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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Feb 22. 2023

내가 나라고 착각했던 것들

삶의 태도가 바뀌는 계기


난 아직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진 못했다. 하지만 내가 철석같이 나라고 믿어왔던 것들 중에서 몇 가지 정도는 그 정체를 깨닫고 어느 정도 제3의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내 인생에서는 대단히 가치 있는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이 깨달음을 나누고 싶다. 이것은 누군가에겐 불편한 진실이 될 수도, 누군가에겐 내가 느낀 것처럼 소중한 통찰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는 어차피 내 관할이 아니며, 난 그저 글로써 기록을 할 뿐이다.



1. 이름

이름은 태어나기도 전에 태명부터 시작해 나를 보호하는 자들의 임의대로 만들어진 라벨링에 불과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당신은 누구신가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보통은 그 라벨링으로써 대답을 대체하곤 한다. 그게 너무 당연한 습관처럼 되다 보니 이름 자체를 자기 자신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다행히도 독서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개념의 본질을 깨달았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름의 객관적 본질에 대해서 사유를 해보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이름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은 비교적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이름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은 꽤나 많은 생각으로 퍼지게 되는 시발점이 되어주었다. 평생 내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완전한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니, 정말 내가 나라고 생각하며 착각해 왔던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난 이런 지혜를 주변 사람들에게 퍼뜨리고 싶어서, 친구들에게 먼저 이런 사실을 알리려고 했다. 그래서 난 친구를 만난 후 '사실 니 이름은 네게 아니야'라며 얘기해 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이상한 생각이 산으로 가는 사람처럼 취급하기 시작했다. 역시 지혜는 누구나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지만 아무나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을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사실 나조차도 독서를 통한 마음의 문을 개방하지 못했다면 그들과 같은 입장을 취했을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이런 개념을 처음 접했다면 이상한 책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덮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다행히도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만큼 정신이 깨어있다는 사실에 참 감사한 마음을 지니며 살아간다.



2. 신체

몸은 어디까지가 내 것일까. 어느 날 우연찮게 사람의 신체는 약 3년 정도가 지나면 완전히 다른 세포들로써 살아간다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때 깨달았다. '아 내가 갖고 있는 몸도 완전한 내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이름처럼 자신의 몸을 완전한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난 영혼의 존재를 믿고 있다. 그리고 그 영혼만이 온전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신체는 단지 영혼이 잠시 머무르는 육체일 뿐이다. 만약 나의 신체가 완전한 나라고 한다면, 장기이식 같은 건 성립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신체에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해도 사람은 잘 살아간다. 단지 신체는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는 한 부분에 불과하다.


나의 몸은 단지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일 뿐, 그것이 '나'가 될 수는 없다. 내 머리는 내가 아니다. 단지 내가 갖고 있는 머리일 뿐이다. 내 팔도 내가 아니다. 단지 내가 갖고 있는 팔이 두 개 있을 뿐이다. 이름보다 조금 더 난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신체가 내가 될 수는 없다. 우리 몸은 단지 생명의 힘으로 돌아가는 육체에 불과하다. 진정한 '나'는 훨씬 더 깊은 곳에 있다.



3. 정신

난 이 개념을 깨닫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내 생각조차 내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이것은 내가 책을 읽으면서 얻었던 깨달음 중에서 가장 큰 깨달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평생토록 해오던 생각들이 내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의 것인가 라는 질문을 적지 않은 세월 동안 해왔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충분히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왠지 이 생각은 머릿속을 쉽게 떠나질 않았다. 그리고 결국엔 깨달음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생각엔 내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생각들이 존재한다'는 문구가 결정적이었다. 일단 깨달음은 얻었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질문은 '그렇다면 내가 현재 생각하고 있는 것들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였다. 그 질문으로 인해 깨달은 점은 나의 성장환경에 있었다. 나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보호자의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나도 인간으로 살아가는 이상 사회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생각의 모든 근원은 외부에 있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원래 하고자 했던 생각들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단지 내게 하나의 죄가 있었다면 그런 생각들에 대해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간다는 건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책을 읽으면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태껏 자신이 해왔던 생각들, 그리고 지금 머릿속에 들어차있는 생각들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부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난 이 깨달음을 얻은 순간부터 내가 그동안 살아오며 믿어왔던 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재정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 속엔 오류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사실 오류가 많을 수밖에 없는 게 당연했다. 내게 영향을 미친 사람들 중의 거의 대부분이 이런 깨달음 없이 세상이 불어대는 바람의 결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들어차있었으니 내가 가진 생각만으로는 나 자체를 발견할 순 없었다.


그렇게 자기가 믿어왔던 것들을 재정의하기 시작하면 자기만의 생각과 개념이 자리 잡히게 된다. 그리고 그런 근거 있고 힘 있는 생각들은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주고 자존감을 견고하게 만들어준다. 난 그렇게 나만의 중력을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는 혜안이 생겼다. 더불어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까지 얻을 수 있었다. 아직 나도 배움이 한참 모자라지만 이 정도 깨우친 것만으로도 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도 그만큼 기대가 된다.




이 밖에도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갈 법한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나는 독서를 통해서 이런 현상을 걷어낼 수 있었지만, 깨달음을 얻는 방법은 비단 독서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독서든 뭐든 간에 '사유'를 하지 않는다면 복잡한 현상을 걷어내 진실을 바라보는 눈은 개안하기 힘들 것이다. 최고의 인생은 자기 자신답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이처럼 나를 규정하고 있는 것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아닐까.


내면의 관찰자를 느끼기 시작한다면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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