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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거슨 댈리 Mar 02. 2016

아버지, 남자, 아들

그리고 장례식

정확한 것을 원하는 세상에서
불분명한 인간으로 산다는 것.
떠난다는 것.

새벽 4시면 생각나는 남자.

제가 20살이 되어 처음 겪었던 일들 중 하나는 그의 임종이었습니다.

그의 친구들 대부분은 사회에 제대로 자리매김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알코올 중독, 골초, 백수, 외곬으로 살던 그는

사실상 제게 아버지로서 마땅찮았습니다. 제대로 된 무엇을 가르쳐 주신 분은 아니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

 떨어진 자신감만큼 자존심이 있었을 때,

알코올 중독자나 골초가 되기 전,


그래도 시장이나 읍내에선 유부남임에도 눈웃음치는 여자들이 있을 때까진


절 위해 좋은 기억을 만들어 주곤 했었습니다.

함께 메뚜기나 새우를 잡아와 어머니께 건네면 밥상위 반찬으로 올라오기도 했어요.


모두 열거하기 어려울 만

아버지는 저와 친했어요.


마른 가을에도 강아지풀을 학교 준비물로 쓰고 싶다고 하면,

강가로 트럭을 몰아 갈색 강아지풀을 꺾어 주던 아버지였으니까요.


어떤 죽음을 원하시나요?

어떤 영정사진을 원하시나요?

누구를 초대하고 싶으세요?


아마 그도 죽음을 맞기 전,

젊은 시절 한 두 번 죽음에 대해 생각해봤겠죠.


제가 본 그의 죽음은 결코 그가 바라던 모습이 아니었을 거예요.

생각하지 못했던 모습이었을 겁니다.


장례식장 직원은

영정사진으로 놓인 그를 앞에 두고

어머니께 장사가 한창이었습니다.


무슨 놈의 국화 한 송이가 그리도 비싼지.


영정사진을 수놓을 꽃값은 또 얼마나 비싼지.


부잣집 아들이란 유년기를 살던 분이라기엔

 죽음으로 비친 자리에선 너무 초라했어요.


그가 살아있었다면

이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지인들을 부르기  창피했을 거예요.

더군다나 싸웠던 녀석도 친구들과 엮여 올 게 뻔했으니까요.


눈물을 흘릴 수 없었어요.

지나치게 똑 닮은 저는

초라함 속에서 그의 비석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닮은 건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할머니께선 술에 취해 사람들 앞에 드러누워 통곡하셨고, 다시 사람들이 일렁였습니다.

'어휴. 저 인사 어머니를 닮았구먼.'


그제야 알았습니다.

아버지께서 할머니께 모질게 굴었던 이유를.


그때부터였어요.


싫어하면서 닮는다란 말이 있어

저는 그를 사랑하는 본능을 거부하느라

아파하지 않기로 했어요.


하지만 아버지께선 그러지 못했나 봅니다.


어떤 아버지를 생각하시나요?

당신의 아내가 바라는 아버지가 된 당신의 모습은 어떨까요?


딸인 저도 막막합니다.

제대로 된 아버지를 만자 보지 못한 저는(?)

남자를 사귀기도 전에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할 것이라 단정하는 연애 불구자예요.

-남편이 언제 죽을지 모르니 스스로 안정적인 기반을 가질 때,

-혼자서 아이들을 건사할 수 있을 때

결혼을 생각해보겠다고 말해요.


저의 결혼 조건은

오롯이 저에게만 적용되요.


술을 잘 마시지만

어지간해선 술을 마시는 법이 없고

담배는 아연실색합니다.

술, 담배 안 하는 남자를 이상형으로 두면서도

그런 남자는 재미없어 못 만날 것 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죠.

남자는 돈을 잘 벌어야 하고,

낮일부터 밤일까지 잘 해야 하며,

아버지로서 근엄하고  친절해야 하고,

늘 다부진 모습으로 슈퍼맨으로 살기를 꿈꾸지만

살다 보면 헐크라도 안된다 싶은 사회에서


 어떤 아버지를 꿈꾸시나요?


아버지의 증오는 그의 죽음으로 배가 됐었어요.

하필이면 시험기간에 임종을 맞은 데다

교수에게 그의 죽음을 증명하느라 pc방에 들러 사망 증명서를

메일로 보내기까지 했으니

차가운 세상에 덩그러니 내동댕이 쳐진 기분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20대를 온통 엉망으로 썼어요.

2004년에 들어간 대학을 2011년도에 겨우 졸업했을 정도로만요.


그의 죽음 이후 많은 수수께끼가 풀렸습니다.

왜 그토록 그가 어머니를 미워했는지,

왜 아버지 답지 못했는지.


언젠가부터

아버지께 궁금했던 건

'왜 그렇게 매일 술을 마시는지?'

'왜 그렇게 힘든지?'

'뭐가 그렇게 아픈 건지?'

"도대체 왜?"였어요.

 미워하기 전에 이해하고 싶으니까요.


아버지가 될 아들, 남자

그리고 아버지가 되었을 그에게 알려주고 싶은 건.


당신이 어떤 직업을 지녔건,

얼마를 벌건,

어떻게 불리건 그딴 건  상관없어요.

그러니 그딴 이유로 아파하지 마셨음 해요.

 당신의 아이가 슬퍼할 테니.


모든 자식이

엄마나 아빠라고 부를 수 있던 시점에서 당신을 기억하는 게 아니니.

그저 날 감싸 앉고

나와 눈을 맞추며

기억이란 걸 알기도 전에

그저 존재하는 당신을 만난 거니까요.

당신이 누구인가를 알기 전부터

당신의 존재를 알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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