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징그럽지도 않나

by 달보


엘리베이터에서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아기를 보면 눈길을 피했다. 딱히 귀엽지도 않은데 괜히 마음에도 없는 호응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처음 아빠가 된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너무 사랑스럽다, 어쩜 볼이 이렇게 말랑할 수가 있냐, 감탄하는 애들 사이에서 난 그저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왜 아무런 느낌이 없지?'라는 생각이 잠시 스치긴 했지만 곧 잊어버렸다.


아이들 장단에 맞춰 놀아주는 사람들을 보다 보면 신기하고 대단해서 이질감을 느꼈다. 나는 돈을 쥐어준다 해도 그렇게 못할 것 같았다. 한 번은 마지못해 조카랑 놀아준 적이 있었다. 비행기도 태워주고 졸졸 따라다니기도 하면서 열과 성의를 다했으나, 고작 1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확실히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결혼을 원했고, 육아가 포함된 삶을 그렸다. 그만큼 걱정이 많이 됐다. 훗날 내 아이에게도 무심하면 어쩔까 싶어서.


세상에 갓 태어난 현이를 만났을 때, 우려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격하게 반응하지도 않았다. '얘는 누굴 닮은 거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을 뿐, 제왕절개를 마친 아내 걱정에 기뻐할 겨를도 없었다. 아빠가 되면 어떤 심정일지 상상해보질 않았는데, 무엇을 상상했어도 현실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었다. 정작 아빠가 되어본 바로는 기분이 뭐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이상하기만 했으니까. '얼떨떨했다'가 당시의 내 심정을 드러내는 그나마 비슷한 표현일 것 같다.




현이는 신생아실 맛만 살짝 보고는 산모실에서 아빠 엄마와 함께 생활했다. 아내는 완전 모유수유 생각이 확고했다. 덕분에 하루 1시간도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날이 이어졌다. 잠이 부족할 거라고 예상은 했다만 그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기저귀 가는 법, 속싸개 싸는 법은 영상을 찾아보며 공부해도 좀처럼 손에 익질 않았다. 하루는 퇴근 후 조리원에 갔더니, 어두운 조명 아래 아이를 안은 채 흐느끼고 있는 아내를 마주했다. 순간,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라는 생각과 더불어 모래알만큼의 후회가 들었다.


가만히 누워서 기껏 힘들게 먹인 젖을 게워내거나 침만 질질 흘리던 아이가, 어느덧 눈을 마주치더니 뒤집고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어딘가에서 평생 풀지 못할 어떤 결속이 이루어진 게 틀림없었다. 사랑이 아닌 책임감만으로 돌보지 않을까 싶은 노파심이 들었던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느 순간부터 난 내 아이를 몹시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식 사랑은 은밀하면서도 서서히, 그리고 아주 깊게 스며들었다.


아무런 대꾸도 못하는 아이에게 "무슨 애기가 이리 귀여워?"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건넸다. 이성이 이제 그만 좀 지껄이라며 나를 말려도, 브레이크가 고장 난 마음이 날뛰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 너를 위해서라면 목숨마저 기꺼이 바치겠다, 라는 말들의 의미도 조금씩 알 것 같았다.


그 사랑스러운 존재가 내 안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악마를 부추기기도 했다. 밤새 울며 보채는 아이를 달래느라 한숨도 못 잔 어느 날 새벽이었다. 진짜 미치도록 자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되뇌며 아이 기저귀를 갈고 있었다. 손으로 비벼도 육중한 눈꺼풀은 자꾸만 내려오고, 몸은 돛단배라도 타고 있는 것처럼 이리저리 기우뚱거렸다. 다행히 기저귀 갈기는 이미 선수가 되어 있어서 그런 상태로도 손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재빠른 건 바로 내 새끼였다. 이제 기저귀를 채우기만 하면 되는데, 냅다 오줌을 갈겨버린 것이다. 기저귀를 한 번 더 가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주변이 어두컴컴해 뜨뜻한 물줄기가 어디로 얼마나 튀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 말인즉슨, 머리를 기대기만 해도 곯아떨어질 듯한 상태에서 아이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것도 모자라, 아기 침대와 주변 구석구석까지 닦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내는 다음 수유를 위해 안방에서 자고 있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만큼 달아오른 내 모습이 낯설었다. 어쩌면 분노의 강도는 사랑의 농도에 비례하는 걸지도.




우리 아들도 언젠간 나처럼 징그러워지겠지. 다만 지금은 다신 돌아오지 않을 시기를 그저 즐길 뿐이다. 가끔 지나가는 '선배님'들이 돌을 갓 넘긴 현이를 보며, 지금이 제일 예쁠 때니 마음껏 즐기라는 말을 건네곤 했다. 평소 같으면 흘려들을 법도 한데 희한하게 마음 깊숙이 와닿을 때가 많았다. 찰나의 순간 처음 보는 이들의 과거를 잠시 엿본 것 같달까. 그래서 더욱더 의식하려고 애를 쓴다. 내 아이의 미소, 잠든 얼굴, 볼의 촉감, 울며 불며 떼를 쓰는 그 모든 순간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서.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가 나만큼 자라더라도 지금처럼 사랑스러워 보일까?' 그 순간, 한 사람이 떠올랐다. 나의 부모님, 나의 어머니.


어머니는 40대가 그리 멀지 않은 나이의 나를 여전히 아기 다루듯 대한다. 나름 좀 컸다고 감히 훈수를 두거나, 제 잘난 맛에 심취해 잔소리를 퍼붓거나해도, 어머니는 한결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마치 '네가 어떤 짓을 벌이든 나는 다 받아들이겠다'는 다짐이라도 한 것처럼. 죽을 때까지 나랑 사랑할 수밖에 없는 저주라도 걸린 것처럼.


상위 0.1%의 텐션을 자랑하는 어머니는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남발이 워낙 심한 탓에 어머니의 애정표현을 진심으로 귀담아 듣는 이는 별로 없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내게 주는 사랑은 어딘가 결이 달랐다. 남들에게 버릇처럼 흘리는 사랑과는 질감부터 다르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자식이니까. 말썽 한 번 피우지 않고 알아서 잘 살아주고 있으니까.


그런데 나도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서 그런지, 어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사랑을 표현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보이는 것 너머의 무언가를 이제야 어슴푸레 인지한 것 같달까. 자신보다 덩치가 곱절로 불어난 나라도, 어머니의 눈에 난 여전히 어린 아이였던 것이다. 내가 아무리 다 큰 척 유난을 떨어도, 그녀의 눈엔 영락없는 애였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수염 자국이 그윽한 나를 그렇게 예뻐하는 게 가능할까 싶다가도, 이윽고 내 생각으론 어머니의 심정을 결코 헤아릴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품은 사랑의 모양은 그 형태조차 가늠하지 못했을 테지. 나는 그동안 어머니를 얼마나 함부로 넘겨 짚었던가. 대체 어떤 무례를 여태껏 범한 걸까. 아들이 기고 날아봤자 아들일 텐데. 부모를 넘어섰다는 착각이 얼마나 오만하고 보잘것없는 것인지,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보니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우리 현이.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네가 나중에 모질게 굴더라도, 아빠도 할머니처럼 너를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자식의 미운 짓마저 거뜬히 품을 수 있는 그런 넓은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 나도 받은 게 있으니, 그만큼 돌려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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