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쓰면서 옛 전통이 웬 말이냐
한국의 명절엔 온갖 '해야 할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문제는 그것이 선택사항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죄인취급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본질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 있다. 명절은 단지 국가단위의 기념일일 뿐이다. 뭔가 해야 되는 날이 아니다. 윗사람에게 뭘 주는 날도 아니며, 아랫사람에게 뭘 받는 날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주지 못해서 안달이고, 받지 못해서 안달이다. 그리고 해마다 지내는 제사는 지내면 지낼수록 그 절차가 풍기는 무의미함이 점점 수면 위로 드러난다. 어릴 땐 그저 어른들을 따라가며 당연히 해야 되는 건 줄 알았던 것들이 이제와서는 왜 해야 되는지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시간이 갈수록 오지 않는 친척들이 점점 많아진다.
명절만 되면 이혼율이 높아진다. 이런 현상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섞여있겠지만 그놈의 '해야 되는 것들'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주고받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긴다. 매일 먹고 사느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먼 거리를 오가는 것만 해도 부담이고 스트레스지만, 그 이상의 압박이 정신과 몸을 짓누른다. 받는 것이 당연한 사람, 주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 정해져 있다. 이른바 문화라는 집단의식은 이토록 사람들의 일상을 위협한다. 그깟 문화 같은 거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주변의 분위기를 무시 못한다. 명절에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이상하고, 가족애가 없다고 하던 사람들도 이젠 그들을 부러워하는 분위기를 풍긴다.
명절이 아무리 좋은 취지의 행사라고 할지라도 점점 제사를 지내는 집은 없어지고, 이혼하는 가정이 많다는 건 뭔가 그렇게 흐름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흐름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고 한 번 흐르기 시작한 것은 막지 못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마 명절의 분위기는 급격하게 많이 바뀔 것이다. 해야만 되는 줄 알았던 것이 꼭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임을 깨닫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시기에 굳이 전통을 유지하면서 힘들게 살아갈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꼭 명절이 아닌 평범한 날들도 충분히 힘들다. 명절 3일간의 연휴는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옛 전통 같은 건 잘 모르겠다. 지금은 2023년이다. 사람은 현재를 살아간다. 나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해서 꼭 법처럼 따를 필요는 전혀 없다. 그리고 그런 전통들을 지키는 대가가 희생, 관계의 멀어짐과 같은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면 큰 맘을 먹고서라도 내 생활로부터 단절시킬 필요가 있다. 인간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세상은 기하급수적으로 변해간다. 인간의 본성은 어찌할 수 없더라도 나의 생각만큼은 시대를 뒤따라갈 줄 알아야 한다. 산속에 틀어박혀 자연인처럼 살 게 아니라면 말이다.
인간의 생각은 완전하지 않다. 세상 사람들 모두를 홀린 생각일지라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참이 거짓이 될 수도, 거짓이 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오로지 본인의 생각만을 신뢰하는 것이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현명한 태도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상상 이상으로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그에 비해 옛날의 전통에 휘말려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전통은 지켜야 한다고 고수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지 말이다. 전통을 따지는 사람들의 특징은 옛 전통 중의 극히 일부분만을 그렇게 따른 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통'이 아니라 '자기가 지키고자 하는 것'만을 따르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런 것을 가족이라는 이유로 강요한다. 전통의 범위는 그렇게 좁지 않다. 자기가 고집하는 전통만을 지키는 게 아니라 모든 전통을 지키고자 한다면 얘기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자신이 없으면 자신의 생각도 좀 바꿔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라의 전통은 지키는 게 좋지만, 그러한 전통이 내 생활에 해를 끼친다면 쓰레기통에 휴지 버리듯 버릴 수 있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그리고 꼭 버리지 않아도 된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전통을 지키면 된다. 나를 모르는 남의 말도 잘 안 듣듯이 출처도 불분명한 옛 전통에 그렇게 얽매여 살지 않아도 된다. 내 인생이 가장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