나의 데미안들은 내게 특별한 선물을 주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책 선물이었다.


'난 전공 책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이들은 내가 읽지 않는 것에도 개의치 않은 듯 한 번으로 선물을 끝내지 않았다.

한 권, 두 권... 자꾸 집에 책이 쌓여갔고 책상 위에 탑이 될 때쯤 결심이 생겼다.


'나도 나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자'

'지극히 평범하지만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일주일에 한 권의 책을 선물하자'


왕복 3시간의 출퇴근 시간 동안 지하철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나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라 나에게 주는 고통과 같았다. 독서라는 단어 자체도 생소할 만큼 책을 읽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얇은 책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 브런치와 다른 SNS에 '지하철 독서'라는 이름으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고통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변화가 되었다. 힘겨운 현실로 날 이동시켰던 지하철이 읽고 생각하고 쓰고 다시 읽고 생각하고 쓰는 '나만의 서재'가 되었다.


7년의 시간.


매일 아침 교통카드 열람표를 끊고 지하철 도서관에 들어가 책을 읽으며 조금씩 난 변화되고 있었다. 책에는 다양한 지식과 많은 사람들의 경험들이 담겨 있었고 난 그것들을 탐닉했다. 특히 내가 좋아했던 분야는 자서전과 에세이였다. 어떤 사람도 처음부터 특별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에 유명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엿보는 게 좋았고 나도 그들처럼 특별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서 자서전이 좋았다. 그리고 평소 생활에서의 느낌들을 읽고 공감하는 것이 좋아했기에 에세이도 좋았다. 그렇게 사람에 집중된 책이 좋았다.

책을 읽고 내 생각을 표현하고 SNS에 올려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시간 속에서 그동안 홀로 남겨 두었던 '나'를 깊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 답게 세상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또 다른 고민으로 이어졌다. 나답게 산다는 것에 전제는 '나 답다'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데 정작 그걸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싶었던 일들을 현실에서 실행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실행의 과정 속에서 '나다운 것이 어떤 것 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먼저 글쓰기 과정에 등록했다. 책을 읽다 보니 글을 쓰고 싶었다. 매주 주말 서울에 있는 글쓰기 교실로 가서 평일 쓴 글을 작가님에게 교정받았다. 그런데 첫 주부터 좌절을 경험했다. 글의 논리와 흐름이 문제가 아니었다. 맞춤법이 엉망이었다. 열 살짜리 딸아이에게 한글을 틀린다고 뭐라고 했던 내가 말이다. 작가님이 마치 빨간펜 선생님 같았다. 모르면 더 용기가 난다고 했던가. 점점 글 쓰는 게 좋아졌다. 중학교 1학년부터 아버지의 부재로 겪었던 많은 어려움이 글 속에 담겼고, 나도 모르게 마음속 깊은 곳에 아픔이 되살아 났다. 근데 이상하게도 아팠던 글을 쓰면 쓸수록 속이 후련해졌다. 마음으로 쏟아낸 글을 사람들이 함께 읽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글쓰기는 나에 대한 위로와 함께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경험했고 그 속에서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알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4개월의 시간 동안 나와 동기들은 우리들의 이야기에 빠져 울고 웃었고 마지막 수업시간에 작가님이 말씀하셨다.


"글을 쓰고 싶다는 건 가슴속에 아픔이 있다는 거예요."


그랬다. 나는 분명히 아픔을 담고 사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글이 쓰고 싶었던 거였다.


글쓰기 과정을 통해 난 잊고 있었던 '과거의 나'를 볼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과거의 나를 보게 되니 미래에 내가 무엇을 꿈꾸고 있는 지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자신의 길을 주체적으로 살고 계신다고 생각했던 현직 CEO분에게 SNS 메시지를 통해 만남을 요청드렸다. 좀 무모한 행동이었지만 감사하게도 승낙을 해주셔서 친구와 함께 그분의 직무실에 찾아가 얘기를 들어 볼 수 있었다. 처음부터 CEO를 목표로 하셨는지, 어떻게 그 자리까지 가실 수 있었고,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고 싶으신지 등 나보다 앞서 살아가신 그분께 내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바탕으로 많은 것을 여쭤 보았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생활하시는 강원도의 별장에서의 생활이었다. 그곳은 휴식의 공간이기도 했지만 교류의 공간이기도 했다. 늘 여러 분야의 명사들과 대학생 멘토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찾는 곳이었다. 핸드폰도 되지 않는 산속에서 함께 있는 사람에게만 집중하고 맘껏 노래 부르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강원도의 칠흑 같은 새벽. 모닥불 앞에서 그분이 해주신 말씀 중에 하나가 내 가슴에 별이 되어 박혔다.


'살아지는 대로 살지 말고 살아가는 대로 살아가라.'


내가 꿈꾸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독립적이며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는 삶.


이렇게 나는 내가 꿈꾸는 미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나를 찾기 위한 도전이 거듭될수록 조금씩 용기가 더 생겼다. 그래서 이번에는 인천문화재단에서 주체하는 시민이 참여하는 뮤지컬에 도전했다.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이었던 나였기에 지금까지 누구 앞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건 상상도 못 했던 나였기에 더 해보고 싶었다. 온전히 나를 세상에 드러내고 싶었다.

초등학생부터 60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어색했던 첫인사를 마치고 두 번째 모임에서 우리는 각자의 꿈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소 좁은 연습실 땅바닥에 우리는 둘러앉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세대가 다양한 만큼 각자의 꿈도 다양했다. 뮤지컬을 연출해 주신 연출가 선생님은 그런 우리들의 꿈을 작품으로 만들자고 하셨고, 우리들의 꿈 이야기가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뮤지컬의 제목이 '꿈스(터디) 꿈스(케치)'가 되었다. 약 4개월의 기간 동안 현실의 시간을 쪼개어 연습을 했고 드디어 공연 날이 돌아왔다. 새벽같이 눈을 떠 인천 문화예술회관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선다는 긴장감 때문인지 이틀의 공연이 빛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마지막 공연의 커튼콜 시간에 내가 서 있었다. 관객에게 인사를 하는데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딸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가슴속에서 뜨겁게 무언가가 쏟아올랐다. 그동안 내 삶의 전부였던 사람들이 날 인정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울컥했다. 아들, 남편, 아빠가 아닌 온전한 나로 서 있었다. 온몸이 뜨거웠다.


비로소 나는 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


나의 '데미안 친구들'과 그들이 선물한 책을 통한 도전은 나다운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주었다. 그 덕분에 아직 미완성인 나의 사명과 비전, 삶이 가치를 조심스럽게 종이 위에 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문장을 집 책상과 핸드폰 바탕화면에 옮겨 매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동안 의미 없던 것들이 의미가 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문인아. 너 한자 바꿨어?"


"아니. 엄마 나 안 바꿀 거야! 나 내 이름이 좋아졌어."


그동안 의미를 두지 못했던 내 이름이 보였고, 나 문인(文人)이 보였다. 일부러 엄마의 거듭되는 잔소리에도 이름의 한자를 바꾸지 않은 다른 이유가 생겼다. 이제는 엄마에게 그 이유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 아깝고 귀찮아서가 아니라, 내 이름이 왠지 나를 나 답게 살 수 있도록 주문을 거는 것 같다고.


나에게 오늘도 주문을 외운다.


글(文)을 사랑하고 사람(人)을 사랑하며 살고 싶은

나는 문인(文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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