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이라는 착각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by 달보


"90세인 분이 '우정이 없다면 결혼하지 마라'고 말씀하시니 반박하기가 어렵네요."


독서 모임을 하던 도중 한 분이 부부생활에 대한 책을 소개하면서 한 말이었다. 뒤에 반박하기가 어렵다는 대목에서 본인은 생각이 조금 다른 듯했지만 애써 수긍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이 든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반박하기 어렵다는 걸까? 경험이 많다고 해서 맞는 말만 하는 건 아닐 텐데.'




한때 난, 어른들은 다 어른인 줄 알았다. 그들은 모두 철이 들었다 생각했고, 그들이 혼내면 무조건 내가 잘못한 건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이 들어서 보니 아니었다. '밥 먹을 때 티비 보는 거 아니다', '남에게 피해 주는 행동은 하지 마라', '어딜 가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은 본인들부터가 지키지 못하는 말이었다.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온전히 식사에만 집중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드물었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예의나 질서를 무시하는 건 일도 아닌 듯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은 꽤 많은 것들을 함의하고 있었다. 웬만한 성인들보다 통찰력이 뛰어난 아이가 있는 반면에, 초등학생도 충분히 생각할 만한 것들을 염두에 두지 못하는 어른들이 많은 걸 보면 말이다. 가령 일찍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주식 투자를 시작한 중학생이 있는가 하면, 자식들에게는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길가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거나, 사람이 내리기도 전에 엘리베이터를 먼저 타는 부모도 있는 것처럼.


세상에 어른 같은 건 없었다. 어릴 때 어른이라 생각했던 이들은 단지 나보다 조금 더 일찍 태어난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리고 각자 다른 인생 경험만큼이나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별개의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세월의 누적은 지식과 지혜의 농도를 보장하지 않았다.


연장자의 말이라는 이유로 반박할 여지를 여미는 것은, 곧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제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하고 곱씹어 보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배제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교 단위가 맞지 않아 제대로 된 저울질이 불가능하다. 설령 공자(孔子)나 랄프 왈도 애머슨(Ralph Waldo Emerson) 같은 세간의 현자들이 언급한 말이라 할지라도 적당히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무릇 진리와도 같은 말은 보편적인 상황을 아우르는 것이지만, 내가 처한 상황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특수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애초에 정답 같은 게 없는 세상에서 옳고 그름을 나누는 것부터가 그릇된 생각이다. 누군가의 생각이 아무리 옳아 보여도, 그건 그 사람의 생각일 뿐이라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 누군가의 생각이 아무리 어긋나 보여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해석될 여지는 다분하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우리의 생각은 끊임없이 변하며, 세상은 끝없이 돌고 도는 법이니까.


내가 온전한 나로서 거듭나는 것은 타인의 견해를 견주어 반박하고 질문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절대 다수가 동의한다는 이유로 그럴듯해 보이는 생각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 찰나의 평온을 얻을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나로 태어났으니 어차피 나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나만의 독보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여기저기 휘둘리지 않고 살아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CONNECT

- 달보가 쓴 책

- 달보의 인스타그램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퇴사가 고민된다면 먼저 해야 할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