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 나와 같은 처지일 녀석이 서있다.
형이 웃으며 쿠폰 15장과 만원을 쥐어준다.
"모자란 건 네가 처리해."
문을 열자 마치 거울 앞에 서 있듯 묻지 않아도
나와 같은 처지일 녀석이 서있다.
녀석은 퉁명스럽게 쿠폰과 잔돈을 쥐어주고 동갑내기에 대한 비굴함을 감추려는 듯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걸어간다.
형은 굵직한 글씨가 도드라지는 종이들을 바닥에 대충 던져 식사터를 만들었다.
자장면 접시에 붙어 올라온 종이에는 온갖 명언과 각오가
짧고 굵게 적혀 있다.
그리고 두꺼운 판례들 위로 탕수육을 올려 앉힌 형이 입을 열었다.
"상연아, 난 이제껏 몰랐어.
내 방이 이렇게 밝은 지.
창문에 덕지덕지 발랐던 나의 각오와 온갖 명언들을
뜯어 내니 빛이 든다."
형이 탕수육을 집어 들며 말을 잇는다.
"상연아,
판례들을 보며 느낀 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도
한 페이지만 넘기면 빠져나올 구멍이 있더란 거야.
우습게도 고작 바로 뒷면에 그따위 희망이 붙어있더란 거야."
"드르륵드르륵"
그림출처: 알수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