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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뭘 해도 어설픈 남편입니다

by 달보


"넌 뭘 해도 그렇게 어설프니?"


어릴 적 뭔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이웃 아주머니에게 들은 말이었다. 그런 상황은 익숙했다. 잊을 만하면 여기저기서 종종 들었으니까. 아버지 어머니는 내게 그런 말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밖의 주변 사람들이 나를 보다 보면 어설프다는 말을 옅은 미소를 지으며 건네곤 했다.


나는 내가 봐도 참 어설펐다. 사과 깎기, 옷 여미기, 가방 챙기기, 글씨 쓰기, 친구 사귀기, 딱지 치기, 자전거 타기 등등. 처음 하는 건 두말할 것도 없고, 몇 번 해본 것조차 야물딱지지 못했다.


내가 어설프다는 생각은 평생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도,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가끔 이유 없이 일어나는 두통처럼 잊을 만하면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래서 나는 하는 것마다 자신이 없었다. 어설프다는 말을 들을까 봐. 실제로도 하는 것마다 어딘가 조금씩 어설펐으니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설프다는 말을 들은 것 이상으로, '꼼꼼하다', '잘한다'는 말을 꽤 많이 들었다.

태권도장에서 빨간 띠를 달고 품띠를 단 아이들에게 품새 '고려'를 가르쳐줄 때, 관장님이 너무 꼼꼼하게 가르친다며 칭찬인지 나무람인지 분간하기 힘든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눈엔 삐뚤빼뚤한 글씨를 친구들은 예쁘다고, 어른 글씨 같다고 칭찬하곤 했다. 군생활 중 난잡한 서류를 정리할 때도 꼼꼼하다는 평을 들었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늘 비슷했다.

'나를 잘못 본 게 아닐까?'

'나를 잘 모르는 게 아닐까?'


그들의 후한 평가가 꼭 과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안에는 '어설프다'는 이미지가 훨씬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좀처럼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꼼꼼하다', '완벽하다'는 말을 듣고 있으면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듯, 어딘가 불편하고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어진다. 나를 좋게 봐주는 사람과 가까워지는 게 두렵다. 시간이 지나면 내 민낯이 드러날 것 같아서. 당신이 보는 것보다 나는 훨씬 더 어설프고, 잘하지 못하는 게 많은 사람이니까.


나는 내가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걸 이십대 후반에서야, 책을 통해 겨우 자각하기 시작했다. 게으름은 그저 핑계일 뿐이었다. 제대로 노력도 안 하면서 처음부터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중요하지 않은 일조차 완벽하게 해내려는 집착이 강했다. 경쟁심은 별로 없는데도 모두의 환심은 또 사고 싶은 비현실적인 욕망이 들끓었다.


이 모든 건 어릴 적부터 머릿속에 각인된 '나는 어설프다'는 낙인을 한 겹이라도 벗겨내려는, 피부에 새겨진 문신인지도 모르고 이태리 타로 박박 문질러대는 그런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우리는 배드민턴장의 한 코트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자리가 비어 코트로 들어가려던 찰나, 배드민턴 동호회 무리가 슬며시 다가와 말을 걸었다. 두 사람이니까 저쪽 구석 반코트에서 하면 안 되겠냐고.


"아니요, 그냥 여기서 할게요. 그러려고 계속 기다렸거든요."


나는 쫄아서 금세 수긍하려 했지만 아내는 달랐다. 그녀는 다수에 굴복하지 않았다. 아내의 단호함에 나도, 그들도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그제야 자신의 무례함을 자각한 듯 조용히 물러났고, 나는 그녀의 등 뒤에서 조용히 감탄했다.


아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할 말은 똑부러지게 하는. 없는 말 지어내지 않고, 살 붙여 과장치 않고, 남에게 잘 보이려 애쓰지 않고, 에둘러 말하지 않는. 그녀의 명료함과 당당함은 타고난 성품이라는 걸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내게 “잘한다, 잘해.” “어쩜 그렇게 꼼꼼할까.”라고 말할 때면,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아 스르륵 어깨가 올라간다. 동시에 불안감이 밀려온다. 이 이미지는 얼마나 오래 갈까.


“옷 갈아입고 왜 옷장 문 안 닫아?”

“식탁 제대로 닦은 거 맞아?”

“왜 항상 일을 하다 말아?”


요즘 아내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역시나, 나는 아직도 어설픈 구석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녀가 지적하지 않았다면 내가 옷장 문을 얼마나 자주 열어둔 채 다니는지, 식탁을 얼마나 대충 닦는지, 일을 얼마나 흐지부지 끝내는지 잘 몰랐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렇다고 더 이상 주눅 들지 않고 나를 받아들이려고 한다는 점이다. 여전히 어설프지만 그만큼 더 노력하기로 했다. 나는 나를 방치하지 않기로 했다.


방문이 완전히 닫히기도 전에 손에 쥔 힘을 어슴푸레 풀고 있는 걸 느낀다. 귀찮지만 한 번 더 힘을 준다. 기름때 묻은 그릇에 거품이 잘 나지 않아도 죽기야 하겠냐며 그냥 넘기려 한다. 그래도 다시 거품을 내어 제대로 닦는다. 양치할 때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입을 헹구고 싶어진다. 그래서 칫솔을 사랑니 안쪽 깊숙이 밀어 넣고 구석구석 사정없이 문지른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나에겐 이런 작은 도약 하나하나가 꽤 번거롭고 힘이 든다. 기가 상당히 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노력한다. 어설프지만 어설프지 않은 남편이 되기 위해. 이런 나와 한 지붕 아래 함께 살기로 한 배우자와 오래도록 잘 지내기 위해.


완벽할 순 없겠지. 다만, 내 선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을 그녀에게 보이고 싶다. 나의 살랑이는 꼬리는 오직 그녀에게만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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