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저 누군가가 귀 기울여 들어주길 바란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말은 경청하지 않는다.
자신과 연관이 없으면 바로 말을 돌리거나 다른 생각을 한다.
"아, 그래? 그렇구나" 이 정도는 듣는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지만 듣는 사람의 생각과 말은 다르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라면을 엄청 좋아하는 줄 알아! 그런데 사실 아니거든, 나는 라면국물을 먹기 위해 면발을 허겁지겁 먹어치 우는 것인데 다들 오해를 하더라고 하하하하"
"나는 콩나물국밥을 먹을 때 콩나물을 허겁지겁 건져서 먹거든, 그런데 그걸 보고 사람들이 내가 콩나물을 엄청 좋아하는 줄 알아, 그런데 사실 나는 콩나물국밥 속 국밥과 국물을 먹기 위해 그 많은 콩나물을 허겁지겁 건저 먹는 것인데 다들 오해를 하더라고 하하하하"
그 자리에서의 주인공은 밥을 사는 사람도 아니고 모든 사람을 웃길 수 있는 사람이다.
웃게 해주는 사람.
"홍차야~ 내려와 방충망 찢어진다고 얼른 내려와"
"홍차야~ 간식 먹자~~"
이 두 가지 말을 했을 때 우리 고양이 홍차는 두 가지 반응을 한다.
첫 번째 방충망에 올라가 긁어대는 모습에 내려오라 해도 들은 척만 척 귀만 쫑긋쫑긋 거린다.
두 번째 간식이야기를 하면 "쿵"하면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로 내달려온다.
홍차가 듣고 싶은 말만 듣듯이 요즘 그렇게 사람들이 보인다.
말한 사람이 무안할 정도로 듣지 않아 주는 상황에 난처할 때도 있다. 그런 사람이 내가 되던지 타인이 되던지
그 상황은 정말 우울해진다.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
욕망에 대한 절제.
욕구에 대한 절제.
오늘도 파란 하늘아래 뭉게뭉게 떠다니는 구름들을 보며 파닥거리는 입과 떠오르는 몸뚱이를 가라앉히며
오늘도 나는 나를 지켜본다.
오늘도 나는 나를 치유한다.
오늘도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렇게 매일 나는 나를 중독시킨다.
관심, 치유, 사랑은 중독의 힘으로 차츰차츰 물들어 내 것이 되어
더 이상 타인으로부터의 상처 받아들이지 않고 받은 상처는 치유 가능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