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시골 방문기록
원래 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는 날에 따로 참석을 하진 않았지만,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아내와 함께 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러 시골 큰 집을 방문했다. 어머니는 밤 8시까지만 오면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어두운 시골길이 위험할까 봐 조금 더 안전하게 가기 위해서 해 떨어지기 전에 일찍 집을 나섰다. 그리고 오랜만에 시골길을 천천히 드라이브하며 즐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큰집은 역시 썰렁했다. 우리 집 식구 말고는 할머니, 큰어머니, 큰 사촌형님이 전부였다. 아버지는 형제가 많으시지만, 가족행사를 챙기는 집안은 흥미롭게도 매번 우리 집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형제들은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서로 말도 잘 안 하고 명절에 모일 때면 남처럼 둘러앉아 하염없이 티비에 모든 시선과 책임을 내맡긴 사람들처럼 영혼 없이 앉아있었다. 제삼자인 내가 봤을 때 아버지 형제들의 우애는 0.5% 정도 함유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썰렁한 집안도 가득 채워주는 어머니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이미 대문을 들어가기 전 돌담 너머로부터 들려왔다. 뭐가 저렇게 재밌나 싶어 대문을 지나 들어가 보니 그냥 큰어머니랑 동생이랑 쪼그려 앉아서 파를 다듬고 있었다. 별 거 아닌 일에도 크게 웃는 엄마 덕분에 원래 있었어야 할 사람들의 여백은 시원하게 메꿔졌다. 우리 엄마의 하이텐션은 대한민국 상위 1% 수준이다. 체면 차리기 좋아하는 친척집 식구들 사이에서 어머니의 그런 밝은 면은 언제나 가뭄 속 단비 같았고,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엄마의 매력은 눈부시게 빛났다. 난 그런 엄마가 우리 엄마라는 게 좋았다.
그렇게 담소를 나누다가 동생이 일본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사 온 선물이 아버지차에 있다고 하길래 까먹기 전에 우리 차로 옮기려고 혼자 밖으로 나와서 조금 걸었다. 걷다 보니 주변의 시골 풍경이 한가득 들어왔다. 바스러져가는 폐가, 작아 보이지만 빠지면 위험할 것 같은 연못, 그 위를 한결같이 지키고 있는 커다란 이름 모를 나무, 시골맛 나는 붉은빛 노을, 사람 없는 동네를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집들 그리고 벌레 소리, 새소리를 머금은 시골 냄새.
난 이렇게 잠깐 걷는 동안에도 주변의 여러 가지 자연의 요소들을 담아낼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한 게 실감이 나서 좋았다. 명절 때마다 오가던 시골길에서 어느덧 결혼까지 한 만큼 커버린 나를 시골의 정겨운 풍경을 통하여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그저 시골에 오기만 하면 서둘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엄마를 조르기만 했었던 어린 시절의 내가, 언제 이렇게 커서 주변의 모든 것들을 하염없이 받아들이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마치 오늘이 마지막 고향방문인 것처럼, 두 번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사람처럼 최대한 자세하고 풍부하게 내가 서 있는 곳 주변의 시골풍경을 자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저녁 8시 즈음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방 안에 있고 큰 형님과 나 둘이서만 제사를 치렀다. 만약 우리 가족이 없었다면 큰 형님 혼자서 할아버지 제사를 지냈을 걸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런 제사를 예상한 것치고는 준비한 음식도 가짓수와 양이 너무 많았다. 돌아가신 조상님들은 좋아하실지 몰라도 살아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피곤하기만 한 절차가 바로 제사였다.
내가 명절 또는 제사와 같은 그런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놈의 '지켜야 할 것',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사람의 목을 죄고 피를 말리기 때문이다. 제사상에 올라가는 음식은 이래야 하고, 숟가락의 방향은 이쪽을 향해야 하고, 손은 어떻게 가지런히 모아야 하며, 절은 몇 번 해야 하는 등의 셀 수 없는 절차가 너무 많았다.
난 아무리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라 할지라도, 내 기준에서 의미 없다는 판단이 들면 순순히 따르려고 하지 않는 편이다. '의미 없다'를 판단하는 나만의 기준은 필요 이상의 수고와 마찰이 생기는 여부로 결정짓는다. 예를 들어 제사로 인해서 가족 간의 마찰이 생기거나 오가는 돈 문제로 인하여 시비가 붙는 일이 생기면 그냥 바로 차단하는 편이다.
서로 해를 입힌 것도 아니고 욕을 한 것도 아닌데, 우리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상한 것들이 어중간하게 들어 끼는 바람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관계가 어색해지고 멀어지는 것이라면 난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가족끼리 서로 잘 지내기 위해서 노력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제사나 명절에 따라오는 절차들이 오히려 그 관계를 훼방 놓는다면 그깟 전통쯤이야 아예 끊어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피가 섞인 가족끼리 서로 잘 지내지 못하게 방해하기만 하는 것들을 굳이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왔다는 이유로 고수해야 할 필요는 없다.
요즘 들어서 제사 같은 걸 아예 지내지 않거나 지내더라도 현대식으로 간소하게 지내는 분위기로 돌아오고 있는 것 같지만, 난 이미 어릴 때부터 집안 행사만 있으면 서로 뒷말이 오가고 사이가 멀어지는 보기 불편한 일을 많이 겪으면서 '이런 불필요한 문화는 내 선에서라도 다 끊어내겠다'라는 다짐을 항상 했었다.
제사를 지내는 동안 큰 형님의 뒷모습이 씁쓸해 보였던 건 기분 탓이었을까.
제사가 끝나고 다 같이 둘러 모여 맛있는 제삿밥을 먹었다. 큰 집은 대체적으로 음식맛이 있었다. 특히 상어고기인 돔배기가 너무 맛있었다. 항상 나물밥과 같이 먹어야만 하는 운명이 서러울 정도로 흰 밥을 많이 떠올리게끔 하는 맛이었다. 저녁상에서도 어머니의 텐션은 100세가 다 되어가는 할머니가 막걸리를 세 잔이나 들이키실만큼 분위기를 밝게 끌어올려 주었다. 할머니와 큰 어머니는 그런 우리 엄마를 참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원래 있었어야 할 사람들이 없는 게 오히려 잘된 일인 것마냥 저녁시간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지나갔다.
그 와중에 친척들이 어색할 법도 한데 원래 식구였던 사람마냥 자연스럽게 섞일 줄 알고 조화롭게 어울리는 나의 아내가 참 사랑스러웠다.
어느덧 시간은 밤 10시가 되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남긴 채 집으로 나설 채비를 했다. 우린 수박 한 덩이를 사들고 갔지만 돌아갈 때는 수박 두 덩이 정도의 음식이 양손에 들려져 있었다. 대문 앞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먼저 보내고 우리 부부는 차를 바깥에 대놔서 큰 집 식구들에게 인사를 드린 뒤에 조금 걸어 나갔다.
찐 시골저녁의 분위기는 확실히 남달랐다. 마음 같아선 잠시 멈춰 서서 있는 그대로의 감성을 한껏 누리고 싶었지만, 왠지 멧돼지가 나올 법도 같았기에 서둘러서 차에 짐을 싣고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전화로 인해 예정에 없던 시골 방문을 하게 돼서 약간의 거부감이 일었던 건 사실이지만, 막상 다녀오니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이런 날도 얼마 남지 않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