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가족이라는 개념에 회의감이 들고 어딘가 위선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부모님과 여동생과는 잘 지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가족'이라는 말이 점점 공허하게 다가왔다. 돈 문제, 고부갈등, 자녀와의 마찰, 남보다 못한 형제 관계 같은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틀에 대한 신뢰는 조금씩 옅어졌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잠시 제동을 걸게 만든 건 바로 아내의 가족들이었다. 그들과 있으면 사람 사이의 적정 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처형, 처남, 처제 그리고 그들 각자와 정서적 관계를 맺은 이들은 사이가 좋았다. 막 서로 돈독하다거나 죽고 못산다거나 하는 그런 게 아니었다.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적당한 주고받음이 이루어지는 그야말로 더없이 무탈한 관계였다. 그들과 보내는 시간은 무미건조하지도 축축하지도 않았다. 비싸진 않지만 내겐 딱 맞는 소파에 앉아 편히 쉬는 느낌이랄까. 그들과 같이 있다 보면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어졌다. 마음이 편안했다. 어릴 적부터 함께 한 나의 가족들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아내 쪽 사람들과 있는 걸 더 좋아하게 돼버렸다.
멀어진 친구들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편하게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장인어른, '그리운 엄마의 된장찌개' 같은 기억이 없는 내게 따뜻한 집밥의 추억을 아로새겨주는 장모님. 부모님보다 더 우리 아이를 아끼고 보살피는 처형, 몸 사리느라 먼저 다가가지도 못하는 나를 볼 때마다 자기네 집 놀러 오라며 살갑게 구는 처남, 언제나 상냥하고 친절한 처제. 유쾌하기 짝이 없는 띠동갑 형님의 동서. 비혼주의와 이혼이 익숙한 요즘 세상도 그들과 함께 있다 보면 누군가 만들어 낸 짓궂은 소문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그들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못한다. 그건 어쩔 수가 없다.
사람이 술기운에 취하면 얼마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게 되는지 미처 알지 못했던 시절의 어느 명절날이었다. 나는 사촌 형제들과 작은방에서 놀고 있었다. 아마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티비를 봤거나 했을 것이다. 큰방에서는 어른들이 명절 음식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문어숙회, 돔베기, 나물, 부추전 등으로 가득 차려진 술상을 보면 한입 얻어먹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를 내지 못했다. 술잔 부딪히는 소리, 티비의 잡음, 그리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술 냄새가 퍼진 방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였고, 아무 상관없는 나까지 괜히 기분이 덩달아 올랐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분위기는 평소만큼 오래가지 못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술 먹다 말고 셋째 이모부가 갑자기 지갑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뒤져도 안 보이자 이모에게 "내 지갑 못 봤어?" 하고 물었다. 못 봤다고 대답한 이모에게 이모부는 "네가 훔쳐간 거 아니야?"라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하기 힘든 어투로 말했다. 확실히 애매하긴 했으나 난 그 말이 당연히 농담인 줄 알았다. 이모부가 원래 술 들어가면 조금 까불거리는 편이기도 하고, 실실 웃으며 이야기했던 게 지금도 기억난다. 그런데 현장에서 그렇게 생각한 건 나뿐인 것 같았다.
나는 그때 어른들이 얼마나 술을 마셨고 얼마나 취했는지 몰랐다. 다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그 당시의 그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저 새끼가 나를 도둑년 취급하네." 이모는 분노와 서러움에 사무친 듯 갑자기 울부짖기 시작했다. 마치 평생 벼르던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났으나, 생채기조차 내지 못해 분에 사무쳐 멘탈이 터져버린 사람처럼 굴었다.
이모부는 당황한 듯 손사래를 치며 그런 뜻이 아니라고, 오해라고 해명했다. 나는 속으로 이모부를 응원했다. 상황의 진위와는 별개로, 대뜸 열폭한 이모보다는 이모부가 그나마 정상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진실이었으면 했다. 그런데 뜻밖의 인물이 난입했다. 바로 나의 어머니였다.
'시발새끼', '개새끼'는 내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나 쓰는 욕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어머니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이모부를 매섭게 몰아붙였다. "처형, 제 말 좀 들어보세요." 하며 애처롭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이모부를 어머니는 철저히 무시했다. 감정이 북받쳐올라서였는지, 아니면 애초에 들어줄 생각이 없었던 건지, 니 따위가 감히 내 동생을 도둑년 취급하냐며 소리를 질렀다. 마치 온몸의 감각이 인연을 끊어내는 데에만 집중된 사람처럼. 저 사람이 정말 내 엄마가 맞는지 의심스러웠고, 되도록이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가장 격하게 반응한 게 이모와 우리 어머니였을 뿐, 다른 어른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웃고 떠들며 함께 한 시간들이 한낱 꿈이었던가 싶을 만큼, 사위이자 제부이며 매형이었던 이모부는 순식간에 남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이 자리에 있어선 안 될 사람처럼 모두가 일방적으로 그를 나무랐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람 몸에 알코올이 들어가면 대체 어떤 마법이 일어나길래 그토록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그리 삽시간에 변할 수 있는 걸까. 무슨 심정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결코 헤아릴 수 없을 듯한 허탈한 표정을 짓던 이모부의 얼굴은,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었다.
나는 셋째 이모부를 딱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내겐 그저 우리 엄마 동생의 남편이자, 가끔 보는 사촌 동생들의 아버지였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석연치 않은 과정을 통해 가족에게서 거의 쫓겨나다시피 한 그에게 크게 감정이 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때 어렴풋이 느꼈던 깨달음을 생각하면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가족이 되었다고 해서 영원히 가족일 수는 없다는 것. 가족도 얼마든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될 수는 있으나, 남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일 수밖에 없다는 것.
나는 매년 바란다. 명절 때마다 우리 집 사람들보다는 장인어른, 장모님, 처형, 처제, 처남네 가족들과 함께 있게 해달라고. 점잖 떨고 걱정 섞인 말만 오가는 우리 집보다는, 좋은 날 만나 서로 응원해주고 다독이는 데 여념이 없는 아내 쪽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으니까.
그리고 나는 잊지 않는다. 아내에게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입힌다면 한없이 다정하던 그들도 언제든 돌변할 수 있다는 걸. 아무리 서로 편해져도 보이지 않는 선은 분명 존재하며 경계를 허물고 안주하는 순간 그 선은 벽이 될 수 있다는 걸. 더불어 나는 아내와 결혼한 사람일 뿐, 그들에게는 영원한 손님이자 외부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들의 호의와 친절은 공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