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청소를 하는 이가 전하는 그녀는 너무나 착한 사람이었다. 그 착한 여인은 어쩌면 스스로에게는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죽인 사람이 되어 생을 마쳤다.
―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남을 위해 그렇게 애썼던 사람이 왜 자기 자신에게는 그렇게까지 무심했을까. 책 속에서의 인물은 진심으로 호소하듯 말한다. 자기에게 간헐적으로 선물 세트를 주고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있는데, 세상에 그런 착한 사람이 없다고. 그런 사람은 반드시 잘돼야 한다고.
나는 그 대목에서 멈춰 가만히 생각했다. 만약 특별히 잘해준 것도 없는 나에게 누군가가 선물을 주고 인사를 건넨다면 어떨까. 분명 고맙게는 느낄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그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 여길 수 있을까?
'착하다'는 말은 너무 쉽게 쓰이지만 나는 그 말이 그렇게 가볍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단순한 몇 가지 행동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겹겹이 쌓인 층 같은 존재라는 걸 살면서 많이 봐왔다. 그냥 착한 사람일 거라며 생각하고 싶어도 마음이 좀처럼 부드럽게 넘어갈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런 사람일 거라 단정 짓기보다는, 그 사람의 행동이 낯설 만큼 인상 깊었다고 생각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살면서 모르는 사람에게 뭘 줘 본 적이 없다. 인사도 잘 하지 않는다. 부모님이나 친한 친구들에게도 작은 선물 하나 하지 않는데, 생전 본 적도 없는 이들에게 뭔가를 주는 건 내게 있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마음 한켠에서는 뭐라도 건네고 싶고 인사도 먼저 해보고 싶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동 주민을 마주쳐도 상대가 먼저 인사하지 않으면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는 편이다. 그 또한 나름의 매너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무뚝뚝하고 인사에도 인색한 사람이라는 자각에 스스로 실망할 때가 많다. 살가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 있지만 그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진 적은 거의 없다. 매번 생각하는 데서 멈추고 실천하거나 연습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은근히 마음을 쓰이게 만든다.
어쩌면 나는 계속 이렇게 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런 대가 없이 그저 자기가 마땅히 가질 법한 뭔가를 내어주고, 그것도 모자라 누군가에겐 좀처럼 피어나지 않는 미소마저 흔쾌히 건네는 사례를 조금 더 접한다면, 내 마음은 바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떤 기로에 서 있는 게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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