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겁쟁이가 된 이유
눈앞에서 소매치기를 목격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이 질문을 내가 소매치기를 목격하기 전의 나에게 했다면 가서 소매치기당한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고 대답했을 거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난 세상 최고 겁쟁이라고 해도 거짓말이 아니다. 이상하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더더 겁쟁이가 되어간다. 그렇다고 아무 계기 없이 겁쟁이가 되는 건 아니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경험하고 그렇게 나의 겁쟁이 마음은 점점 부풀어져 간다.
많은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일단, 뾰족한 것.
2년 전 어느 날, 냉동고기를 칼로 떼어보겠다고 덤볐다가 칼에 그대로 찔렸다. 베인 정도가 아니라 찔렸다. 그렇게 피가 줄줄 나는 손을 지혈하며 병원에 가서 8 바늘을 꿰매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다행히 인대를 피해 찔렸기 때문에 대수술은 피했다.
그 이후로, 칼과 가위 같은 뾰족한 것들을 보면 자연스레 겁부터 먹는다. 그 이후로 생긴 우리 집의 룰이 하나 있는데, 식사 준비를 하며 칼을 사용하면 무조건 사용하자마자 설거지하는 것이다. 겁쟁이인 나 때문에.
두 번째, 운전, 특히 커브길
이건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생긴 두려움이다. 커브를 돌며 자동차 바퀴가 인도 보도블록에 닿은 적이 있는데 그때의 충격과 두려움이 아직까지도 커브길을 두렵게 만든다. 운전자가 신랑이든, 아빠든, 엄마든, 버스운전기사든, 택시든. 나보다 다 운전경력이 많은 사람인데도 이상하게 무서워진다.
세 번째, 화재
결혼 전, 내가 다니는 교회엔 큰 불이 났었다. 원인모를 화재였고 본관이 건물 형체만 남고 다 타버릴 정도로 큰 화재였다. 그 시간 나는 교육관 건물에서 여름수련회 준비를 하고 있었고 눈앞에서 작은 연기부터 시작된 불이 대형화재로 이어지는 모습을 모두 보게 되었다. 결혼을 한 달 앞두고 일어난 일, 교회 예식이 예정되어있던 우리는 결혼 한 달 전, 예식장을 다시 알아보고 청첩장을 새로 찍는 일이 있었다. 결혼 전 피부 관리는커녕, 예약했던 피부관리는 모두 취소한 채 잿더미가 된 교회를 청소하는 일에 힘썼다.
그 이후로 타는 냄새만 나면 예민해진다. 불이 날 것 같은 일들에 겁이 많아졌다. 작고 작은 우리 집에 소화기만 두대가 있다.
네 번째, 소매치기
남미 여행을 하면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있다. "치안이 좋지 않으니 조심해야 해.", "사진 찍고 있으면 핸드폰을 가지고 도망간대.", " 가방을 가지고 도망간대. " 등등.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갔던 한인교회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소매치기가 자주 일어나는 곳이니 늘 붙어 다니고 조심하라는 이야기. 내가 직접 내 눈앞에서 소매치기를 경험하기 전까지 그냥,, 예의상 조심하라고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유튜브에서나 봤을법한 일이 내 눈앞에서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까.
파란 하늘이 예쁘기만 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사진이 아쉬운 건, 혹시 모를 소매치기를 위해 공기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신랑과 함께 시티투어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곳에서 사진을 남기고 싶어서 아주 열심히 노력했는데 꽤나 사진 찍기 어려운 곳이었다. 크고 높아서 그런가? 심지어 사진 찍기 위해 줄 서있는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했는데 본인 손도 같이 찍어주심...
음 이게 뭘까? 본인 손까지 풍경으로 남기고 싶으셨던 걸까?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른 날 다시 인증샷을 남기기로 했다.
그렇게 드디어 완성한 우리의 인증샷. 다행히 이날 찍어주신 분은 손이 안 나오게 찍어주셨다.
그리고 눈앞에서 목격한 소매치기의 시작. 물론 우리가 겪은 일은 아니다. 그저 눈앞에서 목격했을 뿐.
우리처럼 저곳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여기저기 카메라로 멋진 장면을 남기고 있던 어느 여성분, 후드 집업을 걸치고 계셨고, 가방은 어깨에 메고 계셨다. 그리고 갑자기 들려온 비명소리.
아아아 아아아악
모두가 동시에 소리가 난 곳을 쳐다봤지만 그 누구도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범인은 그녀의 가방을 낚아채고 도망가려다가 그녀가 범인의 바지를 잡고 늘어지는 바람에 시내 한복판에서 넘어지고, 뒹굴고 난리가 났다. 그녀가 도와달라고 계속해서 소리쳤지만 정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 순식간이었고, 무서웠다.
30초 정도, 그녀가 범인의 옷을 잡고 늘어진 사이 범인은 그녀의 가방을 훔친 채 그녀가 잡은 옷을 벗어버리고 왕복 10차로는 되어 보이는, 차가 쌩쌩 달리고 있는 도로로 그냥 도망쳤다. 도망가는 범인 때문에 놀란 운전자가 한둘이 아닐 거다. 모두 빵빵거리며 급브레이크를 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아난 범인은 엄청난 인파가 몰린 축제 현장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그녀는 범인이 떠난 자리에서 한동안 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소리쳤지만 이미 범인은 떠나고 난 뒤였다. 정말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하필 축제가 열리고 있던 그날, 그곳. 수많은 인파 속으로 범인이 도망친 곳을 한동안 응시하며 내 가방, 내 핸드폰, 귀중품을 다시 한번 체크하기 시작했다. 이 무슨 소설 같은 일인가?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모두 내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 여행한 브라질에서 세계 최고 겁쟁이 타이틀을 한채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슬픈 이야기. 순식간에 내 눈앞에서 일어난 일. "가서 도와줬어야지, "라고 누군가 말할 수 있지만 정말 그 상황에 영어도, 스페인어도 못하는 내가 어버버 거릴 수밖에 없던 것이 너무 창피했다.
그렇게 세계 최고 겁쟁이가 된 나는 지금도 여전히 겁쟁이 타이틀을 유지 중이다.
내가 이런 소설 같은 일을 눈앞에서 경험하게 되다니. 만약 당신이 눈앞에서 소매치기를 목격한다면? 겁쟁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처럼.
그렇다고 여행을 즐기지 못할 이유는 없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을 더 조심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