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by 달보


터닝포인트

군 생활을 하던 도중 책을 알게 된 것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난 독서를 하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공부를 시작하여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런 나를 좋게 봐주신 교수님의 추천서를 통해 서울에 있는 회사에 면접을 볼 수 있었고, 덕분에 난 졸업을 하기도 전에 서울에 있는 회사로 입사하게 되었다. 그렇게 난 내가 살던 동네를 처음으로 벗어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 인생이 이미 성공의 가도에 올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보기 좋게 자리도 잡아 남 부럽지 않게 서울에서 잘 살겠다는 다짐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난다.



극복하지 못한 시련

하지만 현실은 지옥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첫 번째 현장에서 2개월 보름동안 상사와 숙소생활을 하며 거의 쉬지도 못하고 일했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밤낮은커녕 주말도 없이 일해야 하는 게 내가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었다. 그 당시 연애하던 여자친구와는 거의 생이별 수준이었다. 그렇게 겨우 첫 번째 현장을 버텼지만 내겐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째 현장에서는 4개월 보름이라는 공사기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하루 14시간씩 일만 했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내 월급은 세후 147만 원이었고 월세는 관리비 포함 54만 원이었다. 가혹한 현실에 부딪히면서 세상을 다 삼킬 것 같았던 나의 패기는 이미 연기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난 사회생활의 쓴맛을 제대로 경험하고 서울로 올라간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함께 서울로 취직하여 올라간 동기들 중에서 내가 제일 성공할 줄 알았건만, 결국 난 가장 빠르게 포기했던 루저가 되었다.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지금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다. 혹시 내가 그때 서울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면 또 다른 길을 개척해서 잘 살아갈 수 있었을까. 무작정 힘들다고 고향으로 도망치듯 내려간 게 잘못이었을까. 어쨌든 그때부터 난 점점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사실 그때는 나이도 20대 중반이었고 내게 남은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연애도 나름 잘하고 있었기에 그리 조급한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뭐든지 배우기 시작하면 누구보다도 열심히 배우고 뭐든지 일만 시작하면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는 내 성향 때문에 오히려 눈앞의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내 인생이 꼬여간다는 생각을 그리 심각하게 하지 않았었다.



악순환

뭐든지 과하면 좋지 않다고 했던가.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할 줄만 알았던 나는 눈앞의 나무에만 집착하고 커다란 숲을 제대로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 뒤로 난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그 지식과 관련된 직장에 취직하지만 가는 곳마다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고 또 다른 공부를 시작하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그러면서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내 나이는 서른이 되었다. 그동안 뻘짓 하느라 커리어를 쌓지도 못하고 모은 것도 없었지만 나의 방황은 서른 살이 되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난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와의 관계까지 틀어지고 세상에서 혼자가 되었다.


당차게 성공할 줄 알았던 내 예상과는 다르게 내 앞의 현실은 너무나 어두웠다.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쓴 맛은 다 경험해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난 처음으로 친구들 앞에서 울었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내가 그토록 외면해 왔던 사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제껏 해왔던 것들은 다 물거품이 되었고 난 망했다는 것을. 그리고 난 완전히 밑바닥에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떠나기로 결심하다

그렇게 친구들 앞에서 한바탕 울고 나서 난 내가 살던 곳을 다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막연하긴 하지만 왠지 이곳을 벗어나야만 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가족들의 품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사실 내가 가족의 곁을 벗어나려 했던 가장 큰 이유는 가난의 기운을 받기 싫어서였다. 우리 집은 화목했지만 가난했다. 부모님은 들어오는 수입에 비해 신기하게도 돈을 한 푼도 모으지 못하는 재주를 갖고 계셨다. 뭘 해야 할지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어디를 가야 할지도 몰랐지만 일단 무작정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갑자기 다른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 친구는 자기네 회사에서 사람을 뽑고 있는데 내가 원하면 추천서를 써주겠다고 했다. 정말 뜬금없는 제안이었지만 난 앞뒤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추천서를 써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난 또다시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 고향을 떠날 때와는 달리 막막한 심정으로 떠났었다. 물론 내가 살고 있던 동네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아예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까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연고도 없는 새로운 지역에 자리를 잡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고향을 벗어나기로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땐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하지만 그때 그 선택이 내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선택이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