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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거슨 댈리 Jul 28. 2016

이제 퇴근하세요, 당신 삶으로_

-여긴 오후 5시 30분이면 해가 집니다.


'안 돼'라고 말하기 전까진 가능했어.
방금 넌 하나의 가능성을 거부했어, 그래도 걱정하지 마.
아직 '안 돼'라고 단정 짓지 않은 일들이 더 많으니까-

이 곳은 겨울이야. 한동안은 그리 춥지 않은 날씨였는데, 갑자기 추워졌어.

5시 30분이면 벌써부터 어두워져.

해가 지기 전에 동네에 도착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고, 공사장 인부들은 집으로 돌아가.


어떤 느낌이랄까?

전문적인 모습이랄까?


먼지투성이의 옷을 입고 돌아가는 그들이라지만,

그들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아.


'난, 나의 직업을 끝내고 내 삶으로 돌아간다'

같은 프로페셔널함이 느껴져.

나의 편견은 수십 년 전에 지어진 오래된 집의

방음, 단열이 안 되는

얄팍한 유리창처럼 깨져버렸어.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산 거야?'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어.

고작 한 달을 끊었지만, 직업이 없는 난 불안감에 벌써부터 환불과 수업 정지를 알아봐.

이렇게 살았던 걸 후회하면서도

여전히 이렇게 살다니...


1. 옐로 피버에 대한 고찰.

 유럽에서 온 아이들은 대부분 영어를 어느 정도 하는 편이더라고.

 전형적인 한국인인 난, pre-inter를 듣고 있어. (안 부끄러울 거야! 저얼대~)

 한국 학생들은 문법 점수는 높은데 스피킹과 라이팅이 안 된대. (그래서 여기 딱 왔잖아~비록 궁핍할지언정)


 우연히 방과 후 수업에서 만난 이탈리아 녀석 이야기를 하자면,

 녀석은 처음부터 한국을 좋아한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어.


 뭔가,.

 다소 똑똑한 척을 하는 녀석이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한 마음이 궁핍한 우린 공원을 걷게 됐어.


 녀석은 걷는 내내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고, 한국에서 살고 싶고, 한국 여자가 참 좋다며.

 한국 사람도 아닌 한국 여자가 좋다는 녀석-

 경상도 여자인 난 벌써 욱했어. 안 되는 영어로;;;


 -자~ 누가 널 좋아한다고 생각해봐, 근데 그 여자가 널 좋아하는 게 아니라

 네가 이탈리아 남자라서 좋다고 하면 넌 어떨 것 같아?


-많은 이탈리아 남자들이 한국 여자를 좋아해~ 그게 왜?


-퍼스널러티도 그 어떤 캐릭터도 아닌 단순히 국적에 의해 누구를 좋아한다고?

 너 옐로 피버야? 난 그게 정말 싫어!


-그게 어때서? 특히 한국 여자들은 본인이 알기론 예쁘고 잔소리도 덜하고......... 불라 불라 불라


 이후 나의 모든 답변은 메이비, 메이비 놑, 아 돈 팅 쏘!

 아직 두어 번 본 사이지만, 타인을 모르는 사랑은 벌써부터 질린다는 또 다른 편견이 생긴다.


2. 가둬진 예술 같은 게 인간의 삶

매번 지나치던 아트 센터를 갔었어. 세상에도, 사람에도 나 좋은 것 말고는 관심이 없는 나에겐

매일 같은 곳도 다른 세상이란 걸 깨달아.


이곳의 아트센터는 같은 장소도 다각도로 볼 수 있게 구성된 것 같았어.

저기 안쪽 전시장에서 보는 조각상은 말 그대로 또 하나의 작품이야.

그저 스치듯 보기엔 단순한 조형물이었는데,

건물 안에서 작품들 뒤로 하나의 배경처럼 놓인 무엇들은

가까이 다가가 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이었어.


의미를 모르게

지나는 길에 놓인 무엇 따위도

꽉 찬 프레임 안에선

다른 각도에선

존재라는 의미로 가득 차기도 한다는 사실이 순간 내 머리를 얼게 만들었어.


난 신을 믿진 않지만,

어쩌면 신은 우리가 마주하는 우리들을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도 몰라.


조용히 눈에 띄지 않는 누군가도

꽉 찬 존재감일 수 있어.


내 안에 차있는 사람들은

찬찬히

조용히

오롯이

가득 채워 다시 본다. 그리고, 지나치게 이기적인 사람이라 미안해져.


외로워하지 마~ 가끔이지만 난 분명 널 많이 사랑하고 있어!!


3. 돌고래보다 큰 그의 그림자.

참 많은 열망을 가지고 산다.

학원에서 만난 이란 친구는(사실 나보다 어림, 어림. 그 친구는 모르지만)

1년 있다 한국으로 가냐고 물었다.


'아니,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어'


이미 나에게 갇힌 채 살아왔잖아.

나에 의해 단단히, 튼튼히 잘 만들어진 내 안에.......


어쩜 꿈을 간직하려 을 이루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소유욕으로.

단 하나의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간직할 수 있는 자존심으로.


내 안에 갇힌 나를 이끌고

무겁게 싸돌아 다녀야지. 언젠가 있을 또 다른 불행 앞에서 목숨보다 아끼던 삶이라고 

아까워하지 않으려면!!


어학원이라 젊은 워홀러들이 많은 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드물게 어른 분들을 뵙는다.


요즘 나와 함께 수업을 듣는 '타티아나'가 그중 한 명이다.

그녀는 70대가 가까워 보이지만 2주 동안 학원을 다니기로 결정했단다.

불가리아 출신이며, 독일어와 우크라이나, 그리스어? 등등을 할 줄 아신다.

다 살아보셨다고....;;

직업을 묻지는 않았다만 엄청 똑똑하셔서 도와준답시고 뭘 말하고 있는 내가 민망할 정도야.

(보면 볼수록 엄마가 보고 싶게 만드는 누군가의 어머니인 그녀)


학원에서 같은 클래스의 친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알면 알수록 나보다 괜찮은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어. 계속되는 만남과 헤어짐과 어느 정도 친숙해진 사람들_.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을 버리려고 온 세상에서

또 다른 생각들이 머리를 채워간다.




2016.7.28

Dear. 어머니께.


 오늘은 엄마가 몹시도 많이 보고 싶었어.

 결혼을 해야 할 나이가 다가올 때쯤

 엄마가 여자로 보였어.


 그리고 내가 빼앗은 엄마의 삶이 오히려 괜찮다고 말하는 본인보다

 그리워졌어.


 이곳에서 익숙해지는 건 또 다른 의미에선 누군가를 잊고도 잘 살 수 있단 의미 같아서

 싫어.


 좋은 곳을 가고, 맛있는 걸 먹는 게 미안해. 특히 엄마에게.

 내가 너무 늦어서 엄마가 계속 날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익숙함이 더 잔인한

 시간이야.


 엄마의 손을 꼭 잡아보고 싶은 날들입니다.


 행복함, 위로, 사랑, 익숙함 이 엄마와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할 때의 그 모든 것이었구나.

 엽서로 보낼까 하다

 저의 안부를 걱정하실까 하는 마음에 이곳에 편지를 남겨.


 보시는 게 익숙하지 않으시겠지만,

 동생에게 일러둘 테니 가끔 궁금하실 때 봐줘.


 식사 꼭 챙기시고, 아프면 바로바로 병원 가시고, 더운 날에

 괜찮다 고집 마시고 쉬어 주시길 바라.


 2016. 7.28   꼴통 딸드림.


p.s. 사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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