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이 시를 읽고 있으면

by 공백감자


지난 세월이

영화 필름처럼

지나가는구나


살아가느라

제대로 돌보지 못하였는데

어느덧 훌쩍 자라

속이 꽉 찼구나


참으로 행복하구나


내가 살아온 것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참으로 행복하다




나의 겨울나무 시를 읽고

아버지가 써온 답시이다.


...


우리 집은 농사를 지어

부모님은 365일 정해진 휴일 없이 일을 하셨다.

집에 있는 자식이건 밭에 있는 작물이건

봄여름가을겨울 돌보아야 할 자식인 건 매한가지였다.


집에 있는 자식들 공부시키고, 밥 먹이려면

밭에 있는 자식들을 돌보아야 했고

그러다 보면

집에 있는 자식들에게는 소홀해지기 마련이었다.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부자는 아니었지만

부족하다고 느끼게 해 준 적 없었다.

부모님이 덜 먹고, 덜 입으며 쉼 없이 세월을 보내신 덕분이라는 걸 잘 알고,

일이 더 중요해 우리에게 소홀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우리가 중요하기에, 살아가는데만 신경 썼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밭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은 부모님이라도

왜 우리에게 소홀했냐고 말할 수 없다.


부모가 되어봐야 안다고,

아직 철이 없어 모른다고,

부모가 자식에게 또는 어른이 아이에게

그 심정을 대변할 길이 없어하는 말인데

어쩐지 마른 부모님을 보고 있으면

그 심정을 영화 필름처럼 모든 세월에 걸쳐 본 듯하여

감히, 아는 체하여 그 모든 시간이 감사하다고 말해본다.


희생과 일로 대부분을 채웠을 당신의 인생이

우리의 감사함으로 헛되지 않은 인생이 되었다고 말해주어

나 또한 행복하다고 말해본다.


나의 겨울나무는 아버지의 희생이었는데

아버지의 어린나무는 아버지의 행복이었나 보다.


<겨울나무, 공백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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