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흔들리던 정은이의 앞니가 점심시간에 저절로 빠졌다. 평소 말도 없고 눈 맞춤을 어색해하는 정은이였지만 자신의 빠진 이를 들고 오는 모습은 흡사 사냥을 마치고 멧돼지라도 한 마리 어깨에 걸치고 오는 것 같다.
“정은아, 이를 혼자 뺐어? 대단하다. 안 아팠어? 피 안 나?”
“네. 밥 먹다가 그냥 빠졌어요.”
“우와, 진짜 대단하다. 이 이리 줘봐. 선생님이 작은 지퍼백에 넣어서 줄게. 집에 잘 가지고 가.”
작은 지퍼백에 들어있는 자기 이를 흐뭇하게 받아 들고 돌아서는 정은이 뒤에 예나가 서 있다. 예나는 다짜고짜 나에게 요구한다.
“나도 줘!”
“뭐 줄까? 저거? 아~ 조그만 지퍼백이 갖고 싶구나. 선생님이 우리 예나도 줘야지.”
아이들은 이런 조그만 물건에 늘 흥미를 가지니까 그럴 수 있지.
“아니. 나도 넣어서 줘.”
“뭘? 이?”
“나도 이빨 줘!”
아..... 예나가 내가 이가 들어있는 지퍼백을 주는 것만 봤구나...
“예나야, 이는 정은이 빠진 이를 넣어서 준 거야. 그래서 이는 없어. 이것 좀 봐. 지퍼백 조그맣고 예쁘네.”
“아니야. 아니야. 나도 줘!”
오늘 쉽게 넘어가지 않겠다는 직감이 든다. 대성통곡하는 예나를 달랠 방법은 내가 생니를 뽑지 않는 이상 없다. 예나에게 너도 이가 학교에서 빠지면 넣어준다, 8살은 이가 잘 빠지니까 너도 빠질 수 있다 아무리 달래도 안된다. 비장의 무기를 꺼내야 한다.
“예나야, 이리 와봐. 초콜릿 줄게.”
“싫어!”
말은 싫다 하면서 손은 초콜릿을 얼른 가져간다.
자기 자리에 돌아가서 책상 위에 있는 학습지며 종이들을 다 찢어서 던지고 엎드려서 한참을 운다. 예나 달래느라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정은이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서 있다. 자기 빠진 이를 들고 이걸 예나에게 줘야 되나 고민하는 표정이다.
“정은아, 괜찮아. 지퍼백 가방에 잘 챙겨 넣고 다음 시간 책 준비하고 자리에 앉자. 곧 종 친다.”
정은이에게 지퍼백을 가방에 잘 챙기라고 이야기하는 나를 예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째려본다.
금방 종이 울리고 점심시간이 끝난 교실에 아이들이 돌아온다.
“선생님, 예나 왜 울어요?”
“어. 기분이 좀 안 좋은가 봐요.”
“선생님, 예나 계속 우는데요.”
“어. 기분이 계속 안 좋은가 봐요.”
“선생님, 예나 울어요.”
“어. 알아. 책 폈어?”
“선생님. 지금 몇 교시예요?”
“선생님, 몇 쪽 펴요?”
“이번 시간 책이랑 공부할 쪽수는 항상 칠판에 있지요?”
“선생님 무슨 책해요?”
“수학이요.”
“익힘책 먼저 해요 아니면 수학책 먼저 해요?”
이쯤 되면 똑순이들이 한마디 한다.
“수학책부터 하잖아. 수학책 68쪽! 칠판에 쓰여있다고!”
똑순이의 샤우팅에 대리만족을 느끼고 수업을 겨우 시작한다.
예나는 아직 엎드려서 어깨를 들썩이고 있다. 수업 내내 예나에게 신경이 쓰인다.
마치는 종이 울리고 돌봄 교실에 가는 시간이 되었다.
가기 전에 예나를 다시 달래 봐야지 하고 인사를 하려는데 예나가 어느새 눈물을 다 닦고 웃고 있다. 인사를 마치고 예나는 평소처럼 내게 다가와 다시 인사를 한다.
“내일 또 공부하러 오겠습니다!”
예나는 기분이 풀린 걸까 아니면 왜 울었는지 잊은 걸까.
그래도 웃으며 하교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양 갈래 쫑쫑 땋은 머리를 찰랑거리며 걸어가는 예나 뒷모습이 사랑스럽다.
예나 어머니와 상담하던 날이 떠오른다. 특수교육대상자 진단을 받아보자고 말씀드렸다. 엄마가 눈물을 쏟으시는데 마음이 아팠다. 남편과 이 문제로 갈등이 있다고 하셨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와 다르다는 걸 몇 달 만난 담임보다 부모가 더 잘 알 테니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아버님과 같이 상담을 받으러 오셔도 괜찮으니 한번 오시라고 했다. 아빠와 상의해 보겠다고 가시고는 결국 검사를 받지 않고 지켜보다가 병원을 가보겠다 하셨다. 1년 동안 아이를 맡아 가르치는 담임이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