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소동

Ep25 순식간에 눈코입이 함몰당한 듯 낯이 서럽다.

by 요거슨 댈리

"자리는 여기고 일은 주는 대로 바로바로 처리하세요."


형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있자 목소리는 좀 더 크고 고압적으로 들려왔다.


"앉으라고 했고, 일은 하면 됩니다. 뭐든."


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섰다.

형은 나를 힐끔거리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을 대신해 자신을 끌고 나가주길 갈망하는 눈빛이다.


"사실 이런 일은 고등학교만 나와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쓸데없이 이력이 너무 화려해서 고민했는데...

적당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적당히 써보려고 하니까 앉으세요.

바로 앞에 있는 자리로.

일, 필요하지 않나?

내일 할 일도 없는 형편이겠지만 그따위 내일이 오기 전에 오늘이라도 어떻게 보내야 하지 않나?

삼시세끼 먹고사는 거 다 똑같다지만 그거 우습게 볼 게 아니거든."


여 사장이 고개를 돌리며 우리를 똑바로 본다.


"여기 오는 사람들이 다들 비슷한데 그래도 그 사람들 딴에 용기란 게 있어. 그나마.

근데....... 것도 없음 나가던가."


형에게 다가오는 여자의 발소리가 콕콕 귀에 박힌다.

낮지만 코가 뾰족한 구두를 신고 있다.

나도 모르게 여사장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시늉을 하지만

모가지가 대롱거리는 느낌이다.


"낯이 익다."


순식간에 눈코입이 함몰당한 듯 낯이 서럽다.

이곳에 서있는 나라는 존재는 환한 창문 덕분에 그림자조차 없다.


"아, 네. 같은 아파트 사는 친구인데 혹시 찌라시 돌리는 일에 적임자라는 생각에 데려왔습니다."


"나한테 갚을 돈을 내 돈으로 갚으려고?"


이성적인 사고로 나름 논리 정연한 삶을 살아온 형에게 지금 상황은 너무나도 당돌하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결론만 있는 여사장의 말은 이해하기 힘들 거란 생각이 들었다.


"승범씨는 여기 앉아서 일 시작하세요."


여사장이 형에게 신문 뭉치를 내민다.

오랫동안 고시를 준비하느라 지역 신문 따위를 봤을 리 없고

내게 일어난 황당한 사건은 상상조차도 어려울 것이다.


"나 얘한테 보상금 받아야 하니까 고소장부터 만들고 서류 좀 준비합시다.

넌 부조금 받은 거라도 없니? 그거라도 내놔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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