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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Feb 09. 2023

깨달음을 얻는 첫걸음

나로부터의 해방

하나의 목표가, 단 하나의 목표가, 싯다르타 앞에 세워졌다. 그것은 해탈(解脫)이었다. 갈증에서, 욕망에서, 꿈에서, 기쁨과 슬픔에서 해탈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 자아(自我)를 벗어나는 것, 텅 빈 마음에서 안식을 찾는 것, 자아를 벗어난 사유(思惟) 가운데서 기적을 만나는 것, 그것이 그의 목표였다. 자아 일체가 초극되고 소멸되었을 때에, 가슴속의 모든 욕구와 충동이 침묵할 때에, 비로소 가장 궁극의 것, 이미 자아가 아닌 본질 속의 가장 심부의 것, 위대한 비밀이 깨어날 것임에 틀림없었다.
- 책 '싯다르타' 중에서





독서의 중요성

내가 수많은 책을 앞에 놓고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은 단 하나의 이유는 내게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단지 그 깨달음을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글로써 모두 표현해내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의 깨달음은 시대의 현자에 비하면 보잘것없을 정도로 얕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어설프게나마 깨닫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참 축복받은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책 내용 중에서 청년의 싯다르타는 해탈을 목표로 세운다. 자기 자신을 죽이고 자아를 벗어나 텅 빈 마음에서 안식을 찾고 사유를 통해 기적을 만나는 것을 단 하나의 목표로 세웠다. 이처럼 난 자기 자신에게서부터 벗어나는 것이 깨닫는 것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어딘가에 집착하거나 고립되어 있으면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나도 '나'라는 존재에 얽매여 있을 때는 그 이상의 것들을 바라보지 못하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책에서 만난 수많은 나의 스승들은 내가 생각하는 '나'는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힌트를 제공해 주었다. 처음엔 그런 말들이 쉽게 와닿지 않았지만 세간의 진실은 언제나 가슴속에 고이 남는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스스로의 생각으로부터 떨어져야 진실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자기 자신의 생각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일어났던 일의 모든 판단도 본인이 가지고 있던 생각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스스로 울타리 쳐놓은 생각의 둘레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주 좁은 범위로 이루어진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살아가진 못한다. 자기가 보고 듣고 이해했다고 믿는 것만을 세상의 유일한 진실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손해를 본다. 심각하지 않은 일을 심각하게 대하며, 사소한 일에 화를 내며,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바라보는 현상이 점점 심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행복한 일보다는 불행한 일에 더욱더 주파수가 맞춰질 확률이 높다.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자기 자신도 세상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스스로를 하나의 객체로써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그리고 세상과의 조화로운 교류가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혹은 그러한 사실들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취급하곤 한다. 자신의 생각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은 갈수록 편협한 생각에 갇힐 수밖에 없다.





언어의 한계

자신에게만 집착하는 사람은 행복하더라도 자신이 행복한 이유를 자세히 모른다. 괴롭지만 왜 자신이 괴로운지 이해하지 못한다. 목표를 이루고 싶지만 왜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는지 알지 못한다. 사랑을 하고 싶지만 왜 본인의 사랑은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지 영원히 알지 못한다. 자신의의 좁디좁은 생각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런 악순환이 벌어지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이토록 좁디좁은 자신만의 세계관에서 자기 혼자만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싯다르타는 그러한 비밀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 아닐까. 위대한 비밀이 깨어날 것임을 예견하고 해탈하는 것을 목표로 두었지만, 그것을 목표로 둔 시점에 이미 위대한 비밀을 깨닫고서 목표를 세운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봤다. 인간은 여전히 언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깨달음도 언어로써 깨닫게 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도 언어의 지배를 받게 된다. 보통의 인간은 말로써 생각하고 말로써 표현하기 때문에 무언가 위대한 사실을 깨달아도 그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어쩌면 수행이라는 것이 그 깨달음의 표현을 위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순간적으로 스쳤던 깨달음을 표현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인간의 깨달음은 완성되는 걸지도 모른다.





이미 알고 있는 걸지도

수많은 독서를 하며 깨달음을 얻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조차도 내가 책 속에 뭔가 길이 있다는 것을 직감한 순간 이미 모든 것을 깨달아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책을 처음 만난 그 시점부터 현재까지도 어쩌면 난 내가 이미 알게 된 것을 되짚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렇게 생각할 수만 있다면 독서를 하며 글을 쓰는 모든 과정이 이전보다 더욱 찬란하게 여겨질 것만 같다. 하지만 매번 그럴 수도 없는 것이 나의 생각이라는 게 여전히 나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마음이 가볍다. 내 머릿속에 일어나는 그 모든 생각들은 원래 내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두 내 것이라고 여기며 살았다면,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난 엄청 괴로움에 시달렸을 것이다. 내가 생각한 나의 이미지를 한 곳에 고정시켜 놓고 그 이미지와 맞지 않는 생각들이 떠오를 때마다 스스로 자책하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그런 잡생각들이 단지 내 머릿속을 스쳐가는, 아무것도 아닌 것임을 알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싯다르타가 해탈하는 과정과 똑같진 않겠지만, 왠지 싯다르타의 길을 내가 따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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