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연애 경험을 서슴없이 털어놓는 편이다. 나는 아내가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지 알고 있다. 아내는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름도 기억한다. 그게 흔한 일이 아니라는 건 주변 사람들의 경악스러운 반응을 보며 깨달았다. 하지만 우리에겐 서로의 과거를 알아가는 게 자연스러웠다. 지난 세월의 흔적을 공유하는 건 너를 좀 더 깊이 알고, 나를 좀 더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전 연애 이야기를 나눌 땐 이름보다는 각 연애의 특징을 담은 별칭으로 주고받았다. 가령 5년 사귄 남자친구는 ‘5년산’, 돌연 베트남으로 떠나버리는 바람에 헤어진 사람은 ‘베트남’ 이런 식이다. 그중 자주 언급되는 이는 아무래도 ‘5년산’이었다. 아내와 무려 5년을 만난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지, 또 그동안 아내는 어떤 변화를 겪었을지 궁금했다. 물론 아내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궁금한 마음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어느새 우리가 만난 지도 5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오랜 기간 동안 권태기 한 번 없이 잘 지내는 건 네가 처음이야."
아내로부터 그 말을 들었을 때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5년산'과도 나름 갖은 일들을 겪었겠지만, 그와는 견줄 수 없는 인생의 굵직한 변곡점들을 우리는 함께 헤쳐왔으니까.
독서 모임에서 처음 만난 것. 만난 지 석 달 즈음 결혼을 약속하고, 이듬해 내 생일날 돌잔치홀에서 결혼한 것.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것. 뜻밖의 유산. 현이가 뱃속에 들어선지도 모른 채 일본 여행을 떠난 것. 서로의 아버지가 비슷한 시기에 큰 수술을 받았던 것. 왼손의 일자 손금과 오른손의 M자 손금까지 나를 빼다박은 아들을 새 가족으로 맞이한 것. 그리고 돈을 포기하고 시간을 구하기 위해 연봉이 반토막 나는 걸 감수하며 공장에서 사무직으로 이직한 것까지.
권태기는 분명 찾아왔을 텐데, 예고 없이 닥친 일들을 쳐내느라 바빴던 우리에게 스며들 틈이 없었던 건 아닐까. 혹은 권태기가 우리 곁으로 스리슬쩍 다가왔다가, 워낙 둔한 탓에 서로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조용히 지나간 걸지도 모를 일이다.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잘 맞는 사람끼리 만나서 좋겠다고.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아내는 알면 알수록 나와 다른 면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글을 쓰고, 아내는 이불 속에 파고들어 인스타그램을 탐방하며 시간을 보낸다. 우린 잘 맞아서 잘 지내는 게 아니다. '다름'을 애써 이해하려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평화로울 수 있었다. 평소엔 별생각 없다가도, 어지러운 세상만사를 마주할 때마다 우리의 무탈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새삼 깨닫는다.
결혼의 본질은 ‘서로 잘 지내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배우자와 원만하게 지내기 위해 좋은 집, 좋은 차, 명품 가방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되는 것들이었다. 만약 그런 게 부부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확실했다면, 경제적 여유가 넘치는 집안에서의 싸움은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요즘 나는 글 쓰느라 여념이 없다.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고 갑자기 아내를 귀찮게 하는 건 득보다 실이 크겠지.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온몸의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녀와 오래도록 사이좋게 지내려면 지금처럼 적당히 바쁜 편이 나을 것 같다. 틈만 나면 서로의 곁을 맴돌기보다, 나는 내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고 그 끝에서 그녀를 마주하는 쪽이, 관계의 모양을 가장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닐까. 바쁠 땐 바빠서 힘들다고 투덜거렸는데, 오히려 그 바쁨이 우리 관계를 안전하게 지켜준 걸지도 모른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우리 현이. 걔는 어차피 크면 나처럼 지가 좋다는 여자 따라가서 연락도 없을 테지. 그리고 알콩달콩 잘 살겠지. 고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내에게 온 정성을 쏟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