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소동

EP17 검은 이끼 같은 낮고 검은 집들이 아파트 그늘 속에 있었다.

by 요거슨 댈리

순간 마음속에서 흔들어대던 딸랑이가 경보음처럼 머리를 울린다.


여자의 시선이 나의 어깨너머에 걸쳐있다.

하연이를 살피는 척하며 고개를 돌리자 낯선 가족사진이 보인다.

아기였던 하연이를 안고 있는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나.



종착역 출입문에서 처음으로 서울을 봤었다.

높고 하얀 아파트가 햇볕에 은은한 금빛을 띄고 있었고

바로 앞엔 썩은 나무 기둥에서나 볼법한

누덕 지게 발려진 검은 이끼 같은 낮고 검은 집들이 아파트 그늘 속에 있었다.

서울의 첫인상은 세상의 이치와 다르지 않았다.

다시 여자를 바라본다.


"부모님이 계시긴 하구나."

"네. 있었어요."


눈치가 빠른 여자가 나의 냉소적인 답변을 못 알아들었을 리 없다.

순식간에 열기가 식어버린 여자는 더 이상의 전의를 상실한 용사처럼 보인다.

스스로가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한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한다.


"걱정 마세요. 아르바이트를 더 하면 되니까요. 많이는 못 드려도 꼭 다 갚을 거예요."


여자가 입을 오므리며 왼쪽, 오른쪽으로 입꼬리를 당긴다. 그와 중에도 나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다음엔 구체적인 손해 산정액이 적힌 서류를 가져올 테니."


여자에게 90도로 인사하는 하연이를 보니 속이 뒤틀린다. 하연이의 손이 알록달록하다.

괜히 하연이의 머리를 쥐어박으려는데 머리핀이 보인다.


"내가 크레파스로 낙서하지 말라고 했잖아!"

"니가 봤나? 내가 낙서했는가 안 했는가 니가 봤나!"

"쪼그마한 게 어디서 성질이고!"

"니는 쪼그마한 거 한테 다 큰 게 성질이가!!"


코가 시큰 거린다.

곧 눈물이 날 것 같아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선다.


"어디 가는 데!"


하연이가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마침내 신발이 두 동강나버렸다.

어쩐지 자존심이 상해 현관문을 부수듯 닫고 나와버렸다.

걸음을 뗄 때마다 바닥에 붙어 끈적이는 테이프를 뜯어낸다.

부서진 신발을 신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어디까지 걸어갈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상연아!"



그림출처: mrzykmoriceau.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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