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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친구를 보며 든 생각

평생 공부하고 사유해야 하는 이유

by 달보


계모임을 하는 친구들 중 A는 20살 때부터 직업 군인을 택해 지금까지 그 삶을 이어가고 있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친구들은 대학에 진학했지만, 졸업 후에도 오랫동안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기 일쑤였다. 그들과 술자리를 할 때면 B라는 친구는 타 지역 군부대에서 일하고 있는 A를 두고 항상 이렇게 말했다.


"우리 중에서 A가 제일 성공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몇 번 더 듣다 보니 '좀 무례한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장기 복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A는, 안정적인 직장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우리보다 나아 보이긴 했다. 하지만 A는 우리가 누렸던 청춘을 전혀 겪지 못했다.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어울린다던지, 그중 한 명과 사랑에 빠진다던지, MT 가서 똥군기(?)를 경험하던지, 주말마다 세상 편한 친구들과 회포를 풀던 시간들을 말이다. 그러니 A를 성공했다며 부러워하는 건 섣부르고 단편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한동안은 말이다.


시간이 흘러 다시 생각해 보니 A가 가장 성공했다며 부러워했던 B보다도 내가 더 무례했다는 걸 깨달았다. 왜냐하면 나는 B가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B에게 "네가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은 뭐야?"라고 물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 걸 물어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나만의 상념에 빠져 상대방을 깎아내리며 스스로를 추켜세우기 바빴다. 가장 무례한 사람은 결국 나였다.


B가 생각하는 성공은 일찍 자리를 잡고 꾸준히 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 B가 A를 성공했다고 여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본인이 부럽다면 부러운 것이다. '상대방을 부러워할 수 있는 조건'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어쩌면 나는 그저 B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곱씹어 보면 B의 발언 중 탐탁지 않았던 부분은 위의 사례 말고도 꽤나 많았고, 난 그런 그를 함부로 '재단'하는 것에 있어서 일말의 거리낌도 없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반성을 하게 된다. 남을 함부로 평가한다고 생각했던 친구를 함부로 손가락질하는 내가 가장 무례한 인간이었다.


사유하는 도중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나 '나는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에 마침표를 찍게 되면, 결국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어리석음을 드러내게 된다. 갇히지 않으려면 평생 공부해야 하고, 맺히지 않으려면 끝없이 사유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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