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세, 구직 시장에 서다
이력서를 넣은 지 일주일.
연락이 없다.
10곳에 넣었는데 한 곳도 안 온다. 스팸 문자는 하루에 열두 통씩 오면서 면접 연락은 왜 안 오는 거지. 대출 권유 전화는 귀신같이 오면서.
혹시 이메일이 스팸함에 들어간 건 아닐까? 확인해 봤다. 없다. 혹시 전화번호를 잘못 썼나? 다시 확인했다. 맞다. 혹시 내가 너무 잘나서 부담스러운 건 아닐까?
... 그건 아닌 것 같고.
열흘째 되는 날, 드디어 전화가 왔다.
"오금이 님 맞으시죠? 플렉스미디어 인사담당자입니다."
심장이 뛰었다. 10곳 중에 1곳. 그래도 1곳이다. 0이 아니잖아.
"서류 검토 결과, 면접 진행하고 싶은데요. 내일 오후 2시 가능하세요?"
내일? 갑자기? 준비할 시간도 없이?
"네, 가능합니다!"
대답하고 나서 생각했다. 뭘 입지?
옷장을 열었다.
면접 볼 옷. 면접 볼 옷이 뭐가 있지? 20년 전 신입 면접 때는 뭘 입었더라? 기억도 안 난다. 그때는 정장 하나밖에 없어서 고민할 것도 없었는데.
지금 옷장에는 옷이 많다. 근데 다 비슷비슷하다. 검정, 네이비, 베이지. 회사에서 눈에 안 띄려고 골랐던 색들. '튀면 일 더 시킨다' 마인드로 산 옷들.
남편이 퇴근해서 물었다.
"뭐 해?"
"내일 면접이야. 뭘 입을지 고민 중."
"면접? 어디?"
"플렉스미디어라는 회사인데. 영상 제작 회사인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고 이력서를 넣었거든"
남편이 옷장을 봤다.
"그냥 평소에 입던 거 입어. 깔끔하잖아."
남편의 패션 조언을 믿으면 안 된다. 이 사람은 10년째 같은 스타일의 옷만 산다. 근데 지금 다른 선택지가 없다.
"... 그래야겠다."
다음 날, 플렉스미디어.
강남역 근처 건물 7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까 유리문 안으로 사무실이 보였다. 젊다. 사람들이 다 젊다. 20대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후드티에 청바지 차림으로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다.
나만 정장이다.
이미 분위기에서 밀리는 기분이었다. 안내를 받아 회의실로 들어갔다. 테이블에 세 명이 앉아 있었다. 면접관들.
다 젊다. 한 명은 30대 초반 같고, 나머지 두 명은... 아들뻘이다. 아들뻘이 내 면접을 본다.
"안녕하세요, 오금이 님. 편하게 앉으세요."
30대 초반처럼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아마 팀장인 것 같다.
"이력서 잘 봤어요. 경력이 인상적이시네요."
"감사합니다."
"코러스미디어에서 20년 근무하셨네요. 저희 회사보다 오래되셨는데요?"
웃으면서 한 말인데, 듣는 입장에서는 뭔가 찔렸다. 플렉스미디어가 몇 년 됐는지 모르지만, 내 경력보다 짧은 것 같다.
"그러게요. 오래 다녔네요."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거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 20년 전 신입 면접 때는 '열심히 하겠습니다!'만 외치면 됐는데.
면접이 진행됐다. 질문들이 이상했다. 아니, 이상한 건 아닌데 익숙하지 않았다.
"저희 회사는 수평적 문화를 지향해요. 팀원들이랑 '님' 호칭 쓰는데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사실 잘 모르겠다. 아들뻘한테 '님' 소리 듣는 게 어떤 기분일지.
"협업 툴은 뭐 써보셨어요? 노션? 슬랙? 피그마?"
노션은 들어봤다. 슬랙도 들어봤다. 피그마는... 뭐지? 피자 브랜드 아니었나?
"노션이랑 슬랙은 써봤고요, 피그마는... 아직 안 써봤습니다."
면접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은 알 수 없었다. 근데 왠지 점수가 깎이는 기분이었다. 피그마가 그렇게 중요한 건가?
"요즘 숏폼 콘텐츠 트렌드는 어떻게 보세요?"
숏폼. 짧은 영상. 틱톡 같은 거. 시우가 맨날 보는 거.
"네, 숏폼이 대세인 건 알고 있고요. 젊은 층 공략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면접관 중 한 명이 물었다. 아들뻘인 그 친구.
"혹시 릴스나 틱톡 직접 만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릴스? 인스타그램 그거? 내 인스타그램은 2년 전에 올린 고양이 사진이 마지막인데.
"직접 만들어본 건 없지만,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편집 원리는 같으니까요."
그 말은 사실이다. 근데 면접관 표정이 살짝 굳었다. 아, 직접 해본 사람을 원하는 거구나.
면접이 끝나갈 무렵, 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또 '솔직히'다. '단도직입'이나 '솔직히' 뒤에는 안 좋은 말이 온다는 걸 나는 이제 안다.
"오금이 님 경력은 정말 인상적이에요. 근데 저희 팀 평균 연령이 28세거든요. 오금이 님이 오시면 팀 분위기가... 어떻게 될지 좀 고민이 됩니다."
뭐라고? 내가 분위기를 망친다고?
속으로 삼킨 말: '분위기요? 제가 무슨 경조사 화환이에요?'
실제로 한 말: "네, 이해합니다."
"그리고 연봉 부분도요. 저희가 제시할 수 있는 금액이 전 직장보다 낮을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얼마나 낮은 건데. 이미 70% 각오하고 온 건데.
"얼마 정도 생각하고 계세요?"
"음... 3,200만 원 정도요."
3,200만 원. 내 전 직장 연봉이 4,200만 원이었다. 이미 1,000만 원 깎인 거다. 근데 표정을 보니까 이것도 많은 모양이다.
"아, 그 정도면 저희가 좀 부담스럽긴 하네요. 저희 신입 초봉이 2,800만 원이거든요."
신입 초봉. 2,800만 원. 내 20년 경력이 신입보다 400만 원 더 받는 정도라는 거다.
집에 가고 싶었다. 지금 당장.
면접장을 나왔다.
강남역 인파 속을 걸었다.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많았다. 젊은 사람들. 다들 어딘가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나만 방향을 모르는 것 같았다.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다.
"오금이 님이시죠? 비주얼웍스 인사팀입니다. 내일 면접 가능하세요?"
또 면접이다. 10곳 중 2곳. 확률이 올라가고 있다. 아니, 올라가는 건가?
"네, 가능합니다."
다음 날, 비주얼웍스.
이번엔 홍대 근처였다. 회사 분위기는 비슷했다. 젊은 사람들, 캐주얼한 복장, 모니터에 붙은 피규어들.
면접관은 두 명이었다. 이번에는 한 명이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다행이다.
"경력직으로 지원하셨는데, 혹시 프리미어 버전 몇 쓰세요?"
버전? 그냥 최신 버전 쓰는데.
"최신 버전이요. CC 2024."
"아, 그럼 AI 기능 써보셨어요? 리믹스나 오디오 카테고리 태깅 같은 거요."
AI 기능? 프리미어에 AI가 있었나? 나는 편집만 했는데.
"음... 그 기능은 아직 안 써봤습니다."
면접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점수가 또 깎이는 소리가 들렸다.
"요즘은 AI 툴 활용이 필수예요. 시간을 많이 줄여주거든요."
알아요. 근데 코러스미디어에서는 그런 거 안 썼어요. 아니, 쓸 시간이 없었어요. 야근하고 주말 출근하느라.
말하고 싶었지만 삼켰다.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아서.
면접이 끝나고 나오는데, 나이 들어 보이던 면접관이 따라 나왔다.
"오금이 씨, 잠깐요."
뭔가 싶어서 돌아봤다.
"개인적인 얘기인데요. 저도 40대 후반에 이직한 적 있어요."
"... 네?"
"그때 한 30군데 넣었는데 면접 간 데가 5곳이었어요. 그중에 붙은 데가 여기고요."
왜 이 얘기를 하는 거지?
"힘드시겠지만, 포기하지 마세요. 어딘가는 있어요."
그 말 한마디에 갑자기 목이 메었다. 울 것 같아서 고개를 숙였다.
"... 감사합니다."
면접관이 고개를 끄덕이고 들어갔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집에 와서 소파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또 천장이다. 병원 천장, 집 천장, 다 똑같이 하얗다.
핸드폰을 꺼내서 구인 사이트에 들어갔다. 새로운 공고가 올라와 있다. '영상 편집자 모집, 경력 무관'. 클릭해 봤다.
'단, 1990년 이후 출생자'
... 핸드폰을 던지고 싶었다.
근데 그 순간 알림이 떴다. 메일 알림.
'[크리에이티브웍스] 서류 합격 안내'
크리에이티브웍스? 이 회사 지원한 적 있었나? 기억이 안 나서 메일을 열어봤다.
"안녕하세요, 크리에이티브웍스입니다. 오금이 님의 이력서를 검토한 결과, 면접 진행을 요청드립니다..."
아, 맞다. 여기도 넣었었지. 규모가 좀 있는 회사였던 것 같은데.
메일을 읽다가 한 문장에서 멈췄다.
"귀하의 풍부한 경력과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경력이 너무 많아서 부담스럽다는 말 대신?
뭔가 달랐다. 이 회사는 뭔가 달랐다.
면접 날짜를 확인했다. 다음 주 월요일.
그래, 한 번 더 해보자. 이깟 면접쯤이야.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