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큰집에 가는 게 좋았다. 낯선 친척들을 보는 건 부끄럽지만 그래도 반가웠으니까. 명절이 되면 그 넓은 집이 가득 찰 정도로 북적이던 큰집은 이제 썰렁할 정도로 사람이 오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 가족만이 그곳을 찾는다. 아버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명절만큼은 온 가족이 함께여야 한다는 사람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고집 하나만큼은 견고했다.
한참 질풍노도의 시기에도 얌전히 잘만 따르던 나였는데, 서른이 넘어서야 아버지 따라 큰집에 가는 게 싫어졌다. 어딘가 막혀 삐걱이던 사춘기가 뒤늦게 찾아온 것만 같달까. 결혼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에도 아버지는 아내와 아이까지 데리고 큰집에 가려고 한다. 대놓고 따라오라고 하긴 좀 그러셨는지 처음엔 "결혼했으니까", 그다음엔 "애 낳았으니까"라는 핑계를 대셨다. 그러면서 큰집에 가는 걸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기시는 듯해 딱 잘라 말했다. 안 가겠다고.
마음 같아선 큰집에 계신 큰어머니와 사촌 형님을 찾아뵙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무리한 요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한 번, 두 번'이 관습으로 변질되는 걸 막기 위해 그냥 집에 있기로 했다. 마땅히 갈 곳도 없으면서.
아버지는 큰집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셨다. 9시부터 12시까지 큰집, 1시부터 5시까지는 고모집, 6시부터 10시까지는 외할머니 댁에 있다가 마무리되는 그 루틴이 나는 예전부터 싫었다. 큰집에서는 온 식구가 가만히 앉아서 티비만 봤다. 그나마 시끄러울 때는 어른들의 정치 관련 갑론을박이 펼쳐졌을 때였다. 고모집은 고모가 할머니를 모시면서부터 들르기 시작했다. 그전엔 십수 년간 왕래가 없었기에 식구들 이름도 잘 모르고 관계조차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어차피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보지 않을 사이라고 생각하니 누가 누군지 들어도 금세 까먹는다. 외할머니 댁은 편안하고 좋지만, 아침부터 불편한 자리를 돌아다니느라 피곤한 상태로 있다 보니 금세 졸음이 몰려 온다.
나는 어디든 괜찮으니 한 곳에서만 진득하게 머무르고 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큰집도 고모집도 나름 있을 만할 것 같았다. 아무리 서로 별 관심이 없어도 하루 꼬박 붙어 있다 보면 마음의 어딘가는 얄팍하게나마 이어질 테니까. 서로 근황도 좀 나누고, 밥도 제대로 먹고, 이왕이면 술도 한잔하는 그런 날이 1년에 두 번 정도만 있어도 희미한 연결고리는 생길 테니까.
하지만 아버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 해의 효도를 날 잡고 몰아서 하기라도 하듯 아버지는 무조건 이곳저곳을 다 들러야 하는 사람이었다. 마치 여행지에서 방문 스탬프 찍는 게 목표인 사람처럼. 심지어 설날에는 그 바쁜 와중에 '작은집'이라 부르는 할머니의 동생 댁까지 들렀다.
아버지가 밀어붙이는 명절 일정은 모든 걸 다 챙기려다 제대로 챙기는 건 결국 하나도 없는 루틴이었다. 어딜 가도 가만히 앉아 차려주는 음식만 대충 먹고, 체면 차리며 귀한 손님 대접받는 게 익숙한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를 보다 보면 조선시대 양반을 상상하게 된다.
아버지는 가족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 취지는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방식이 어딘가 뒤틀린 느낌이다. 한때는 피가 섞였으면 가족이라고, 가족이면 서로를 아끼고 돌봐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인생의 나이테가 쌓여가는 과정에서 가족이라고 다 같은 가족은 아니라는 마른 현실을 몸소 체감했다.
어쩌다 한두 번씩 보는 사이는 확실히 감흥이 없다. 집을 사든, 사업이 망하든, 결혼을 하든, 이혼을 하든 별 관심이 가지 않는다. 삼십 년 넘게 거의 보지 않다가 병상에 누워 계실 때 몇 번 인사드린 게 전부인 고모부가 돌아가셨을 땐, 눈물은커녕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유대감이었다. 오직 유대감만이 가족이라는 관계의 본질과 토대를 받쳐주는 결정적인 요소였다. 유대감이 없으면 나는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길을 걷다 마주쳐도 알아볼까 말까인 먼 친척보다, 매일 출근 시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웃에게 더 정이 간다. 유대감도 없는데 도움을 청하는 가족이 있다면 나는 철저히 외면할 자신이 있다. 반대로 유대감만 있다면, 설령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라도 두 팔 걷고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유대감의 강도는 왕래의 빈도에, 유대감의 질감은 관계의 진정성에 비례한다고 믿는다.
주고받을 말도 별로 없는데 명절마다 꾸준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아버지가 한편으로는 대단하기도 하다. 그런 불편한 자리에서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칙칙한 분위기를 환하게 밝히는 어머니는 더더욱이나. 아버지도 분명 이유가 있겠지. 남모르는 추억과 미련 같은 것들이 맴돌아 마지못해 그러는 걸 수도 있겠지. 있다면 들어보고 싶지만, 없어도 상관없다. 난 이미 방향을 정했으니까.
가난과 함께 가족을 대하는 태도도 난 전혀 물려받지 않을 작정이다. 부모님이랍시고 그들의 사고방식을 함부로 답습하지 않겠다. 살아가는데 이롭지 않은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철저히 가리고 가려서, 옛 가족으로부터 나의 새 가족을 지켜낼 것이다.
어쩌면 이런 의지를 품게 만든 것 자체가 부모님이 남겨준 가장 값진 유산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