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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라도 서로를 영영 모르겠지

by 달보


아내와 난 책을 통해 인연을 맺었고, 주로 책 이야기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한낯 바람처럼 지나갈 수도 있었던 인연이 연인으로 발전하면서, 우리는 조금 더 깊이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삼시세끼를 꼬박 챙겨 먹었다. 배고픈 걸 참지 못했다. 청소를 꼼꼼히 하지만 자주 하진 않았다. 청결에 신경 쓰지만 예민하진 않았다. 미니멀 라이프를 선호하지만 추구하진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차갑게 여길 만한 인상 너머엔 순수한 영혼이 그윽하게 배어 있었다.


그리고 아내는 생각보다 책을 잘 읽지 않았다. 주로 드라마를 보거나 인스타그램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뭔가를 할 때마다 꼭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내 눈엔 그런 그녀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해야 한다는 집착을 좀처럼 내려놓지 못했다. 결핍이라는 단어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는 그녀와 달리, 난 결핍을 가슴에 꿰매고 사는 사람이었다.


독서 모임에서 만났지만 책 한 권을 읽는 데도 한 세월인 그녀의 모습이 마냥 낯설지만은 않았다. 지금까지 독서 모임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으니까.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게 독서 모임에 오는 사람들은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을 거라는 점이다. 생각이 깊거나 말을 잘할 거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참여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책을 읽어보고는 싶지만 혼자로는 안 되겠어서 함께 읽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도 있고, 책보다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나 역시 독서 모임에 들어간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굳이 독서 모임에 들어가려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책은 혼자 읽는 게 익숙하고 또 그게 편했다.


아내는 요리를 잘했다. 국이든 반찬이든 메뉴를 가리지 않고 30분 이상 걸리는 법이 없었다. 손이 워낙 빨라서 잠깐 한눈 팔고 나면 설거지까지 이미 끝나 있고, 가스레인지 위에는 덩그러니 놓인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속도가 빠른 만큼이나 손 계량이 정확하지 않았다. 한 유명 셰프가 소금을 촥촥 뿌리는 것처럼 조미료를 휘리릭 흩뿌리는 아내의 요리는 분명 같은 메뉴인데도 맛이 다를 때가 많았다. 요리가 유난히 맛있는 날이면 입에 허겁지겁 밀어넣기 바빴다. 그때가 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전에 만난 사람 중에서 내가 아줌마 같아서 싫다 했던 사람도 있었어."


그녀와 지내다 보니 그 말의 뜻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카라칼(caracal)이라는 고양잇과 동물을 닮은 그녀의 외모는 도도하고 똑 부러질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모습은 조금 다르다. 알면 알수록 구수하고 부드러우며, 소위 '줌마끼'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사람이다. 가끔 아이돌 댄스 영상을 틀어놓고 운동 삼아 따라 출 때가 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대구에 계신 어머니가 떠오른다.


예전부터 어머니는 내가 말을 너무 독하게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팩트 폭격을 자주 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아내는 나보다 한 수 위였다. 어릴 적 사촌 누나에게 말싸움으로 뚜드려 맞아 엉엉 울고는 두번 다시 까불지 않았는데, 하필 나이도 동갑인 아내와 누나 중 누가 더 말싸움을 잘할지 궁금할 정도였다.


하지만 차갑고 냉정한 말투는 그녀의 일부일 뿐이었다. 주변에서 순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 평가받는 나보다 더 여리고 마음이 약한 게 바로 아내였다. 난 웬만하면 남에게 정을 주지 않았고 감사할 줄도 미안해할 줄도 모른다. 그런 나와 달리 아내는 낯선 사람과도 마음을 쉽게 나눈다.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아내와 난 겉과 속이 반대인 것만 같았다.


여태 살아오며 만난 모든 이가 그랬듯, 아내 역시 알면 알수록 의외의 면이 많은 사람이었다. 대부분은 무덤덤하게 받아들였고 가끔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예상밖의 모습이 싫었던 적은 없었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지', '내가 그만큼 편한가보네', '꾸며내지 않아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며 되뇌었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어떻게 변해갈까. 서로를 정말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나 할까.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만 같다. 근데 그래서 오히려 더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어쩌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그 틈이, 뼛속까지 다른 두 사람을 엮어주는 경이로운 여백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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