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보 Aug 18. 2023

돈을 포기하고 인생을 구하기로 했다

어느 부부의 모습을 통해 마주한 현실


아름답고 풍성한 노을빛이 온 세상을 내리쬐고 있을 때쯤, 야간근무를 하러 회사로 출근하는 길이었다. 학원으로 가는 아이들, 퇴근하고 집으로 향하는 직장인들, 거리를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말없이 쳐다보며 운전하고 있었다. 그러다 유모차에 있는 갓난아이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고 있는 부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질 만큼 행복해 보이는 그 그림 같은 장면은 내가 꿈꾸던 행복한 가정의 모습과 가까웠다. 그렇게 운전하던 도중 찰나의 순간을 스쳐 지나간 그들의 모습은 일을 하는 동안에도, 퇴근하고 나서도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상하게도 그 기억이 좀처럼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처음엔 너무 보기 좋은 모습이어서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이 점점 우울해져 갔다. 한동안 왜 그런 건지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난 내가 처한 현실이 너무 서러웠던 것이다. 한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서 남들에겐 지극히 평범한 저녁일상이 내겐 어쩌다 운이 좋으면 가끔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날이 되어 버렸다는 게 뒤늦게 실감이 났다. 아침 7시에 출근하면 밤 9시에, 저녁 7시에 출근하면 다음 날 아침 9시에 집에 도착하는 삶. 휴무날마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 쉬는 날이 다가올수록 초조하고 불안에 떨어야 하는 인생이 한도 끝도 없이 불행하게 느껴졌다.


정신 차려보니 예전의 일상을 잃어버렸던 끔찍한 상황이 또다시 반복되고 있었다. 목수를 그만두려는 결심을 굳힌 그날도 진한 노을빛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너무나도 비슷한 상황에 그 당시 북받쳐 올랐던 서글픈 감정이 또다시 올라왔다. 참 어리석게도 난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게 바로 일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놓고도,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음에도 결국 또다시 돈에 눈이 멀어 같은 실수를 한 것이다. 그런 현실을 차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됐을까', '아무도 등 떠민 사람이 없었건만,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그렇게 내몰았을까'와 같은 회한이 끊임없이 마음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돈이라도 많이 모을 수 있게 마음 독하게 먹고 계속 다닐지, 아니면 또다시 다른 새로운 길을 찾든지 방향을 정해야 했다. 결코 가볍지 않은 고민을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서둘러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었다. 정립되지 못한 마음으로 일하다 보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갈 사람도 정해졌기에 내 몸은 더 이상 완전한 내 것이 아니었다. 평생 나와 함께 살아가게 될 배우자를 생각해서라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의무가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매일 하루를 충만하고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생각이 만들어 낸 착각이고 진심은 영 다른 데 있었는지 실상은 돈만 쫓아가고 있었다. '대체 왜 돈을 포기하지 못해서 일상을 반납해 가면서까지 일에 갇혀 사는 걸까', '그동안 자리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이 벌어진 주변 사람들과의 차이를 보다 많은 월급으로 메꾸려 했던 걸까', '돈욕심이 원래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상상 이상으로 그 욕망이 컸던 걸까'와 같은 생각이 맴돌았다. 그곳에 남을 만한 이유는 오직 돈밖에 없었다. 내세울 만한 재주도 없는 사람에게 많은 월급을 주는 건 결코 혜택이 아니었다. 아무나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상당한 희생을 요구하는 대가로 많은 돈을 주는 것뿐이었다. 난 그 정도의 희생은 감수하기 싫었다. 인생을 갈아 넣는 대가로 받는 돈은 필요 없었다.


결정하는 게 어려웠지,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난 그곳을 나와야만 했다. 내게 있어서 직장이란 ‘나만의 무언가’를 갈고닦는 동안 생계유지를 할 수 있도록 잠시 거쳐가는 곳일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 머물다 갈 곳에 좀 더 많은 월급을 받아보겠다고 인생을 갈아넣긴 싫었다. 그런 상황으로 몰아간 건 온전히 내가 저지른 만행이었지만, 그 상황에서 나를 구해낼 수 있는 것도 오직 나밖에 없었다. 돈이고 뭐고 일단 그곳을 나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상황이 꼬였다는 직감이 들었을 때 이미 마음은 한쪽으로 기울었었다. 단지 그동안 수없이 반복된 상황이 또다시 일어났기에 대체 뭐가 문제인 건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혹시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그게 마음에 걸렸을 뿐이다.




그 모든 건 내가 직접 벌인 일들이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탓할 게 없었다. 당차게 살고자 했던 의지는 온데간데없고 어느덧 돈만 좇고 있던 나를 뒤늦게 발견했다. 주제넘게 많은 돈을 받는 대가로 나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회사에 바쳐야만 했다. 회사 동료들 중에는 그런 삶에 적응하여 나름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도 있었지만 적어도 난 아니었다. 난 그런 현실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난 나를 브랜딩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내가 돈에 눈이 멀어 가장 중요한 게 뭔지 까맣게 잊고 인생을 갉아먹는 일에 뛰어든 건 명백한 실수였다.


그때만 해도 이미 충분히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늦었다는 이유로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남은 인생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결국 아내에게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고 돈을 조금 덜 받더라도 시간을 벌 수 있는 곳으로 이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참 다행히도 아내는 그런 나를 이해해 주었다. 사실 아내는 녹초가 돼서 퇴근한 나의 심각한 몰골을 보고서 하염없이 울었던 적도 있었다. 그만큼 내가 힘들게 일하는 부분에 대해서 걱정이 많았다. 심지어 그땐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던 시기라 더욱 예민했을 텐데, 아무런 불만도 표현하지 않고 내 고충을 헤아려주었다.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여전히 헤매고는 있지만,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잘 살아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나를 좋게 바라봐 주었다. 아내는 나의 가능성을 믿어주었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가치를 생각할 줄 아는 현명한 아내를 만난 건 인생의 천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돌고 돌아 우여곡절 끝에 들어갔던, 가장 많은 월급을 주는 회사에서도 결국 나오게 되었다. 그런 상황까지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걸어왔던 길에 대한 후회는 크게 하지 않았다. 내가 내렸던 모든 결정들은 당시 상황들을 떠올려 보면 지금 생각해도 충분히 그럴 만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뭐가 문제인지 아예 모르고 살아간다면 죄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뭐가 문제인지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던 대로 살아가는 건 본인에게 충분히 사죄를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난 내 인생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돈을 포기하고 인생을 구하기로 했다.

 


이전 08화 한 달에 400만 원씩 꽂히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