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은 1학년

by 사탕볼

1학년 입학을 하고 드디어 아이들이 소원하던 '공부'라는 것을 한다.

입학초기 적응기간에는 색연필로 선 긋기, 색칠하기, 자기 이름 쓰기, 학교 구경하기, 인사하기 등 아이들이 봤을 때는 도대체 공부를 하지 않는 것 같다.


몇 주가 지나고 드디어 한글 '공부'를 시작한다.

ㅏ를 칠판에 쓰고 다 같이 '아' 하고 따라 읽는다.

블록으로 ㅏ 모양 만들기도 하고 몸으로 손을 옆으로 뻗어 ㅏ를 표현해보기도 한다.

한글을 하나도 모르는 아이부터 겹받침까지 다 아는 아이들이 함께 있는 교실에서 모두의 수준에 맞춰서 하는 수업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모두가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는 수업을 한다.

이렇게 모음과 자음의 소리값을 다 배운 후 그 글자가 들어간 우리 주변의 낱말을 찾아본다.

"ㄱ이 첫소리로 들어가는 낱말이 뭐가 있을까요?"

"기차!"

"그렇지. 기.차."

볼선생은 아이들이 불러주는 낱말을 칠판에 받아 적는다.

"고양이."

"고구마."

"가위."

융단폭격이다. 하나하나 다 맞네, 그것도 있네 하며 칠판에 적는다.

혹시 선생님이 못 듣고 지나가면 목이 터져라 외친다.

"고구마! 고구마! 고구마!"

"고구마 선생님이 여기 썼어."

아직 글자를 잘 몰라서 위에 썼는데 안 쓴 줄 알고 계속 외치는 경우도 많다.

"이제 ㅋ으로 시작하는 낱말을 찾아볼까?"

"코끼리."

"크리스마스."

"그렇지. 잘 찾네. 또 뭐가 있지요?"

"카드뮴."

내 귀를 의심한다.

"소희야, 뭐라고?"

"카드뮴이요."

내가 아는 그 카드뮴? 원소이름???

아이들이 뭐냐고 묻는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어.... 그런 게 있어."

볼선생은 당황해서 대강 얼버무리고 넘어간다.


국어시간. 이제 모음으로 낱말 찾기를 한다.

쉬운 모음이 다 지나가고 헷갈리기 쉬운 ㅐ, ㅔ, ㅖ 들이 남았다.

"ㅐ로 시작하는 낱말을 말해볼까요?"

"개미!"

"오~ 잘했어요. 개.미."

"게임."

"게임은 다음에 나오는 ㅔ로 시작해요."

칠판 ㅔ 모음 밑에 게임이라고 적어준다.

역시 어려운 모음은 아직 시작하기 이르구나... 하는 순간

소희가 손을 들고 말한다.

"내셔널리즘."

뭐라고??? 이럴 수가.... 무슨 말인 줄 알고 하는 말일까?

"뭐라고? 야 뭐래는 거야?"

친구들이 꼬부랑말에 호기심을 갖는다. 설명하기 애매하다는 표정을 짓는 소희를 보고 볼선생이 대신 답한다.

"국가주의라는 말인데 나중에 크면 배울 거예요."

소희를 내가 가르쳐도 되는 걸까... 나보다 책을 많이 보는 거 같은데...

수업하다가 내가 혹시 틀린 게 있진 않았겠지 ㅎㅎ


통합교과 시간. 윷놀이를 한다.

윷판에 말 놓는 것을 어려워 하지만 그래도 한 팀에 한두 명은 이해를 하고 이리 놓자 저리 놓자 설전을 벌인다.

다들 즐겁게 윷놀이판에서 윷을 던지는데 어느 순간 소희가 자기 책상에 가서 울고 있다.

"소희야, 왜 울어?"

아이들이 답해준다.

"소희가 걸 나왔을 때 말 업자고 했는데 안 업고 그냥 가서 울어요."

아이고. 자기 마음대로 안 돼서 삐졌구나. 똑똑한 아이가 자기 주장만 내세우면 큰일인데 걱정이다.

"소희야, 울지 말고 같이 하자."

달래도 대꾸도 않는다.

"기분 좋아지면 다시 와. 알겠지?"

아이들이 윷놀이 빨리 다시 하자고 난리다.

돌아와서 윷놀이를 진행하는데 소희가 궁금한지 고개를 빼꼼히 들고 칠판에 붙은 윷판을 바라본다.

"걸!!"

아까 소희가 하자는 대로 업었으면 말들이 몰살당할 뻔했다.

아이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소희도 윷놀이판이 궁금해서 다시 기웃기웃한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윷판에 다시 합류한 소희가 한 마디 한다.

"내가 하자는 대로 했으면 다 죽을 뻔했네."

하며 싱긋 웃는다. 친구들도 좀 전의 설전을 잊고 소희한테 니 차례라고 빨리 하라고 한다.

아까 삐져서 울던 아이는 어디로 가고 다시 윷을 잡고 던진다.

"지금 뭐 나와야 되지?"


마음은 여덟 살 아이인 소희야.

선생님은 너의 그 아이다움이 너무 예쁘구나.

내일도 울다 웃다 그렇게 조금씩 자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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