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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사진이 뭐라고

by 달보


아내를 만난 후 가장 큰 변화는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뜻밖이었던 건, 사진이었다.




돌잔치홀에서 결혼식을 치른 만큼 비용을 아낀 우리는 이탈리아로 9박 11일 신혼여행을 가기로 했다. 설레기만 하고 별 생각 없는 나완 달리 아내는 예쁜 사진을 많이 남기고 싶어 했다. 그 당시 내 폰은 거의 6년 가까이 써 온 낡아빠진 아이폰 6s 모델이었다. 좀 느리고 카메라 화질이 희뿌연 것만 빼면 사용하는 데 지장은 없어서 굳이 바꿀 생각은 없었다. 그 마음을 꿰뚫어 본 아내가 말했다.


"설마 그 똥폰 갖고 신혼여행 갈 건 아니지?"


한 지붕 아래 함께 살기로 한 사람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건 없었다. 썩 내키진 않았지만 결국 정든 친구를 보내주기로 했다. 지금 쓰고 있는 아이폰 14 pro는 그렇게 만난 친구였다.


첫 목적지는 베니스였다. 처음 그곳에 도착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운하를 따라 나란히 들어선 집들은 저마다의 색으로 낭만을 비추고 있었다. 골목마다 즐비한 이색적인 주택들은 들어가 보고 싶을 만큼 호기심을 자극했다. 온 사방이 포토존이었다.


숙소 근처 커다란 다리를 건너자 번화가의 시작을 알리는 골목길이 나왔다. 왼쪽엔 젤라또 가게가, 오른쪽엔 초콜릿 상점이 있었다. 유리 너머 분수대처럼 흐르는 초콜릿을 보기만 해도 당이 채워지는 것 같았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거리에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있었다. 사람 많은 걸 싫어하는 내가,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모인 듯한 그 혼잡한 공간을 삽시간에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다만 골치 아픈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나의 사진 실력이었다. 애플의 최신 카메라 기술도 인간의 무딘 감각은 커버하지 못했다. 아내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최선을 다해 사진을 찍었지만 돌아오는 건 아내의 싸늘한 눈빛과 원망 섞인 한숨뿐이었다. 답답했다.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지, 대체 어떻게 찍어야 칭찬받을 수 있는지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몰라 아내의 갤럭시로도 찍어 봤다. 역시 문제는 기계가 아니라 내 손과 눈이라는 사실만 드러났다.


잘 찍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게 괴로웠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 사진을 이렇게밖에 못 찍어?"라며 화를 내는 아내에게 서운함이 밀려왔다. 그놈의 사진이 뭐라고.


속마음을 애써 숨기려 했지만 이미 표정은 걷잡을 수 없이 굳어지고 있었다. 안 그래도 못생겼는데 이탈리아까지 와서 인상을 구기고 있는 것 자체가 속상했다. 우리도 결국 신혼여행지에서 싸우겠구나 싶었다. 정말 우린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수평 수직을 잘 맞춰 봐."


심기가 몹시 불편해 보이던 아내가 툭 내뱉은 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말이 내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일단 그녀의 말대로 아이폰 화면에 얇게 표시된 격자선에 맞춰 주변 배경과 수평 수직을 정렬해봤다. 근사한 장면 속 곧게 뻗은 직선들 중 가장 길어 보이는 선을 기준으로 삼았다. 정렬할 선이 마땅히 없으면 최대한 배경이 삐뚤어 보이지 않게끔 감으로 구도를 잡았다. 마치 아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배경이 주인공인 것처럼.


"우와, 대박!"

"사진 작가 해도 되겠다."

"혹시 숨겨진 재능 발견한 거 아니야?"


놀랍게도 아내의 반응은 달라졌다. 내 사진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데에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사진을 보여줄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기만 하던 그녀의 얼굴에 옅은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낯선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도 그랬다. 내가 찍은 사진이지만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단지 수평 수직만 맞췄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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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아내는 내 사진 실력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 시작했다. 카메라만 들면 매섭게 노려보던 그녀가, 이제는 세뱃돈 기다리는 아이처럼 똘망한 눈빛으로 포즈를 취했다. 어쩌다 얻어걸린 거라기엔 여행 내내 반응이 비슷했다. 더는 아내의 핀잔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했고, 위태롭던 신혼여행의 시작은 평온하게 흘러갔다.


베니스, 피렌체, 레꼬, 밀라노, 암스테르담을 거닐며 약 오천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중에서 대부분이 아내 사진이었다. 유려한 산세나 그림 같은 소도시 풍경도 좋았지만 아내를 찍는 게 가장 재미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니까. 아내가 나를 다그치지 않았다면, 수평 수직을 맞춰보라 하지 않았다면, 덩실덩실 춤추고 싶을 만큼 칭찬세례를 퍼붓지 않았다면, 신비로운 유럽에서 남긴 사진은 수천 장이 아니라 수백 장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낯설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이.




사진 찍기는 어느샌가 조용히, 일상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누가 보면 사진 작가로 오해할 만큼이나 자주, 그리고 많이 찍었다.


딱히 꼬집을 만한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탈리아에서야 뭐 아내의 칭찬을 채굴하기 위해 찍었다지만, 이제는 아내 없이도 혼자 잘 찍고 다닌다. 사진을 위해 굳이 먼 곳을 찾아 떠나진 않는다. 일상을 보내다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으면 그 즉시 찍는다. 샤워 중 글감이 떠오르면 손만 닦고 메모하는 것처럼. 틈만 나면 여기저기로 아이폰 트리플 렌즈를 들이밀다 보니 점점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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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하늘 아래 떠 있는 구름 한 조각, 햇살에 반짝이는 잎사귀, 늘 제자리에 서 있는 무심한 신호등, 벽돌 틈을 뚫고 피어난 꽃 한 송이, 온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노을, 푸른 잔디밭, 뛰어노는 아이들, 노란빛으로 물든 드넓은 평야, 찰랑이며 춤추는 수면 위로 반짝이는 윤슬, 눈부신 태양 곁에 조용히 떠 있는 희미한 달까지.


찍은 사진들은 SNS에 올리지도, 주변 사람들에게 공유하지도 않았다. 물론 귀찮아서 그런 것도 있었다. 다만 그간 놓치고 있던 아름다운 순간들을 포착하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쓰는 것 자체가 즐거운 글쓰기처럼.

사진을 버릇처럼 찍다 보니 한 가지 변한 게 있었다. 원래는 무작정 카메라부터 켜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무작위로 찍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찍게 될 장면을 눈으로 먼저 담는다. 마치 앨범에 저장될 사진을 미리 알아보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달라진 내 모습이 신기했다. 사진 작가들도 이런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글쓰기와 사진은 닮은 점이 많았다. 사소한 해프닝을 글로 써보면 당시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떠올릴 수 있듯, 사진도 그랬다. 매일 지나던 거리도 처음 보는 것처럼 다가온다. 그동안 얼마나 무심하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해외여행도 좋지만 꼭 떠나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쓰기처럼 사진도 앞으로 계속 찍을 것 같다. 그 소소한 예감이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어쩌면 글쓰기와 사진이 내 삶의 수평 수직을 바로잡아주는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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