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는 아이를 돌보는 건 할 만했다. 미리 새벽 기상에 익숙해진 덕분이었다. 문제는 꼭두새벽에 일어나봤자 육아에 매달리느라 글 한 줄 쓰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아침마다 아빠로서 해야 할 일과 글쓴이다운 집착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어 있었다. 저 작은 아이에게 내 시간을 모조리 빼앗겼다는 상실감에 허우적대며 이도 저도 아닌 시간을 보냈다. 나는 아빠 자격이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아이에게 실수를 했다. 평소 먹이는 이유식의 두 배를 먹이고 있는 줄도 모르고 난, 어느 순간부터 제대로 씹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아이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무라기 바빴다. 집안일은 등 뒤에 버젓이 쌓여 있는데 아이와 한 시간씩이나 씨름하고 있는 현실이 마음을 짓눌렀다.
그날따라 이상한 게 아이가 아니라 나라는 건, 새벽 수유로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뒤늦게 일어난 아내를 통해 알게 되었다. 현장을 보지도 않았으면서 대체 어떻게 안 걸까. 엄마가 되면 무슨 마법사라도 되는 건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얼굴은 달아오르고,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뻘쭘한 기분을 잡아당겼다.
"너는 그걸 또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고 있어!" 아내는 나와 아이를 5:5의 비율로 혼내고 있었다. 하지만 말귀를 알아들을 리 없는 아이를 향한 꾸짖음은 온전히 내 몫인 것만 같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건 원망과 분노가 점철된 악마의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아내를 목격했을 때였다. 그때 아내는 이유식 이슈와는 무관한 일침을 날렸다.
"여보, 글쓰기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작가로 유명해지는 게 마음 먹는다고 되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자기는 벌써 책도 냈잖아. 그때가 아직 1년도 안 지났는데 벌써 또 다른 책 내려고? 욕심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니야? 잘난 것도 없으면서 세상 다 꿰뚫어보는 듯한 말투가 아직도 글에 선명해. 내가 볼 때 자긴 아직 한참 멀었어."
순간, 벙어리가 된 것만 같았다. 이미 찢어진 가슴에 망치만 한 송곳이 사정없이 밀고 들어오는 듯한 통증이 번졌다. 아내는 혹시 제3의 눈이 달린 외계인이 아닐까. 나보다 침대를 더 사랑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이불 속에 파묻혀 폰만 만지작거리면서, 어떻게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알 수가 있을까. 그녀가 읊조리듯 던진 말을 온 힘을 다해 부정해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말은 이미 마음 깊은 곳에 짙게 배어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내 글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채, 순간 치밀어 오른 감정에 휩쓸려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글로 만나는 독자들과 달리, 그녀는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내 글에 권태를 느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글 속의 나와 현실의 어긋남은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다짜고자 쏘아 붙이는 아내가 그저 밉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상 나아가려면, 성장을 하려면,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서라면, 그녀의 말을 업고 스스로 각성해야만 한다며 되뇌었다.
그런데 마음을 다잡으려 했더니 걷잡을 수 없는 부담감이 밀려와 온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여태껏 써 온 글들을 하나도 써먹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글쓰기에 제동이 걸린 건 그날부터였다. 양껏 글을 쓰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온종일 시무룩하던 나였다. 그런 내가 글쓰기에 두려움을 느끼니 상태가 멀쩡할 리 없었다. 아내가 집에 들어오든 말든 마중을 나가지도 반기지도 않았다. 미워서라기보다는, 다정하게 반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글태기는 드문드문 찾아와서 견딜만 했다. 글쓰기를 워낙 사랑하기도 하고, 어차피 글은 죽을 때까지 쓸 작정이었다. 또 힘든 시기에도 글을 쓰려고 쌓아둔 글감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보통 글태기가 아닌 것 같았다. 글을 아예 쓰기가 싫었다. 애정어린 노트북은 2kg 고철덩어리로 보였다. 깜빡이는 커서는 날 조롱하는 듯했다. 쓰려는 문장은 자꾸 도망가고, 하릴없이 빈칸만 바라보다 하루를 삼키는 날이 늘어갔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내 글을 잘 읽어보지도 않고 나무란 건 섭섭하지만, 어쩌면 대충 훑어만 봐도 보일 만큼 두드러진 문제들이 있는 건 아닌지.
나는 꾸준히만 쓰면 언젠가는 나아질 거라 믿었다. 그래서 힘들어도 매일 새벽에 일어나 노트북을 열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문장이 저절로 단단해지지는 않았다. 꾸준함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글쓰기는 무작정 앞으로만 달리는 일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에는 멈춰 서서, 지금까지 써온 문장들을 다시 들여다봐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기어도 넣지 않은 채 죄 없는 액셀만 계속 밟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왜 글을 쓸까.
난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 걸까.
내 글은 왜 그렇게 재수가 없어 보일까.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멈춰야 할 것 같은데 또 그러긴 싫고,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했다.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은 한겨울 유리창에 서린 김처럼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다. 현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책상 위 노트북은 멀끔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창밖은 여전히 찬란했다. 그와 달리 나는 서서히 바래가고 있었다. 넘쳐 흐르던 의지는 뙤약볕 아래 놓인 수조처럼 말라갔다.
그 뒤로 한동안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들을 흘려보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새끼와 사랑하는 아내에게 애정을 건네기는커녕, 스스로 채운 마음의 수갑을 풀지 못해 퍽이나 애를 먹고 있었다.
"글쓰기 수업 나가볼래?"
아내는 기성 작가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곳에 하루만 자기 대신 나가보라는 것이었다. 아내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는 듯해 잠시 망설였지만, 책도 글도 내려놓은 채 엉망이 되어 있던 나는 마지못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평소 달갑게 여기지 않던 글쓰기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글쓰기 수업은 돈만 비싸고 들을 것도 없으니 굳이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던 지난날의 오만을 조용히 삼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